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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가 동물을 변호하는 이유

[인터뷰] 권유림 변호사

등록 2020.11.27 22:07수정 2020.11.27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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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에 전 국민의 이목이 쏠려 있는 지금, 그 이면에서 고통받고 있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실험동물'이다. 지금도 원숭이·실험용 쥐·페럿은 코로나19 백신의 실험동물로 이용당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수많은 바이러스와 질병을 이겨낸 찬란한 업적 뒤에는 동물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이 있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시선을 맞추는 사람들이 있다. 말 못 하는 이들을 대신해 법정에서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 바로 '동물권 변호사'다. 변호사가 말 못 하는 '동물'을 변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을 품고 찬 바람이 부는 지난 13일, 서초동에 위치한 변호사 교육문화관에서 권유림 변호사를 만났다.  

고시생 시절부터 '변호사'가 된 지금까지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권유림 변호사를 만났다. ⓒ 심민경

 
권유림 변호사는 '개들의 지옥'으로 불리는 사설 유기동물 보호소 '애린원'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약 4년간 고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구조동물 안락사 논란을 빚은 동물권 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의 고발 대리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권 변호사에게 동물권 변호사로서 걸어온 삶에 대해 물었다. 

"고시할 때 세네 마리씩 데리고 와서 임시 보호를 했어요. 초유를 먹이고, 한 달 지나면 이유식을 먹이고. 그렇게 지내다 입양 보내고. 그러면 또 동물병원에서 (임시 보호 해달라는) 연락이 오고 그랬죠."

변호사가 되기 이전에도 동물과 함께해왔다던 권 변호사는 신림동에서 고시 생활을 할 때 '캣맘' 생활을 했다. 빈 보일러실에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면 데리고 와 먹이고, 씻기고, 입양 보내는 일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때 동물권단체 '카라'와 연을 맺게 되었다.

고시 합격 이후 권 변호사는 스스로 "변호사가 된 나는 이제 동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자문을 던졌다고 했다. 카라 측에 도움을 구한 결과,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아래 동변) 단체를 소개받았다. 이는 권 변호사를 동물권 변호에 직접적으로 뛰어들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 회사는 못 맡겠습니다"

권 변호사가 고용 변호사로서 법무법인에서 일하던 시절, 동변에서 실험동물 분야를 공부하던 권 변호사는 실험동물 공급회사와 관련된 의뢰를 받게 됐다. 의뢰 내용은 기업의 자산관리나 운용 흐름에 관련한 것이었기에 동물실험과 큰 관련이 없었음에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파트너 변호사한테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일을 두 개를 맡을지언정 이 회사는 제가 자문을 못 맡겠다'고 했어요."

권 변호사는 조심스럽게 해당 일화를 풀어놓았지만, 말미에 '지금 다시 의뢰가 와도 안 할 것 같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의 변하지 않는 신념은 고시 생활 중에도, 변호사가 된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었다.
  
안 될 걸 알아도 두드리면 변화가 온다

2019년 12월, 권유림 변호사가 속한 동변은 다른 동물단체들과 함께 '산천어 축제' 주최측을 고발했다. 산천어 축제에서 소비되는 산천어 다수가 식용 이외의 '놀이'의 목적으로 잔인하게 죽임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정은 산천어 축제의 산천어는 '식용'이라며 각하 처분을 내렸다. 권 변호사는 이러한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말했다.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다만 권 변호사는 '안 될 걸 알아도 두드리면' 사람들의 인식이 변한다는 점에 집중한다. 실제로 산천어 축제의 경우, 고발 이후 대중들 사이에서 논란이 불거지자 주최 측은 체험의 비율을 줄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 변호사는 이러한 '두드림'이 전체를 바꾸지는 못해도 일부를 바꾸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생각을 한번 더 하게끔 만들어주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금씩 바꾸고 싶은 그런 목적이 있는 거죠."

예컨대 동물원에 가던 사람들이 '이건 학대 아닌가?' 하며 발걸음을 한번씩 멈추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권 변호사의 말에 단단한 의지가 엿보였다.

원동력은 '바뀌는 현실'

권 변호사가 '두드려야' 하는 일이 너무 많은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지속해서 마주할 때 힘이 빠지지 않을까. 그녀가 계속 동물권에 목소리를 내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권 변호사는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이기에 계속할 수 있었다"며 "'번 아웃'이 온 적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바뀌는 현실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동물 학대와 관련한 처벌이 벌금 30만 원에서 100만 원 사이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실형까지 선고되는 사례를 볼 때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현실이 그녀에게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저는 이걸 '일'로 생각하고 시작한 게 아니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분야고, 관심 있는 분야고, 동물이 조금이라도 보호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에 시작했고, 하다 보니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그런 상황이에요.

최근 규제개혁위원회에 참여하면서 법이 개정되고 조금씩 바뀌는 걸 겪은 적이 있어요. 그럴 때 되게 뿌듯하고 '내가 잘하고 있구나'라는 걸 느껴요. 그럴 때가 행복이라면 행복인 거죠."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 동물

"동물은 눈을 보면 이게 '내 새끼'고 '남의 새끼'고가 없잖아요."

동물을 보면 언제나 에너지를 얻는다는 권 변호사지만, 공적으로 고통받는 동물들을 만나는 일은 심적으로 고되지 않을까. 이런 질문에 권 변호사는 "현장에서 만나는 동물들과 반려동물을 구분 지을 수는 없는 것 같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반려묘와 함께하게 된 사람들이 추운 날씨의 길거리의 고양이가 눈에 밟히는 것처럼, 권 변호사도 현장에 나가면 개 농장의 개들이 자신이 구조하여 키우게 된 개와 겹쳐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동물은 모두 같은 존재였다.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하는 권유림 변호사 ⓒ 권유림

  
'동물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냐'는 마지막 질문에 권 변호사는 망설임 끝에 "말 그대로 반려동물,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말로 진심을 전했다. 반려동물과 현장에서 만나는 동물들 모두 권 변호사에게는 '일생을 함께하는 존재'들이었다.

권 변호사의 목표는 이들을 위해 계속해서 '선례'를 만드는 것이다. 법조인이 되어 동물의 현실을 알릴 기회가 많기에 자신의 직업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권 변호사는 오늘도 법조계에 '선례'를 만들기 위해 가장 낮은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스스로를 위해 그러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 제인 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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