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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카메라에 이어 온라인스토킹까지... 나는 안전하고 싶다

[신소영의 사소하지 않은 수다] '노원구 일가족' 살해한 스토킹 범죄를 보며

등록 2021.04.19 07:19수정 2021.04.19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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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이 넘은 엄마와 둘이 살고 있는 나는 아침에 근처 공원으로 운동을 나간다. 하루는 일이 있어서 엄마만 나간 날이 있었다. 다른 때보다 일찍 들어오셔서 어디 몸이 안 좋으신가 여쭈었더니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남자들만 왔다갔다 해서 무서워서 3바퀴만 돌고 들어왔어."

그 말을 듣고 웃기는 했지만, 80대 엄마도 인적 드문 이른 아침에 남자들만 보일 경우 무서움을 느끼신다는 것에 공감했다.

얼마 전, 후배와 호캉스를 가서도 우리는 방에 들어가서 무의식적으로 불법카메라가 있는지 살폈다. 이런 의심은 공중 화장실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일상 속에서 혹시나 하는 공포와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일상속에서 느끼는 공포
 

ⓒ elements.envato

 
김태현이 세 모녀를 살해한 사건이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마도 다른 남성 가족 구성원이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세모녀' 살해 사건보다는 '일가족' 살해 사건으로 명명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처음에 의문이 들었던 것은 여동생이 택배 기사로 가장한 김태현에게 문을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보통의 여성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만 사는 집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여성만 사는 집이라는 걸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남성 신발을 놓고, 택배 수령인에 남성 이름으로 적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마당에, 왜 택배 기사에게 문을 열어주겠는가. 나를 비롯해서 대다수의 여성들은 택배가 오고 기사님이 간 후 바깥에 아무도 없는지를 확인한 후에 택배 물건을 집안으로 갖고 온다. 그래서 택배 기사를 사창힌 김태현이 집안으로 어떻게 들어갔는지가 궁금했는데, 나중에서야 그에 관련한 기사들이 나왔다.

자세한 정황을 보니, 벨소리에 "문 앞에 놓고 가세요"라고 하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자, 동생이 택배 박스를 들여놓기 위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급습했다고 한다. 철저하게 계획된 범죄였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잘 알아보지도 않고) 여동생이 택배 기사에게 문을 열어줬다면서 여성의 부주의에 대해 비난했다. 사실 그 여성은 조심할 만큼 조심한 것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두고 '여성이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본질이 아니다. 진짜로 중요한 건, 여성들이 이 정도로 조심하는데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관련 보도에서 볼 수 있었던 건, 대부분 김태현이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장면이라든지, 그가 사이코 패스일지도 모른다는 분석들이다. 정작 집중해야 할 스토킹 피해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다.

우리나라에서 스토킹 범죄는 경범죄였다가 1999년 법안이 처음 발의된 지 22년 만인 2021년 3월에서야 처벌을 받는 범죄로 법 개정이 되었다. '스토킹범죄 처벌법(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스토킹 행위·스토킹 범죄에 대한 정의 및 처벌규정 등을' 담은 이 법안으로 앞으로 스토킹 범죄자는 최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법안에서 규정하는 스토킹 행위는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주거·직장·학교 등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우편·전화·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하여 물건·글·말·영상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중 하나를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스토킹범죄 처벌법 참고).

그러나 아쉽게도 이 스토킹 처벌법은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어서 김태현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결국 김태현에 의한 일가족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스토킹 범죄에 대해 무책임, 무신경하게 방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이 안전한 곳

이런 사건들을 접하면 어머니와 둘이서 사는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택배 기사님들께는 죄송하지만 나의 안전을 위해서 택배나 음식을 배달할 때는 모두 '비대면'으로 체크하고, 문앞에 놓아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젠 문앞에 놓아달라는 것마저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어디 나만 그럴까. 대부분의 여성들은 일상 속에서 이런 공포를 내재화한 채 생활하고 있다. 심지어 팔순이 넘은 우리 엄마처럼 노인들도 말이다. 김태현의 일가족 살해 관련 기사를 보면서 더 슬프고 기가 막혔던 건, 여성들의 고통과 위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의견이었다.

"왜 게임을 하냐."
"남자 조심해라."
"왜 게임해서 만난 사람하고 술을 마셨냐."


게임을 하다 만난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살인을 한 사람이 나쁜 놈이지, 왜 사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나. 비슷한 사건에서 이렇듯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리는 행태에 대해 이제 '그러지 말라'고 말하기도 지긋지긋하다. 그래서 정작 조심하면,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고 기분 나빠하니,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지.

한겨레 신문 보도에 따르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스토킹은 온라인 상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올해 1~2월 20대 여성 9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 이상이 온라인 스토킹을 당했다고 답변했다(한국여성정치연구소(소장 김은주)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의뢰로 작성한 <온라인 스토킹의 실태 및 대응 방안> 보고서). 개인 정보와 사생활을 캐내거나 이상한 글과 사진을 전송하는 것에서부터 피해자를 사칭하는 심각한 범죄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온라인에서도 여성은 안전하지 않았다.

여성이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 우리 엄마 같은 할머니도 이른 아침에 혼자 운동을 하러 나가도 안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택배나 배달을 시킬 때 여성들이 불필요한 공포를 느끼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제발 집에서라도 안전했으면 좋겠다. 이런 걸 바라는 게 그렇게 욕심일까.
#여성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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