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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도 언젠간 '넷플릭스 당하겠지'

한 번의 방심으로... 케이블TV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미국 생활 2년

등록 2021.01.19 07:39수정 2021.02.1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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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부터 2020년 8월까지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미국 애리조나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경험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기자말]
​애초 우리 가족은 미국에서 TV를 살 계획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TV 없이 흡족하게 지내왔기 때문이다. 요즘은 인터넷만 접속하면 입맛에 맞게 프로그램을 골라볼 수 있다. 따라서 인터넷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인터넷을 신청하러 간 그곳의 그 직원이 화근이었다.

직원은 우리에게 케이블TV에 가입하라고 꼬셨다. 나는 TV에 관심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직원의 감언이설(甘言利說)이 시작됐다. 매월 28달러(약 3만 원) 요금만 내면 300달러(약 32만 원)를 현금으로 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언제든지 취소 가능'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단순하게 덧셈 뺄셈만 해도 케이블TV에 가입하는 것이 이익이었다. 계약 기간도 없으니 2~3개월만 보다가 취소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 직원도 미국에서 그렇게 많이 한다고 했다.

거짓 마케팅에 당하다

미심쩍은 눈초리로 직원을 쳐다보며 거듭거듭 물어봤다. 직원은 약정기간이 없다며 연거푸 답변했다. 내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니 옆에 앉아 있던 아내가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같은 질문만 해대니 창피했나 보다. 직원의 순한 눈빛을 보며 '미국은 신용사회잖아'라고 생각했다. 우린 케이블TV에 가입했다.
 
2개월이 흘렀다. 역시 우리 식구는 TV를 보지 않았다. 케이블TV를 취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당하게 케이블TV 회사로 전화했지만 곧 황당해졌다. 우리가 가입한 케이블TV 서비스 약정이 2년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심지어 우리가 매달 지급해야 하는 요금도 달랐다. 처음에 안내받은 금액보다 무려 30달러를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취소 위약금마저 상당했다.

투쟁하기 위해 케이블TV를 가입한 매장으로 곧장 내뛰었다. 담당 직원을 찾았다. 태도가 180도 변해 있었다. 눈초리가 이미 변질됐다. 방자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따지고 캐물었다. 직원은 우리에게 적확하게 사전고지했다고 시치미를 뚝 뗐다. 영어를 똑바로 알아듣지 못한 우리 책임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에 우리가 가입한 케이블TV 상호를 검색하니 유사한 피해 사례가 수두룩했다. 심지어 케이블TV 해지 방법을 연구하는 모임까지 있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미국 와서 처음 당한 '거짓말 마케팅'이었다. 계약서의 깨알같은 글자까지 챙겨보지 않은 나의 불찰이었다.

케이블TV로부터 대탈출
 

케이블 TV의 올가미를 벗어나다 케이블 TV의 올가미를 벗어나다 ⓒ Pixabay

 
이처럼 미국 전통 케이블TV 회사는 거짓 마케팅을 서슴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케이블TV를 가리켜 '가라앉는 배'라고 묘사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해가 갈수록 전통 케이블TV의 가입자 수는 급감하고 있다.

2018년 케이블/위성 TV 가입자 수는 9030만 가구였다. 2019년에 400만 가구가 서비스를 해약했다. 2020년에는 800만 가구 이상이 케이블TV 선을 끊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조사기관 닐슨(Nielsen)에 따르면 케이블TV를 해지한 사람은 지난 8년간 16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처럼 케이블TV 서비스를 해지하는 사람을 일컬어 코드 커터(Cord-cutter) 또는 코드 커터족(Cord-cutter族)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케이블TV 선을 끊기 때문이다. 요즘 MZ세대(1980~2000년생인 밀레니얼 세대와 1995~2004년 Z세대를 아우르는 말)는 코드 네버(Cord-never) 용어까지 사용한다.

이들은 케이블TV를 한 번도 가입한 적이 없다. 오로지 인터넷으로만 방송을 본 세대들이다. 이들은 방송을 수동적으로 시청하지 않는다. 자신이 편한 시간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골라 소비한다. 이것이 바로 케이블TV 회사가 거짓부렁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신규 가입자를 '유괴'하려는 이유다.

일부 케이블TV에 잘못 낚이면 벗어나는 데 애를 먹는다. 케이블TV의 약정기간이 소비자의 탈출을 훼방하는 올가미다. 극심한 고초를 치르고 나서야 겨우 그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한 시간 이상 전화통을 붙잡고 담당자와 말씨름을 해야 한다. 한참 통화하면 담당자는 자기 권한이 아니라며 상급자를 바꿔준다. 다시 기나긴 시간 얘기를 하면 책임자에게 연결해 준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최종 책임자와 연결되어 서비스 해지 승인을 받는 순간, 위약금 등 취소 수수료 고지서가 날아온다. 비용면에서 따지면 오히려 계약 해지보다 서비스 유지가 더 유리할 수도 있다.

넷플릭스도 넷플릭스 당할까?

이제는 OTT(Over The Top: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TV 서비스)가 대세다. OTT 거대 공룡 넷플릭스(Netfilx) 가입자 수는 이미 2013년에 미국 최대 케이블방송 HBO를 넘어섰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OTT 시장의 확장세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Deloitte)에 따르면, 코로나19 범유행 이후 미국 소비자의 80% 이상이 자신의 가정에서 1개 이상 OTT 비디오를 구독하고 있다고 한다. 또 미국 한 가정 당 평균 3개 이상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다고 한다.

OTT의 선두주자는 역시 넷플릭스다. 한 달에 10불 남짓을 지불하면 영상 콘텐츠를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다. 넷플릭스는 1997년 비디오와 DVD를 온라인 주문 방식으로 배달하는 서비스로 시작했다. 2007년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Netflixed (넷플릭스에 당하다)'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출현으로 기존 비즈니스가 위축되는 현상을 뜻한다. 넷플릭스는 2019년 7월 기준 미국에서 가장 많은 1억5880명의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다. 2023년에는 1억7750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넷플릭스가 OTT 시장에서 압도적이지만, 다른 OTT 기업들도 뒤따르면서 새로운 산업지도를 그려가고 있다. 미국은 OTT 시장 경쟁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아마존, 디즈니, 훌루 외에도 애플과 AT&T도 OTT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전 세계 300여 개의 스트리밍 서비스 공급자 중 200여 개 회사가 미국에 있다.

OTT 기업들은 차별화된 콘텐츠와 서비스를 개발해가며 포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야말로 미국은 OTT 시장의 최대 격전장이다. 시장은 변한다. 영원한 1등은 없다. 넷플릭스도 넷플릭스 당하는(Netflixed) 날이 오지 않을까.

미국에서 2년 내내 우리는 케이블 TV와 함께 기거했다. 취소 위약금이 끔찍스레 컸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케이블 TV를 간혹 봤다. 그래도 유익한 교훈 하나 얻었다. 그것은 바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미국에서도 '눈 뜨고 코 베인다'였다. 이때 터득한 지혜로 미국에서 제법 많은 거짓 마케팅을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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