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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성폭력' 2년째 대법원에... 피해자의 시간만 흐른다

2심 무죄 선고 이후 2년... “군, 성인지감수성 확충돼야”

등록 2020.12.01 13:48수정 2020.12.0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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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일 오전 10시 6분] 

"아무도 여군 (성폭력) 문제에 관심이 없어요. 언론에 나와야 그때 반짝 하죠."

2010년 발생한 해군 성폭력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김은경 젊은여군포럼 대표가 한 말이다. 김 대표가 언급한 사건은 해군 상관 두 명이 부하 여군을 추행, 강간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이다. 두 간부는 1심에서 각각 징역 10년(박 소령)과 8년(김 대령)을 선고받았으나 2018년 11월 2심 고등군사법원이 이를 뒤집고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았으므로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둘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 측은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으며,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 2년째 계류돼 있다.

형사처벌과 별개로 이뤄질 수 있는 징계조치 또한 경미한 수준에 머물렀다. 현재 이 사건의 피고인들은 기소 휴직 상태다.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군인 신분이 유지되는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국방부 군인·군무원 징계업무 처리 훈령'에 따르면 징계권자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반드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징계 의결을 요구해야 하며, 수사기관에서 혐의 없음 또는 죄가 안 됨 결정이 있다 하더라도 징계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징계가 가능하다. 성폭력의 징계 양정 기본 사항은 중징계에 해당하는 '해임'이다. 기자가 두 간부에 대한 해임 징계 등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었지만 해군 측은 1일 현재까지 답변하고 있지 않다.

피고인에 대한 전역 조치는 이뤄지지 않은 채, 피해자의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2010년에 성폭력 피해를 당한 뒤 2017년 피고인을 고소하고, 현재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기까지 피해자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의 심각성 등에 대해 듣기 위해 김은경 젊은여군포럼 대표와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을 11월 19일, 24일 2차례 인터뷰했다.

"직업 안정성만 보장돼도 여군들이 스스로 문제 제기할 것"
   

김은경 젊은여군포럼 대표 ⓒ 홍하늘

         
- 국가인권위원회의 2017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성폭력 여군 피해자의 약 90%가 입대한 지 5년이 안 되는 소위, 하사 계급이라고 한다. 군대 내 성폭력 문제의 핵심은 지위 차이에서 발생하는 '위력'이라고 볼 수 있나.
김은경(아래 김): "그렇다. 군형법에는 상관에게 항명하면 평시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있다. 게다가 군인은 양성 과정에서 자극 반응 훈련을 받는다. 자신의 가치와 전혀 반대되는 비합리적인 지시에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갓 중위를 달고 1년 만에 함정을 탔다. 상관의 지시를 거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관은 인사권한을 쥐고 있어 권력이 막강하다. 여군 성폭력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장기 복무 심사 대상자였다. 상관이 추천 서열을 낮게 주면 장기 선발이 안 되고 전역이 된다. 기업으로 치면 해고다. 20대 중반, 30대 초반에 사회로 쫓겨나는데 군 경력으로는 취업이 어렵다. 생존의 문제다. 직업 안정성만 보장돼도 여군들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 2014년 군인권센터의 군성폭력실태조사 결과, 성폭력 피해사실이 드러났을 때 응답자의 35.3%가 집단 따돌림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방혜린(아래 방) : "부대사고율이 낮아질수록 부대 평가가 좋아지고, 지휘할 때 부담이 적어진다. 그러다보니 지휘관은 '우리 부대에는 사고가 없어야 하고, 신고는 신중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게 된다. 그 결과, 피해자가 부대에 누가 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생긴다. 이 외에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가 받는 비난은 일반 사회와 비슷하다. '가해자를 잘못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다', '유난 떤다' 같은 말을 듣거나 '꽃뱀' 프레임이 씌워진다."

김 : "한 성폭력 사건의 경우, 20년이 지나도록 다들 피해자가 꽃뱀이라고 알고 있다. 가해자가 계속 사회활동을 하면서 그렇게 얘기하고 다닌 거다. 가해자가 기자에게 '나는 결백하다. 정치적으로 이용돼서 잘렸다. 부하여군이 나를 꼬셨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방 : "직장의 경우, A회사에서 성폭력을 당해서 B회사로 간다고 한들, 소문이 완전히 다 따라가진 않는다. 그런데 군대는 부대를 옮겨도 소문이 다 따라간다. 자기들끼리 서로 다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폐쇄성이 더 강하다."

- 2차 가해로 오히려 피해자가 군을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김 : "내가 도왔던 성폭력 피해자 여군들이 나와의 인연도 끊고 사라져버린다. 우울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군인이었다는 것을 숨기고 산다. 현재로서는 이와 관련된 통계 자료조차 없는 상황이다."

- 2020년 10월 23일 송기헌 의원실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성폭력 관련 범죄로 군사법원에서 장교 신분으로 재판을 받은 119명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단 9명, 7.56%에 불과했다. 징계조치도 마찬가지다. 동일기간 성폭력으로 징계를 받은 장교 444명 중 파면 징계는 5년간 16명, 해임은 57명에 그쳤다.
방 : "군사법원이나 징계권자가 가해자를 같은 식구라고 생각하다보니 어려운 것도 있고, 실제 선후배관계가 많아 엄정한 처벌을 하기 어렵다. 군에서 범죄나 비위 사실이 있을 때 청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 2019년 국방부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응답자 중 성폭력 피해 발생 후 기관에 보고 또는 신고한 수가 32.7%에 그쳤다. 보고하지 않은 나머지 응답자들은 미보고(신고) 사유로 '아무 조치도 취해질 것 같지 않았다(44%)'라고 답했다.
방 : "여군이라면 크고 작은 성폭력 경험이 무조건 하나씩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군에서 성폭력 사건이 어떻게 끝나는지 다 보지 않았겠나. 그러니까 피해자들이 스스로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는 피해면 따로 신고나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다. 학습의 결과다."

"성범죄 군인 '무관용 중징계' 제도 유명무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 ⓒ 홍하늘

 
- 국방부는 2015년부터 성범죄 군인에 대해 '무관용 중징계' 제도를 도입한다고 했다. 현실과 제도 간 괴리는 왜 생기나?
방 : "군대 내 자살, 사망 사건들이 생기면서 무관용 원칙과 관련된 제도들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제도 도입은 했는데 실행하기는 부담스럽다보니 해야 한다고 하기보다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해야 한다고 해놓고 다시 단서 조항을 여러 개 만들어놓는 식이다. 제도의 강제성이 없는 경우도 많고, 강제성이 없도록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성인지 감수성이나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사고가 안 되다보니 제도만 만들어져 있고 사실상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 '무관용 중징계' 외에 제도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 한계는 무엇인가.
방 : "국방부가 성고충상담관제도, 양성평등담당관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성폭력 예방교육도 하고 있는데 사실 구색만 좋다. 성고충상담관은 계약직이다보니 피해자를 돕고 싶어도 자신이 계약한 부대를 상대로 해당 사건을 핸들링하지 못한다. 상담관 독립성이 부족하고, 사건이 헌병이나 수사단계로 넘어갔을 때 상담관이 받는 정보도 취약하다. 게다가 성고충전문상담관은 2020년 5월 기준으로 전군 총 48명이 활동 중이다. 우리나라 총 병력이 어림잡아 58만 명이니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양성평등 상담관은 양성평등에 관한 모든 정책을 다 한다. 여군 보건, 일·가정 양립제도 등을 다 다뤄야 하니 포화상태다.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집중적으로 할 수 없는 제도적 한계가 있다."

김 : "겉보기에는 (성폭력 관련 제도가) 강화됐지만, 실제로 피해자들을 돕기에는 한계가 있다. 성폭력 피해자를 도울 때는 1년, 2년 추적해서 꾸준히 도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고립돼있고, 무관심지역에 들어가 있다. 군에서는 언론에 난 사건만 관심을 가진다."

방 : "현재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는 범죄피해자 법률에 적용을 받는다. 신고를 했을 때 청원휴가도 쓸 수 있고, 휴직도 할 수 있고, 상담기관도 이용할 수 있고, 국선 변호인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다만 성폭력 피해자가 신고 후에 심리상담 등 진료를 받고 휴직을 해도 다시 돌아와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약속을 해줘야 한다. 피해자가 재판이나 조사나 치료로 자리를 비울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인사고과 및 전반적인 커리어에서의 부정적인 영향이나 주변의 험담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주변의 도움만 있으면 자기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 우리는 범죄피해자에게 너무나 엄격하다."

- 군대 내 젠더 의식이 변해야 하는 상황인가.
방 : "피해자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은 사실 조직 내에서의 유언비어나 음해 같은 2차 피해다. 이런 것들은 지휘관 한 명이 나선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조직원들이 이 사람은 형사사건의 피해자고,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조직 구성원, 특히 소속 부대 지휘관의 성인지감수성이 확충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감수성은 사실 군대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나 학교에서부터 오랫동안 트레이닝 돼야 한다. 매우 오래 걸리지만,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앞서 말했듯 가해자에 대한 신속한 형사절차 진행과 엄벌, 그리고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후속조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11월 19일,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의 주최로 기자회견이 열렸다. 2심 무죄 판결이 내려진 지 2년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대위는 "군대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엄단의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는 피해자 발언문이 낭독됐다.

"관심 병사로 분류되고, 약한 고리로 취급받으며 조직에 남기보다 떠나야 했던 피해 생존자들이 기꺼이 군을 떠나지 않고 자신의 희망과 역량껏 일할 수 있길, 피 끓는 마음을 혼자 삭히거나 죽어버릴 수밖에 없는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언제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함께 이겨내는 생존자로 살아갈 수 있길, 생존자들이 살아남고, 국민에게 그리고 상호간에 신뢰받는 자랑스러운 군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현재 피해자는 해군 함정에 돌아가지 못하고, 행정직에 보직중이다. 공대위는 대법원이 2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해 "군 사법체계 속에서 고통 받으며 긴 시간을 견뎌온 피해자"에게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군 성폭력 기자회견 ⓒ 홍하늘

#여군 #군대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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