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아내가 미수로 주식을 샀습니다, 왜 마음이 편할까요

[투자의 민낯] 주식투자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소한 방법

등록 2021.03.18 09:40수정 2021.03.18 09:4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20년 3월 초, 코로나 발생 이후 흔들리던 주가가 폭락장세로 돌아섰다.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이 난국을 벗어나긴 힘들어 보였다.
 

코로나 날벼락은 주가 폭락을 싣고 코로나가 주가를 내리 꽂게 만들었다. ⓒ 남희한

 
코로나로 카카오 뱅크가 먹통이 되다니


12년간 조정다운 조정이 없었던 미국 증시마저 심하게 흔들렸다.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고점 대비 37%가량 떨어지며 역대 신기록을 수두룩하게 써냈다. 각국 주가 폭락률과 하루 변동폭을 보면 놀라웠다. 이전엔 2% 떨어지면 폭락이라고 했었는데. 하루 3%는 그냥 소소해 보일 정도였다. 그 정도로 전 세계 시장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어수선했다.

2019년과 2020년 초에 거뒀던 수익도 반납하고 나름 분할매수라는 물타기를 했었다. 이것도 지나갈 거라는 믿음으로 불안한 마음에도 우직하게 견뎠다. 문제없는 기업들, 전망이 여전히 좋은 기업들. 팔 이유가 없었다. 나날이 손실이 불어났지만 잘 버텨볼 요량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그 대화를 듣기 전까진.

"대출받으려는데 카뱅 접속이 안 되네.."
"나도 아까부터 안 되더라고.."


지금 대출이라도 받아서 주식을 사자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관찰됐다. '이런... 아직 바닥이 아닌가 보다.' 아직 두려움을 이야기하는 이가 없었다. 그 두려움 없음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고 다음날 반등에 반 이상을 덜어냈다.

대나무인 척했던 갈대


손실을 확정 짓곤, 스스로 우직하다고 격려하며 미련스럽게 참아내던 내게 많이 속상했다. 결국 이렇게 팔 걸, 불안해하면서도 그렇게 버틴 건가 싶었다. 투자 신념이니 정석 투자니 하는 위안으로 스스로를 도닥였는데 결국 '그런 거 다 모르겠고, 더 떨어질 것 같아서' 팔았다는데 아쉬움이 컸다. 도대체 버핏 할아버지는 어떻게 그 긴 기간을 버텨냈을까. 세상 유명해지는 덴 다 이유가 있나 보다.

폭락에 폭락. 종목 기준으로 심한 것은 판 시점에서 30%가 더 떨어졌다. 운이 좋았다. 팔았는데 오를까 봐 불안했던 마음은 폭락을 보며 안도감으로 변했고, '기준을 지키지 못해 속상해하던 나'는 사라지고 '예측력과 결단력이 뛰어난 나'만 남아 슬며시 웃고 있었다. 사람 마음 참...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 바겐 세일이라며 주식을 담고 있던 중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지고 있던 돈으로 주식을 샀다고... 너무 많이 떨어진 것 같아서 샀다고 했다. 기분 좋게 매수를 하고 있던 나는 또다시 두려워졌다. 그리고 한 번의 폭락이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에 다음 날 다시 팔았고 이후로의 급격한 상승을 한동안 그냥 보고만 있어야 했다.

사람은 소유에 따라 생각한다고 했던가. 잔뜩 들고 있을 땐 긍정적인 이야기만 들리더니 비중을 대폭 줄이고 나니 부정적인 목소리에 더 고개가 끄덕여졌다. 쉽사리 매수 버튼에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러다 결국, 한 주가 흘러 내가 판 시점 언저리에서야 어렵사리 매수를 시작했다.

편안함을 위한 특단의 대책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바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따지고 보면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임에도 마치 더 큰 손해를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연찮게 맞았던 한 번의 예측에 다음도 맞출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어리석게도 주가의 발바닥을 잡으려 했다.

중요했던 것은 기준이었는데, 이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빨리 어떻게든 해보려 안간힘을 쓰다 눈앞의 변동에 흔들렸던 실책이었다. 아마 여기엔 레버리지로 인한 조급함도 있었으리라. 기회라는 생각에 다소 무리했고, 그로 인한 초조함은 결국 이성을 마비시켰다.

쉽게 흔들리는 내겐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몇 날 며칠을 자책과 반성을 반복하며 곱씹어 봤다. 뭐가 문제였을까. 그리고 한 결론에 도달했고 아내를 끌어들였다. 함께 투자해 보자고 아무래도 혼자서는 안 되겠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길게 보고 함께 가자며 주방에서 결의를 맺었다. 다시 하락을 시작할까 불안해하던 마음이 편해진 것은 이때부터였다. 단순했던 두 가지 약속은 실로 효과적이었다.

첫째, 함께 한다. 이는 무리하지 않기 위함이다. 내가 허황된 이상에 현혹될 때, 아내가 현실감 있게 잡아준다. "그게 되겠어요?"라는 말은 투자 검토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임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혼자 하다 잘못돼서 받을 원망의 위험을 헷지할 수 있다는 건, 아주 큰 메리트다.

둘째, 시나리오를 '완결' 짓는다. 많은 공부도 줏대 없음에 무용지물이 됐다. '이랬다 저랬다'는 1도 도움되지 않았다. 매수를 결정한 시점에서부터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만들고 기계적으로 시나리오를 수행한다. 시나리오 수정은 있을지언정 '미결'은 있을 수 없는 거다. 비자발적 장기투자자는 이제 졸업할 때가 되었다.

함께하는 편안한 길 
 

함께, 천천히, 편안하게 빨라지는 발걸음을 느긋하게 만드는 함께 걷기 ⓒ Pixabay


그날그날의 주가를 보며 불안과 안도라는 냉/온탕을 수시로 오갔다. 냉탕과 온탕에 번갈아 몸을 담그면 튼튼해진다고 하던데, 주가 지수를 보며 오갔던 냉탕과 온탕은 지극히 심신을 지치게 만드는 일이었다.

처음 겪는 격동의 드라마에 많이 힘들었지만 배운 것이 많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것과 나란 인간은 누군가 옆에서 함께 해주어야 한다는 것. 혼자일 땐 쉬이 흔들리고 불안했는데 아내라는 투자 동반자라도 있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고 든든하다.

누군가는 단 몇 주 만에 몇 배의 수익을 거뒀다는 주식시장에서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손실을 메웠지만, 움푹 들어갔던 마음과 정신의 스크래치는 확실히 희미해졌다. 그리고 덕분에 웬만한 등락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을 수 있는 나름의 대비책과 투자 동반자도 얻었다.

그렇게 주식 파트너가 된 아내가 물어볼 게 있다며 카톡을 보냈다.

"미수금이 있다고 50만 원 입금하라는데요....??"

알고보니 폭락장에서 '줍줍'하다 자신도 모르는 새 미수로 주식을 사버린 거였다(주식 미수거래는, 보유하고 있는 현금(예수금)을 초과해서 매수할 수 있는 거래를 말한다). 옛말에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더니. 큰 수익의 기회를 잃고 미수 쓰는 대담한 투자 동지를 얻게 될 줄이야.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놀라 허둥대는 그 모습에 다시금 마음이 든든해진다. 함께 하길 참 잘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그림에세이 #주식투자 #투자의민낯 #편안함이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