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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째 수입 0원...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여행'

[인터뷰] '유럽 예약' 저자 여행작가 청춘유리

등록 2021.03.06 19:17수정 2021.03.0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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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우리 일상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물론 불편한 쪽으로. 그중 하나를 꼽자면 '여행을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우리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인 동남아의 바다를 볼 수도, 유럽의 고혹적인 거리를 거닐 수도 없게 되었다. 아무도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시대에 여행병을 앓는 사람들을 위한 여행책이 나왔다.

12년간 70개국 500개 도시를 여행한 청춘유리가 쓴 <유럽 예약>은 여행을 그리워하는 독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다. 좋았던 시절의 여행을 떠올리게 하고, 언젠가 반드시 오를 여행길을 꿈꾸게 한다.

<유럽 예약>은 읽는 사람들이 '대리 만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의 여행을 기록하고 계획함으로써 여행을 '완성하게' 만든다. 모든 여행에 정답이 없듯이 이 책에도 정답은 없다. 그저 각자의 방식만이 존재할 뿐이다.

지난 2월 24일, <유럽 예약>의 작가 청춘유리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책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여행자로 사는 것과 여행작가로 사는 것은 다른 카테고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여행작가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생각해요. 결국 여행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으니까요. 많은 분이 공감하시겠지만 같은 아침 해라도 여행지에선 매일매일이 달라요. 처음엔 여행하며 느낀 그런 순간과 감정을 일기 형식으로 SNS에 올렸는데, 점차 저의 여행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행하며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독립출판 에세이를 만들었어요. 이후에 한 출판사의 편집자님께 출간 제안이 와서 첫 책 <오늘은 이 바람만 느껴줘>를 펴냈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반응이 좋았어요. 덕분에 여행작가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고,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여행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그저 여행을 사랑했고, 그래서 계속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길이 생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운도 좋았고요."
 

청춘유리 프로필 사진 ⓒ 출판사 제공

 
- 여행작가라면 좋든 싫든 여행을 해야 수입이 생길 텐데요. 최근 근황은 어때요?
"근 1년간 일이 없고 6개월 정도 수입이 없는 상황이에요. 처음에는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으니 이 기회에 잠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자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생각하면 할수록 깜깜해요. 수입도 수입이지만 정말 힘든 건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를 하지 못하는 거예요.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많이 고민하고 방황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행지에서 보낸 무수한 날과 그 시절의 저를 잊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나름대로 '존버'하며 지내는 중입니다."

- 그런 와중에 이번에 출간한 <유럽 예약> 반응이 좋아서 한편으로는 다행인 것 같습니다. 책을 보면서 구성과 기획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출간하게 되었는지, 또 어떤 책인지 소개해 주세요.
"예전부터 유럽에 관한 짧은 글이나 사진을 담은 책을 내고 싶었어요. 책을 읽고 나서 여행을 향한 저의 그리움과 독자들의 그리움이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고요. 그러던 중, 첫 책을 함께 만들었던 편집자님께서 독자 참여형 에세이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셨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것과 일맥상통해서 기쁜 마음으로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유럽 예약>을 한 문장으로 소개하면 '작가가 시작해서 독자가 완성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글을 더 넣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 책은 제가 쓴 것만큼 독자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쓰면 좋겠더라고요. 자신의 여행에 관해서 쓰고, 책을 만들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의 크기만큼 느끼되, 제 마음의 결과는 다른 자신만의 추억 혹은 계획을 담을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유럽 예약> 표지 이미지 ⓒ 출판사 제공

 
- <유럽 예약>을 보면 독자들에게 꿈같은 순간처럼 기억되는 여행지 하나를 꼽아 보라는 질문이 있어요. 작가님은 그런 여행지가 있나요?
"너무 많죠(웃음). 한 군데만 꼽으라면 엄마와 함께 갔던 크로아티아의 라박을 꼽고 싶어요. 당시 크로아티아 대도시에 오래 머물던 때였는데, 그러다 보니 처음엔 그저 아름답기만 했던 크로아티아 특유의 주황색 지붕이 어느 순간 지겨워지는 거예요.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인 라박에 엄마를 모시고 갔어요.

그곳에서 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집 한 채를 빌려서 지냈어요. 방세도 굉장히 저렴했는데, 40평짜리 3층 주택이 우리 돈으로 5만5천 원 정도였어요. 이방인은 우리 말고는 없는 곳에서 엄마와 저는 아침이면 각자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산책하고, 밤에는 청포도를 안주 삼아 와인을 마시면서 서로에게 편지를 썼어요.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수영복을 입고 행복해 하는 엄마의 모습도 봤죠. 한국에서라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을 엄마와 나눴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겐 꿈처럼 남아 있는 곳입니다."
   

라박 ⓒ 출판사 제공

 
- 여행의 모든 순간이 다 낭만적이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닐 텐데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요?
"딱 한 번 있었어요. 처음 세계여행을 떠났을 때였는데요. 일정 중반쯤 되니 돈이 너무 없어서 우리 돈으로 5만 원으로 한 달 식비를 해결해야만 했어요. 당시 아일랜드에 있었는데 99센트짜리 흑미빵에 1유로짜리 크림치즈와 딸기잼을 몇 달 내내 먹었어요. 그러다 보니 면역력이 약해져서 바이러스에 걸렸어요. 처음엔 귀에서 고름이 나오고, 그러다 피가 나고, 나중엔 소리가 안 들렸어요. 그때는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손바닥을 비벼서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하는 일이었어요. 들리면 안심하며 행복해 하고, 안 들리면 우울해 하고. 그때 여행을 포기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죠."

-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궁금한데요?
"아무래도 한국 약을 먹어야 낫겠더라고요. 그래서 아일랜드로 오는 한국 분께 약을 사다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대신 저는 아일랜드에 오래 있었으니 시티 투어를 시켜드리기로 했죠. 한국 약을 한 달 정도 넘게 먹으니까 호전되더라고요. 그래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어요."

- 와, 감탄했어요(웃음). 신의 한 수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까지 여행을 해야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투잡을 뛰면서까지 경비를 마련해서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결심했을 때, 부모님이나 교수님을 비롯한 모든 지인들이 다 말렸어요. 대학 때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이대로만 계속하면 대기업이나 유명한 여행사에 취직할 수 있는데 그걸 포기하고 여행을 떠나겠다니 그럴 만도 했겠죠.

그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여행을 선택한 거잖아요. 그런데 아프다고 한국에 돌아가면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잠도 안 자고 노력했던 그때의 나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생각했어요. 일 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를 부러워할 거라고."

- 코로나가 끝난다면 다시 여행을 가겠죠? 가장 먼저 누구와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유럽 예약>을 출간하고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가장 먼저 여행하고 싶은 곳은 태국입니다!"

-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전개죠(웃음).
"솔직히 유럽은 일 때문에도 많이 갔었는데 태국은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즐겁게 놀기만 한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 코로나가 끝나면 친한 친구들과 태국에 가서 끈적국수를 먹고 마사지도 받고 종일 수영하면서 보내고 싶어요. 밤이 되면 카오산 로드에서 춤추며 맥주도 마시고 싶고요. 태국이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꽉 찬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이에요. 아, 정말 유럽에게 미안하네요(웃음)."
 

청춘유리 프로필 사진 2 ⓒ 박정우

 
- 사진도 직접 찍는다고요. 굉장히 감각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의 원칙이나 청춘유리만의 비결이 있을까요?
"마땅히 비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건 없어요. 제가 사진을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고요. 그동안 여행하면서 대략 10만 번 이상 셔터를 누른 것 같아요. 그렇게 찍으면 누구나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지 않을까요? 지금도 제가 사진을 잘 찍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사진에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 청춘유리의 꿈은 무엇인가요?
"한창 여행을 다닐 때의 저는 꿈을 이룬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저는 꿈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네요. 꿈은 이뤘을 때가 아니라 이루는 과정 자체에 진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제 꿈은 다시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우선 제 글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힘든 순간에도 여전히 여행을 꿈꾸는 이유의 절반은 제 인생을 응원해 주시고,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분들입니다. 제 글이 대단하지 않다는 것 잘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제 글을 읽으며 조금은 힘을 얻고 희망을 가지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힘내서 으쌰으쌰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길 위에서 다시 없을 노을을 바라보며 '역시 인생은 이래서 즐거운 거야'라고 이야기할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유럽 예약 - 나의 유럽 드리밍북

청춘유리 (지은이),
허밍버드,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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