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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 외로웠던 싸움, 무얼 더해야 합니까

[릴레이 기고] 김진숙 쾌유와 복직으로 가는 희망버스 ⑤

등록 2020.12.24 19:14수정 2021.01.2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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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진숙 언니, 언니에게 진 빚 갚으려 사람들이 모입니다(http://omn.kr/1qxno)
② 노동변호사가 대통령이지만... 당신은 여전히 해고자(http://omn.kr/1qzkf)
③ 깡마른 여자 김진숙, 눈물이 앞을 가린다(http://omn.kr/1r1u9)
④ 한국 최초 여성 용접공의 금의환향을 바라며 단식합니다(http://omn.kr/1r3lx)

잊었더랬습니다. 무심하게도 말입니다. 97명의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기 위해 85호 크레인에서 309일 고공농성을 한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라고만 기억했지 그 역시 한진중공업 해고자임을 말입니다. 실은 잊으면 안 되는데 그것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습니다. 

2017년 9월 21일 87년 노동자 대투쟁 30주년 기념 강연 말미에 "단 하루라도 좋으니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고 싶다"라는 소회를 들으면서 그때서야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그것도 마지막 유일한 해고노동자가 김진숙임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1986년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김진숙의 삶은 개인이 아닌 불행하고도 고통스러운 역사였습니다. 그렇다고 그 역사를 패배라고 말하고 싶지 않을뿐더러 생각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김진숙의 역사를 보면 야만 가득한 우리의 역사를 목도할 수 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과 쾌유를 위한 오체투지 장면 ⓒ 연정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고자 했던 김진숙의 행동에 뭐가 그리 두려웠는지 국가권력 기관까지 개입하여 폭력으로 짓밟아버렸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노동자를 보호해주는 국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노동3권을 부정하는 자본과 국가의 태도 또한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왜 이리도 노동과 노동자에게만 가혹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입에서 곧잘 회자되고 있는 촛불혁명을 생각해봅니다. 소위 촛불혁명에 참여했던 이에게도 그런 가혹성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이 서글프기가 그지없습니다. 귀족 노동자라는 빈정거림은 기본이고 노동의 고귀함과 노동자의 존엄은 있지도 않습니다. 


모두 잘 아는 것처럼 촛불혁명에 다양하고 무수한 사람이 참여했습니다. 참여의 궁극은 뭇 인간의 고귀한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인간답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부정하면 우리는 엄혹한 모순을 도저히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35년 전 김진숙 노동자의 외침은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매우 단순 명료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단순 명료했던 외침이었건만 해고라는 멍에를 35년 동안 메고 있어야 했습니다.

35년 동안 해고의 멍에를 메고 있는 동안 한 사람을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김진숙 해고노동자와 함께 부산에서 시대의 모순과 억압을 끊고자 활동했던 동지인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대통령께서도 김진숙 노동자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전에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복직 권고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올해 9월에도 복직 권고가 있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야 모든 의원과 부산시의회 복직 촉구 결의가 있었습니다. 

이는 김진숙 노동자의 해고가 부당하기에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결의이며 더 나아가서는 부끄러운 역사를 올바로 세우는 과제임을 확인해 준 것입니다. 이번 정부에서 유독 강조하는 게 있다면 역사 바로 세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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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35년째 해고자 김진숙 복직, 쾌유"를 바라는 주최측 추산 400여 대의 '김진숙 희망버스' 차량이 행진을 펼치고 있다. ⓒ 김보성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과거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 민주주의와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권리를 박탈당한 채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며 살아가는 우리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민주주의를 외쳤다는 이유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노동3권 보장하라고 외쳤다는 이유로 고초를 당해야 했습니까? 이는 당연한 외침이 아니라 마땅히 보장해야 되는 일인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폭력을 저지른 국가는 잘못된 역사에 대해 노동자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한 적도 반성을 한 적도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노동자들에게만 여전히 이런 고통이 고스란히 놓여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노동3권 보장은 고사하고 늘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노동은 고귀하고 노동자는 존엄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가톨릭 교회는 노동이 자본의 우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노동은 하느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며 노동을 통한 자기 인격을 실현함으로써 하느님다워지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격 실현은 고사하고 걸핏하면 고통 분담을 내세워 분담이 아닌 고통을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수많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쫓겨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현실을 대통령께 이야기 하고자 그리고 한진중공업 마지막 김진숙 해고노동자의 복직과 더 이상 노동자들이 죽지 않는 안전한 일터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서 17일과 18일 오체투지를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정성이 너무나 부족했나 봅니다. 지난 12월 19일 토요일 김진숙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촉구하는 리멤버 희망버스가 8년 만에 다시 운행되었습니다. 암이 재발되어 그 자리에 참여하지 못한 김진숙 해고노동자는 "무얼 더해야 합니까? 35년을 이어 온 싸움, 얼마나 더 해야 합니까? 35년간 외로웠던 싸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고 연말이 지나도 저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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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광장에서 정홍영 리멤버 희망버스 집행위원장, 서영섭 신부, 성미선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송경동 시인 등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한진중공업 김진숙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 권우성

 

저 역시 그의 복직을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 복직을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하나? 고민 끝에 오늘부터(12월 22일) 반드시 올해 안에 복직할 수 있도록 단식에 들어갑니다. 이마저도 정성이 부족하다면 무언가를 계속해서 하겠습니다. 

노동 존중은 부당하게 일터에서 쫓겨난 김진숙 해고노동자를 비롯한 이 땅의 수많은 해고노동자들이 복직하고 일터에서 죽지 않는 것입니다. 이 여정에 함께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단 하루라도 좋으니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고 싶다"는 김진숙 해고노동자의 염원이 2020년 올해가 가기 전에 이뤄지도록 연대 부탁드립니다.

- 서영섭(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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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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