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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4월이라지만 더 잔인한 정부

[김용균재단이 바라본 세상] 그래도 꿈꾼다, 노동자와 시민이 안전한 사회를

등록 2021.04.13 15:41수정 2021.04.1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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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이다.

1993년 4월 28일 심슨가족 인형을 만드는 태국노동자 188명이 불에 타죽었다. 도난을 막는다는 이유로 공장주가 문을 잠가놓아서 노동자들은 화재가 났지만 그곳을 빠져 나올수가 없었다. 이 참사를 기리기 위해 세계 산재피해자 추모의 날이 지정되었다.

한국의 노동안전 활동단체들도 매년 4월 28일 살인기업 선정식을 열고 있다. 살인기업이라고 몇 개만 정해야 하는 것이 힘든 일일 정도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살인기업 선정식은 우리 사회에 "산재는 살인"임을 알리기 위해 매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2020년)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남이천물류창고 신축현장 화재로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8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라고 이야기되는 '코리아2000'의 화재로 4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지만 기업에게는 2000만 원의 벌금이 매겨졌다. 노동자 한 명의 목숨이 50만원으로 규정되고, 그것으로 기업은 면죄부를 받게 되었다. 그러니 유사한 참사가 되풀이 되고 있다.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의 문제다. 이 사회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하는 모든 세력의 문제다.

올해도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우열을 다투기 어려운 기업들이 있지만, 올해 살인기업 선정식에서는 한익스프레스가 선정되어야 마땅하다.

죽임 위에 죽음이 얹혀진 현실


죽임을 당한 자리에 또 다른 죽음이 반복되어 매년 2400명의 죽음이 사슬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올해 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되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2018년 12월에 전면개정되었다고 하지만 지금의 산안법으로는 재해예방을 위해 기업과 경영책임자를 강제할 수 없고 죽음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기업의 범죄를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를 핵심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요구했다. 그런데 재해를 수사하고 범죄사실을 증명해야 할 고용노동부장관은 산안법 틀 안에서 기업의 의견을 담아 시행령을 마련하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동상이몽이라고 해야 하나. 정부가 생각하는, 노동부가 생각하는 죽음을 막는 방안은 도대체 무엇일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이 정부는 국회는 왜 제정했나. 국민의 뜻을 받아들였다고 한다면, 기업의 의견을 담아 시행령을 마련하겠다는 말을 어찌 할 수 있나.

이런 상황이다보니 대형 로펌들은 노동부 퇴직관료들을 영입하여 기업의 총수를 지켜주는 법률자문 계약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총 등 7개 사업주 단체는 처벌을 낮추라는 개정요구를 국회에 제출했다.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으니 반성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이다.

시민 재해와 참사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7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참사해역을 방문하려는 유족들에게 해경은 3009호 구조지휘함을 배정했다.

3009호 구조지휘함이 어떤 배인가. 선장을 태우고 침몰하는 세월호를 급히 벗어나던 구조선을 지휘하던 배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는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수장시키고 싶어하는 끔찍한 배다. 유족들이 7년 동안 외치던 고통의 울부짖음을 외면했기에 지금 또 다시 상처를 주는지도 모르고 이런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각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시민들이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죽임 위에 올려지는 죽음을 막기 위해 결국 우리가 나서야 한다.

잔인한 4월에, 노동자와 시민의 죽음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는 사회를 꿈꾸어본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사)김용균재단 이사이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태의 님 입니다.
#김용균재단 #한익스프레스 참사 #잔인한 4월 #세월호 7주기
댓글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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