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오빠 방에서 공부하는 이유

취향이 생긴 열다섯 중2... 우리가 모르는 사이 아이들은 성장하고 있어요

등록 2021.03.04 13:54수정 2021.03.0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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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씨, 지수는요?"
"민수 방 책상에서 공부하는 거 같아요. 안 그래도 책상 안 사줘서 미안한데 요즘 부쩍 열공이네요."


우리 딸아이는 자기 방에서 거의 생활을 하지 않는다. 보통의 15살 아이와는 달리 자신의 방을 걸어 닫는 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혼자 학습 과제를 하는 날도 첫째가 학원이나 독서실에 나가지 않고 있는 날만 자신의 방에서 숙제를 한다. 그러다 큰 아이가 밖으로 나가면 공부는 오빠 방에서, 휴식과 놀이는 거실에서, 잠은 우리 부부의 방에서 해결한다.

딸아이는 그렇게 자기 방이 아닌 다른 방을 사용하고, 명분까지는 모르겠지만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그 이유란 게 조금은 어이없게 들리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우리 부부 침실에서 자는 건 혼자 자기 무서워서였고, 휴식과 놀이를 거실에서 하는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마트폰과 TV 시청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는 이유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공부할 때 아들 방을 사용하는 이유는 자신의 방에 비해서 무언가 아늑한 느낌이 들어 학업 분위기 조성이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초등학생이었던 딸아이는 대부분 초등학교 학생들과 비슷하게 학교 수업이나 시험 시기를 제외하고는 열공모드는 남의 얘기였다. 우리 부부의 교육철학으로 큰 아이와 마찬가지로 딸아이도 스스로 학원을 보내달라고 하지 않으면 따로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 왔다.

그나마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해오던 영어 학습지와 작년부터 해오고 있는 수학 학습지가 전부였다. 늘 영어 학습지 숙제도 선생님이 오기 전날 몰아서 하루에 끝내던 아이에게 작년 가을에 추가한 수학 학습지는 한동안 너무 버거워 보였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서인지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며칠에 나눠서 학습 과제를 마무리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책상에 앉아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딸아이의 공부 시간도 함께 늘었고, 그렇게 딸아이는 첫째 아이 방 출입이 조금씩 더 늘었다. 하루는 아내가 딸아이 책상을 바꿔주자는 이야기를 내게 해왔다. 이사온 지 4년이 조금 넘었지만 딸아이 책상은 이사를 오면서 샀으니 4년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책상 사용 빈도나 시간이 많지 않은 딸아이여서 굳이 바꿔줘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과는 달리 딸아이의 공부 시간은 조금씩 늘어갔고, 느는 공부시간만큼 아들 방 책상을 사용하는 시간까지 늘어서 한편으로는 기특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소리 없는 시위 같아 신경이 쓰였다. 결정적으로 아들이 독서실을 간 사이 딸아이가 아들 방 책상을 차지하고 있다가 아들이 돌아와 마주치는 날이면 사달이 나곤 했다. 아들은 자신의 방 무단 사용을 이유로 동생을 잡아먹을 듯이 잔소리를 하는 통에 딸아이에게 내가 더 민망해지곤 했다.

세상 어느 부모가 공부하겠다는 아이를 말리겠는가. 한동안 아이는 내게만 이야기 안 했을 뿐이지 아내에게는 책상을 바꿔달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한다. 아이의 요구 사양을 들어보니 아내 말로는 딱 독서실 책상 같은 형태의 책상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순하게 책장을 사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딸아이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앉아서 공부할 중요한 가구라 직접 보지 않고서는 선뜻 인터넷으로 구매하기가 쉽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사주려고 했던 마음은 외출이 줄어든 최근의 사정으로 우리의 주요 화두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러던 지난달 아내 신발, 내 신발과 딸아이 바지 구매로 외출을 하게 되었다. 우린 쇼핑을 하던 중 백화점 내에 있는 'OO 하우스'라는 생활용품 매장을 찾게 되었고, 딸아이가 맘에 들어하는 책상을 보게 됐다. 

그 책상은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과 물건 구매하는데 자신의 눈높이가 명확한 아내에게도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가구였다. 결정적으로 딸아이가 구매에 대한 강한 구매욕을 비췄다. 하지만 그날은 다른 구매 물품들이 많아 책상 구매를 바로 하지는 못했다. 다만 서로 간의 마음과 구매 의사만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났다.

며칠 전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거실에서 아내와 난 TV를 보고 있었다. 항상 저녁시간 이후 소파에 앉아 있던 딸아이가 보이지 않아 아내에게 딸아이가 어딨냐고 물었다.

"영희씨, 지수는요?"
"민수 방 책상에서 공부하는 거 같아요. 안 그래도 책상 안 사줘서 미안한데 요즘 부쩍 열공이네요. 이번주라도 책상 사줘야겠어요."
"하하,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지수 나름은 책상 사달라는 시위네요."


난 리모컨으로 TV에서 나오는 소리를 음소거했고, 아들방에서 딸아이의 책 읽는 소리가 조곤조곤 들려왔다. 벽과 문을 통과해 나오는 소리라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내와 내가 미소 짓게  하는 소리임은 분명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딸아이의 노랫소리와 책 읽는 소리는 참 듣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학년이 되고서 아이도 나름은 긴장도 되고, 멋모르던 중학교 1학년 때와는 다른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학년을 맞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아내와 난 아무래도 큰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이유로 아들에게 조금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딸아이도 이제 열 다섯 사춘기이고, 아내와 나의 관심이 더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외출이 줄어든 작년 집에 있던 시간이 많았던 딸아이여서 그런지 아직도 마음속에서는 초등학생 어렸던 아이의 마음으로만 아이를 헤아려 왔었다. 어제저녁 거울 앞에 서있던 내 옆에 딸아이가 조용히 다가와 나란히 섰고, 그런 거울 속 딸아이를 물끄러미 들여다 봤다. 딸아이는 어느새 키가 부쩍 커 머리가 내 얼굴에 와 있었다. 매일 엄마, 아빠에 애교 많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이어서 잊고 지냈다. 아이는 몸도 마음도 크고 있었다는 걸.   

이사 오면서 샀던 책상은 아내의 취향에 맞는 모델과 의자로 구매했다. 워낙 심플하고, 단순한 걸 좋아하는 아내 성격에 책장이 없는 심플한 테이블형 책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사려는 책상은 전적으로 아이의 취향에 맡긴 것이다. 마냥 어린아이로만 보였던 막내딸도 자신의 취향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얘기하고, 고집을 부릴 때는 부리며 어느새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준비를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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