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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시킨 그놈, 그 위에 형님... 그들은 '범단'이었다

[아주 오래된 n번방, 미성년자 성매매 ⑤] 역할 나누고 수익 분배, '범죄단체조직죄' 적용해야

등록 2021.01.08 13:15수정 2021.01.0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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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미성년자 성매매' 판결문 219개를 분석했다. 또 피해 여성 5명을 인터뷰했다. 아홉 차례에 걸쳐 그 실태를 해부한다. 이 기사는 그 다섯 번째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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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의 성을 착취한 성매매 범죄 판결문 일부. 피고인만 7명이었던 이 사건은 여러 명이 각자 역할을 나누고 수익을 분배하는 등 '범죄집단'의 모습을 보였다. ⓒ 소중한

 
그놈 뒤엔 '형님'이란 사람이 있었다. 17세 때 납치돼 2년 6개월 동안 성매매에 내몰렸던 피해자의 기억이다. 자신을 납치한 30대 남성이 수시로 연락하던 그 형님은 지시를 내렸고, 돈을 나눴으며, 협박을 가했다. 남성은 그 형님의 수하로 보였다.

이 피해자에겐 또 다른 기억이 있다. 어느 날 남성은 '일'이 시원치 않다며 피해자를 데리고 전국을 돌기 시작했다. 그날도 채팅 어플로 잡은 '약속'을 마치고 낯선 지역의 모텔에서 나오는데 한 건장한 남성이 피해자를 불러 세웠다.

"너 누구 끼고 일해? 누구 허락 받고 여기서 일하냐고?"

위압적인 말투의 그를 피해 피해자는 쫓기듯 달아났다. 이 세계에도 구역이 있고 조직이 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역시 17세 때 납치돼 1년 동안 성매매를 강요당한 다른 피해자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자신을 납치한 남성이 체포되자 피해자는 경찰서에 직접 나가 대질신문에 나섰다. 그 자리에서 이 피해자는 "뒤에 있는 사람"을 언급했다. 앞선 사례의 '형님'처럼 자신을 납치한 인물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던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은 끝까지 입을 닫았다. 피해자는 "어차피 걸렸으면서 왜 끝까지 입을 다물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도 괘씸하다"라고 말한다. 아마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다. 정말로 누군지 모를 정도로 치밀한 '점조직'이었거나, 보복이 두려울 정도로 잔혹한 '센 조직'이었거나.

'형법 114조'의 역사
 

그놈 뒤엔 '형님'이란 사람이 있었다. 17세 때 납치돼 2년 6개월 동안 성매매에 내몰렸던 피해자의 기억이다. 자신을 납치한 30대 남성이 수시로 연락하던 그 형님은 지시를 내렸고, 돈을 나눴으며, 협박을 가했다. 남성은 그 형님의 수하로 보였다. ⓒ unsplah

  
미성년자를 성매매로 내모는 성착취 범죄의 상당수는 개인의 일탈에 의해 벌어지는 게 아니다. 여럿이 모여 역할을 나누고 범죄 수익을 적절히 분배하는 모습을 보인다. 즉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들을 '범죄조직'으로 판단할지 여부는 처벌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다. 형법 114조(범죄단체 등의 조직) 때문이다.
 
제114조(범죄단체 등의 조직)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 또는 그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람은 그 목적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 다만, 형을 감경할 수 있다.
 
즉 중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단체 혹은 집단을 조직하거나(범죄단체조직죄), 그 조직에 가입하거나(범죄단체가입죄), 그 조직에서 활동하면(범죄단체활동죄) 최대한 감경 없이 법정형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1월 조주빈에게 형법 114조가 적용돼 징역 40년형이 선고된 바 있다. 'n번방' 등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자행된 성착취를 수사기관 및 법원이 범죄집단에 의한 조직적 행위로 판단한 것이다.

과거 형법 114조로 처벌된 이들은 주로 조직폭력배였다. 최근엔 보이스피싱 범죄자들 대부분에게 이 죄명이 적용되고 있다. 한동안 보이스피싱 범죄자는 사기죄로 처벌될 뿐이었다. 이 때문에 범죄의 폐해에 비해 형량이 낮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검찰은 2016년에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에게 처음 형법 114조를 적용했고, 법원이 해당 조직을 범죄단체로 인정해 총책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총책뿐만 아니라 간부 및 일개 조직원들에게도 형법 114조가 적용돼 대부분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때 이후 보이스피싱 범죄 대부분에 형법 114조를 적용하는 판례가 굳어졌다.

지난 8월 중고차 사기단에도 처음 형법 114조가 적용됐다. 대법원은 "이들은 대표·팀장·출동조·전화상담원 등 정해진 역할 분담에 따라 사기 범행을 반복적으로 실행하는 체계를 갖춘 결합체, 즉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에 해당한다"며 1·2심 판결을 뒤집고 중고차 사기단을 범죄집단으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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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조주빈에게 형법 114조가 적용돼 징역 40년형이 선고된 바 있다. 'n번방' 등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자행된 성착취를 수사기관 및 법원이 범죄집단에 의한 조직적 행위로 판단한 것이다. ⓒ 공동취재사진

 
두 재판의 결과 

<오마이뉴스>는 '미성년자를 성매매' 판결문 219개를 검토해 피해 사례와 형량을 정리했다(2020년 1월~10월 선고, '대법원 판결문 검색 서비스' 통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중 성매수·강요행위·알선영업행위 등 키워드 검색). 다음은 조직적으로 미성년자를 성매매로 내 몬 '성착취' 사건의 판결문을 요약한 것이다.

# 사례 1

서울남부지방법원 2019고합408 (1심)
서울고등법원 2020노122 (2심)


피고인 A는 2019년 6월 피해자 2명(여, 15세)에게 갚을 의무가 없는 돈을 요구하며 성매매를 강요해왔다. A는 동네 선배인 B·C와 함께 피해자들에게 계속 성매매를 시키기로 모의했고 이에 따라 A·B는 채팅 어플을 통한 성매수 남성 물색, C는 피해자 이송(운전)을 맡기로 했다. 운전면허가 없던 C는 타인의 면허증을 도용해 차를 렌트했다.

결국 세 사람에 의해 피해자 2명은 6월 15~21일 8회에 걸쳐 피해를 입었다. 성매매 대가는 세 사람이 모두 가져갔다. 범행은 피해자 한 명의 어머니가 페이스북 메시지를 확인해 경찰에 신고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들에게 적용된 죄명은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강요행위(A), 알선영업행위(A·B·C)였다. C의 경우엔 도로교통법위반(무면허운전), 공문서부정행사,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가 추가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범죄를 '업(業)으로' 했다고 인정했다. ▲ 반복적·계속적으로 피해자들을 성매매로 내몰고 수익을 얻었고 ▲ 피해자의 어머니에 의해 발각되지 않았다면 범죄를 지속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점이 인정될 자들의 법정형은 '징역 7년 이상'이다.

하지만 세 사람은 모두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수감을 면했다(▲ A :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 B :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 C :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이들이 성인이 아닌 소년범이란 점이 크게 작용했다. 검찰은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지만 2심에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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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의 성을 착취한 성매매 범죄 판결문 일부. 피해자에게 성매매를 하도록 강요한 피고인들은 각각 역할을 분담해 활동하고 성매매 대금을 갈취했다. ⓒ 소중한

 
# 사례 2

전주지방법원 2019고단457


피고인 D·E·F는 2018년 9월 초 F의 자취방에서 채텅 어플을 이용해 성매매를 알선하고 그 수익을 나눠가지기로 했다. 피고인 G는 세 사람의 요청에 따라 성매매를 시킬 여성을 물색했고, 피해자1(여, 15세)·2(여, 14세)를 만났다. G는 "한 달에 1000만 원을 벌 수 있다"며 두 피해자에게 성매매를 하도록 요구했다.

이들은 채팅 어플에 "조건(만남)할 사람 구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연락해온 남성에게 피해자1을 보내 성관계를 갖도록 했고, 그 대가로 받은 15만 원을 본인들끼리 나눠가졌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피고인 H·I·J는 9월 14일 F의 자취방을 찾아갔다. F는 이들에게 피해자2를 소개했고, 이들 7명은 두 팀으로 나눠 각각 피해자1·2를 데리고 다니며 성매매를 알선하기로 공모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1은 9월 12~14일 10회, 피해자2는 9월 14일 2회에 걸쳐 피해를 입었다. 피고인들의 역할을 보면 ▲ D는 범행 주도 ▲ E는 범행 주도 및 여성 청소년 이송(운전) ▲ F는 성매수 남성 물색 ▲ G는 여성 청소년 물색 ▲ H는 여성 청소년 이송(운전) ▲ F·G는 성매매 장소 길잡이를 담당했다.

이들에게 적용된 죄명은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알선영업행위였다. 다만 위 사례처럼 범죄를 '업으로' 했다는 점은 인정되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법정형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낮지 않다.

하지만 이들에겐 모두 징역 1년 이하의 형이 내려졌다. 그나마 실형은 D·E·F·H 네 명이었고 그중에서도 F·H의 경우 다른 범죄까지 병합된 상황이었다. G·I·J는 집행유예로 수감을 면했다.

정리하면 ▲ D는 징역 10월 ▲ E는 징역 8월 ▲ F는 장기1년·단기10월(점유이탈물횡령, 컴퓨터등사용사기 병합) ▲ G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 H는 징역 1년(폭행, 재물손괴 병합) ▲ I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 J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각 피고인 별로 초범인 점, 반성하고 있는 점, 가담 정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점, 알선 횟수가 많지 않은 점 등을 양형 이유로 밝혔다.

몸집 커진 범죄집단, 그에 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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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차를 빌려 모텔을 전전했다. 시간이 지나 남자는 B에게도 성매매 강요를 이어갔다. ⓒ 오마이뉴스, unsplash

 
위 사례들에 형법 114조가 적용됐으면 어땠을까. 앞서 소개했듯 대법원은 "정해진 역할 분담에 따라 사기 범행을 반복적으로 실행하는 체계를 갖춘 결합체"를 '범죄집단'으로 인정했다. 사건에 따라 구체적인 법리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위 사례들처럼 미성년자를 성매매로 내모는 조직적 성착취 범죄에 형법 114조의 적용이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다.

이은의 변호사는 "(이러한 범죄의 경우) 한 명이 단독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알선하고, 종용하고, 나눠먹는 여러 명이 있고 그 생태계 맨 끝에 있는 여자 아이가 성매매를 하러 나오는 거다"라며 "여럿이 일정한 목적을 갖고 임무를 나누고 수익을 나눠 갖는 사례라면 범죄단체·집단으로 봐야 하는데, 수사기관과 법원이 이에 따라가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하루 빨리 조직적으로 미성년자의 성을 착취하는 이들을 엄단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됐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일선 수사기관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 지역 22년차 형사는 "성구매자, 알선책, 어플을 통한 중간 유인책이 얽히고설켜 있다"라며 "단순히 성구매자만 기소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하나하나 연결고리를 따져가며 조직의 실체를 조사하거나, 성구매자나 말단 알선책이라도 모두를 중요선상에 놓고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형법 114조를 적용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법원에서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경찰·검찰 단계에서 본질을 파헤치는 수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선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서울 지역 35년차 형사는 "이 범죄도 보이스피싱처럼 조직이 커지고 있다. SNS, 어플 등 이용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졌고 가담자도 많아졌다"라며 "몸집이 커지면 뭐든 조직화되기 마련이다. 이미 조직화·전문화된 영역의 범죄를 수사하려면 경찰도 그에 맞는 전담부서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의 오선희 변호사는 "근래 들어 디지털 장비가 동원된 것을 제외하곤 사실 미성년자 성매매는 고전적인 범죄라고 볼 수 있다"라며 "수사기관도 '캐면 나온다'는 걸 알지만 그럴 여력, 자원, 시간, 노력을 들일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직을 캐내려면 정말 밤 새가며 품을 들여야 하는데 지금 구조에서 그럴 경우 다른 사건들을 제대로 수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라며 "개개인의 노력에 맡길 것이 아니라 자원이 보강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수사'는 불가능하다"라고 덧붙였다.

수사구조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이후 보도될 7번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성년자 #성매매 #성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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