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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없는 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혁신학교 반대 학부모님께

교사가 본 경원중학교 혁신학교 전환 번복 사태... 교육에 대한 성찰 필요

등록 2020.12.13 14:24수정 2020.12.1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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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원중 후문 양켠에 붙어 있는 투쟁 띠. ⓒ 윤근혁

  
최근 경원중학교의 혁신학교 전환 번복 사태는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우리 교육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공교육의 개혁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그만큼 공교육의 개혁이 시급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혁신학교 지정에 대한 일부 학부모들과 주민들의 반발은 선을 넘었다. 아이들이 등하굣길에 오가는 길에 막말 현수막을 버젓이 내거는 건, 제 얼굴에 침 뱉기며 교육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차마 아이들 보기 민망하다.

다만, 그들의 저항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집값의 하락을 우려한 강남에 사는 주민들의 이기적인 행태라는 식의 단편적인 언론 보도는 극단적인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그저 '기-승-전-부동산 가격'으로 몰아가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그들을 '강남 주민'으로 동일시하긴 힘들다. 오로지 집값에만 연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녀 교육에 대해 우려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순박한 주민들이 여론 왜곡을 조장하는 이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분석도 섣부르긴 마찬가지다.

다짜고짜 몰아세우기 전에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보자. 어차피 생떼 부리듯 완력을 행사하는 이들과는 대화가 안 된다고 단정 짓게 되면 영원히 평행선만 달릴 뿐이다. 아무리 사실무근의 황당무계한 주장이라고 해도 일고의 가치는 있는 법이다.
  
혁신학교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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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원중 혁신학교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학교 주변에 펼침막을 걸어놓았다. ⓒ 윤근혁

  
그들이 혁신학교로의 전환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의 학업성취도 저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막무가내 주장은 아니다. 지난 2016년 교육부의 학업성취도 평가 자료에 의하면, 초중고 혁신학교의 보통 학력 이상 비율이 59.6%로 전국 평균 82.8%에 크게 못 미쳤다.

고등학교로 한정하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진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비율이 혁신학교의 경우 11.9%로 전체 평균인 4.5%에 견줘 두 배가 넘는다. 단순히 계량화된 지표로만 보면, 또래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혁신학교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혁신학교의 본래 취지를 떠올리면 딱히 놀랄 것 없는 결과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혁신학교는 지난 2009년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입시 위주의 교육을 탈피하겠다는 공약을 내걸면서 처음 등장했고, 전국의 시도 교육청으로 빠르게 확산된 정책이다.


시험 점수에 얽매이지 않고, 교사와 교과에 따라 다양한 수업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수업의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고 평가받는 '배움의 공동체'나 '플립 러닝(거꾸로 교실)' 등은 혁신학교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 아이들의 수업 참여도는 일반 학교와 비교조차 안 된다.

그만큼 교사의 수업 준비 부담은 커졌다. 대신 잡무라고 불리는 행정업무를 크게 덜어냈다. 대부분의 혁신학교에서는 담임의 업무와 행정업무를 완전히 분리하고, 행정업무를 보조하는 교무 실무사를 충원하고 있다. 교사는 수업 준비에 '올인'하라는 배려다.

하여 혁신학교의 교과 수업과 비교과 활동에 대한 아이들의 만족도는 꽤 높다. 학교생활이 즐겁다는 이야기를 혁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선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스스로 선택해 진학한 대안 학교가 아니라면, 일반 학교에선 꿈조차 못 꿀 이야기다.

혁신학교의 실체

실제로, 혁신학교를 나온 아이는 단박에 눈에 띈다. 교과 성적은 좋지 않아도 학교생활엔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성적이 우수한 모범생이 학생회장에 선출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요즘 학생회는 혁신학교 출신이 훨씬 더 잘 이끌고, 이는 아이들도 교사들도 두루 인정하는 바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거다. 혁신학교 재학 시절 워낙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다 보니, 일반 학교의 일상이 시시하고 지루하다고 말한다. 오로지 대학 입시만 준비하는 곳에서 생활하기가 숨이 막힌다며, 고민 끝에 결국 자퇴를 선택한 아이도 여럿 봤다.

혁신학교가 우리 공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임은 분명하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곳이어야 하고, 교사는 잡무 부담을 덜어내고 온전히 아이들과의 만남인 수업에 매진해야 한다. 그러한 교육 여건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 것이 혁신학교 정책이다.

이를 모르는 이도 없을 뿐더러 모두 인정하는 바다. 문제는 혁신학교의 시스템이 상급학교로 연계되지 않는 한, 불과 '몇 년의 행복'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곧, 혁신학교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대학 입시라는 벽 앞에서 쉽사리 선택하긴 힘들다는 뜻이다.

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하는 이들이 정책이 도입된 지 십수 년이 지났는데도 성과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당장 학업성취도를 내세우지만, 그들이 말하는 성과란 명문대 입시 실적을 말한다. 하물며 자타 공인 최고의 학군이라는 강남이 아닌가.

처음 정책을 도입했을 때의 복안은 이런 것이었다. 혁신학교의 성패는 아이들의 학교생활 만족도에 달려 있고, 성공 사례가 하나둘씩 늘어나면 입소문을 타고 상급학교로 자연스럽게 확산될 것이라고 봤다. 곧, '바텀-업(Bottom-up)' 방식이 공교육 개혁에 부합한다는 여긴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교육이 오랫동안 '톱-다운(Top-down)' 방식에 길들어 있다는 걸 간과한 게 패착이었다. 기업의 수요가 대학 교육의 내용을 결정하고, 대학 입시가 초중고 교육과정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에서, 혁신학교는 애초 공교육에 자극을 주는 실험 정도를 넘어서긴 힘들었다.

취지대로 획일화된 교육을 탈피해 자기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학습 능력이 배양됐지만, 오히려 대학 입시는 공정성 논쟁을 거치며 과거로 퇴행했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시나브로 신뢰를 잃었고,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수능의 비중이 커졌다. 수능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게 학종인데, '구관이 명관'이 된 셈이다.

혁신학교의 교육과정은 수능과는 상극이다. 수능 대비에는 반복적 기출 문제 풀이 외에 다른 방안이 있을 수 없다. 문제집이 교과서를 대체하고, 동아리나 봉사활동 등 비교과 활동은 시간 낭비로 여겨질 뿐이다. 그 시간에 문제 풀이 보충 수업을 하는 편이 낫다.

학부모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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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0시 9분쯤, 서울 경원중 주민들이 교장 이름이 적힌 펼침막을 떼어내고 있다. ⓒ 윤근혁

 
경원중학교의 혁신학교 지정을 결사반대한다는 한 학부모의 댓글 하나가 유독 눈에 띈다. 3년 동안 시험 한 번 치르지 않는 학교를 어느 학부모가 좋아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시험을 통해 증명되지 않으면 교육이 아니며, 학교 교육의 목적지는 수능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덧붙인다. 혁신학교라고 시험이 없을 리 없다. 중간고사도 있고, 기말고사도 있다. 다만 다섯 개 중에 하나를 고르는 선다형 시험을 가급적 지양한다는 원칙을 교사들끼리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해당 학부모는 수능 대비에 보탬이 안 된다는 불만을 시험 한 번 치르지 않는다는 식으로 왜곡한 듯하다.
 

안타까운 건, 교육 당국의 대응이다. 일부 학부모들과 주민들의 반발에 밀려 혁신학교 지정을 취소했다는 걸 언급하려는 건 아니다. 그들을 설득한답시고, 머지않아 자기 주도성을 키운 아이들의 학업성취도가 향상될 것이며 명문대 입시 실적도 좋아질 거라고 홍보한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천만의 말씀이다. 기존의 학업성취도 평가 방식과 대학 입시 제도가 획기적으로 바뀌기 전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희망 사항일 뿐이다. 혁신학교가 그 취지대로 내실 있게 운영될수록 기존의 학업성취도 평가나 대학 입시 실적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시험이 없는 학교에 자녀를 보낼 수 없다는 학부모를 설득할 방법은 없다. 단지 이렇게 안내할 수 있을 뿐이다. 수업과 평가는 교육의 필수 요소다. 혁신학교라고 시험이 왜 없을까마는, 수능을 대비하기 위한 시험은 없다. 즐거운 학교생활과 입시 실적 중 양자택일하라고.

교사로서, 혁신학교가 공교육 개혁의 마중물이 될 거라는 믿음은 여전하다. 하지만, 교육을 둘러싼 다른 환경이 함께 변하지 않으면 백년하청이다. 예컨대, 입시 제도 개혁과 학벌 구조 타파는 물론, 학력에 따른 취업과 임금 차별 금지 정책 등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근본적으로, 혁신학교의 성패는 우리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교육의 본령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여부에 달려 있다. 교육이 끊임없이 불안을 부추기며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한 상황에서는 망망대해의 고립된 무인도 처지일 수밖에 없다. 혁신학교조차 갈 길이 참 멀다.
#혁신학교 #경원중학교 #교육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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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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