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비혼 출산 사유리'가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

등록 2020.11.23 18:27수정 2020.11.2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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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루다처럼 미혼모로 혼자 애 낳아 키우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같이 보던 19살 딸애가 훅 치고 들어오며 묻는다. 드라마 속 루다는 '남친'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리고 그를 사랑하긴 하는데, 결혼이 싫어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겠다고 나선, 보기 드문 당찬 캐릭터다. 장담하건대, 루다가 물어왔다면 틀림없이, "멋있네. 찬성이야" 했을 테지만, 딸애가 루다의 자리에 자신을 끌어다 놓고 물으니 선뜻 찬성이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드라마에서처럼, 네가 원하고 행복하면 네 결정을 존중한다고 멋있게 대답해야 했겠지만 말이다. 이 바람에 들통나고 말았다. 나의 일천한 페미니즘이.

좀 엉뚱한 구석이 있는 딸애는 중학교 때부터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면 좋겠다는 말로 나를 기함시킨 적이 있다. "생명을 거두고 자식으로 키우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아냐"며 지청구를 먹이는 걸로 딸애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후로도 두어 번 더 입양 얘기를 해 심기를 건드리곤 했다. 제 자식 하나도 키우기 버거운 나로서는 딸애의 생각이 헛소리로 들렸던 때문이었다.

드라마 속 루다는 맹랑하다. 그는 통념, 특히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고, 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잘나가는 쇼핑몰을 경영한다. '남친'과의 사이에 아이가 생기자 용감하게 홀로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된다. 이런 그의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화석화된 모성에 반기를 든 것은 분명하다. 루다의 비혼 출산이 전하는 메시지가 명확했음에도, 딸애가 '루다가 된다면'을 상정하고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은 지체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 소식'까지 전해지자, 나는 꽤 복잡한 생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왜 어떤 출산은 환대받고 어떤 출산은 비난받는가

사유리 씨 비혼 출산이 미디어에서 크게 이슈가 되고, SNS를 통한 지지와 응원의 글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 "한국이었으면 가능했겠느냐"던 한 여성 정치인의 일갈이 시사하듯, 비혼 출산 지지를 이루는 큰 축에는 가부장을 유지하는 결혼 제도에 대한 변하지 않는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가 예시하는 것처럼, 여성(30%)이 남성(18.8%)보다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결과가 높게 나온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아마도 비혼 출산에 대한 지지 역시 여성이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많은 여성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더 이상 포섭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강력한 신호일 것이다.

가부장과 이성애 중심주의를 공고히 하는 데 결혼이 얼마나 지대한 역할을 해왔는가는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성의 늘어나는 비혼과 커지는 생활동반자법 제정 요구도 이성애 중심의 결혼 제도(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려는 움직임으로 유력하다. 낙태죄 폐지를 목 터지라 외치는 이때,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과 이에 대한 놀라운 반응들이 터져 나온 것이 일면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실은 재생산에 있어 여성 몸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면, 이 모든 반응은 결국 한 뿌리에 근거하고 있다.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이 던진 메시를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이슈에 찬성과 반대라는 이분법이 담고 있지 못하는 문제 때문에 심경이 복잡해졌다.


나는 어쩌다 보니 엄마가 된 사람으로, 또 모성 수행의 지난함으로 삶의 통제권을 상실했던 사람으로, 왜 어떤 여성들이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가를 이해하기는 난망하다. 아이를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엄마에게 아이란 "맹목성, 연약함, 끈질김 같은 것들이 내 삶을 독차지하려고 나타나 당장 다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타인"일 수밖에 없는 날들이 반드시 당도하고, 이 경로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필연적으로 좌절도 따르게 마련이다. 물론 어떤 준비로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아이라는 거대한 이방인을 맞아 엄마 되기를 수행하는 일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겠지만 말이다.

사유리씨가 간절히 아기를 바라왔고 이로써 엄마 되기를 기꺼이 수용했겠지만, 비혼의 엄마가 수행하는 모성은 가부장 이성애 중심의 모성이 강요해온 '제도로서의 모성'을 해체할 수 있을까? 숭고한 무엇으로 가공된 모성은 줄곧 아이를 잘 키워내 부국강병의 선봉에 서게 했고, 더불어 자본주의 사회에 재생산 도구를 제공하는 일까지 성실히 수행해왔다. 저출생을 우려하는 정부의 근저에 기실, 이 도구의 손실을 안타까워하는 속내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저출생을 걱정한다는 정부가 그간 보여 온 미혼모나 한 부모 가정에 대한 소극적 정책은, 국가가 정상 가족(이성애 가족)이 아닌 가정에 대해 거의 관심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사유리씨가 비혼 출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이후 호들갑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정부와 정치권이 수용적 태도와 환대가 쏟아지자, 대체 이 이중적 반응은 무엇일까 혼란스러웠다.

문득 얼마 전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아기 판매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미혼모 A씨가 떠올랐다. 그의 경우도 비혼 출산이긴 마찬가지인데, '미혼모'로 불렸으며, 증발한 아기 아버지에 대한 질타는 사라진 채, 즉시 비정한 모성이라고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 물론 사유리 씨와 A씨의 상황이 동일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혼모든 비혼모든, 이들이 결혼이라는 정상 가족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언론이 일제히 사유리씨에겐 '비혼', A씨에겐 '미혼'이라 호명한 자체가 이미 A씨가 얼마나 차별적인 지형에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유리씨는 자신의 의지로 비혼을 선택했지만, A씨는 산달이 다 될 때까지 임신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A씨가 출산 외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없을 상황에 이를 때까지, 그의 재생산권리(피임, 임신, 출산, 보육, 양육)는 그 어떤 것도 권리로 보호되지도 행사되지도 않았다. 사유리 씨가 스스로 선택한 비혼 출산이 권리로 수용될 수 있다면, A씨의 '출산하지 않을 권리'도 수용되었어야 마땅하지만, 사회는 A씨에게 이 모든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음을 성찰하기 이전에, 비정한 모성이라 서슴없이 손가락질했다. 어떤 재생산권리든, 터무니없이 숭배되는 것도, 터무니없이 혐오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출산도 인권이 전제돼야 하지 않을까?

사유리씨 비혼 출산에 한 가지 더 우려되는 점은, 그가 선택한 임신의 방식인데, 이는 사회적으로 신중한 논의로 이어져야 할 예민한 문제다.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과 출산에 이르게 된 사유리 씨 케이스를 포함하여 체외 수정의 문제는, 유전공학이 깊이 관여해 조정하는 출생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심각한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태어난 생명이 자신의 탄생이 유전공학의 조정과 정자 난자의 매매로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겪을 혼란과 고통은 아직 연구 결과 조차 나오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생명의 탄생에 전제되는 인권 침해 문제는 논외로 하고, 체외 수정의 불법 합법만이 논제가 되는 사회적 분위기는 기괴하다. 한국에서 정자를 받아 출산하는 것이 불법이라 일본에서 실행했다는 사유리씨의 출산 변이 나오자, 보건복지부는 현행법상 불법이 아니라고 밝히고 나왔다. 비혼 출산은 산부인과학회 윤리 지침상 허용되지 않을 뿐이라고 해명했는데, 그렇다면, 이제 의학계에서 규정을 바꾸기만 하면 정자 기증은 무조건 허용되어도 괜찮은 걸까?

외국의 경우 정자 기증은 이미 시장이 존재하는 엄연한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타적 기증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미 정자 기증(매매)으로 인한 체외수정은 상당한 수익을 전제하며 영리 산업화되어있다. 정자뿐 아니라 난자도 판매되고 있으며, 불임의 경우 체외 수정된 배아를 대신 키울 포궁을 대여하는 대리모 시장까지 대규모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사유리씨의 정자 기증 출산이 떠들썩한 이유에는 여성의 재생산 권리인 '비혼 출산' 이슈가 크게 자리하고 있고 '비혼 출산'은 지지받아 마땅하지만, 그 이면에, 정자와 난자 그리고 포궁이 거래의 대상이 되어 있는 현실과 이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점, 특히 여성의 인권 침해 문제는 가려져 있다. (<대리모 같은 소리> 참고)

영리를 목적으로 유지되는 체외수정 산업이 괄목할만한 기술 발전을 획득한 유전공학과 손잡고, 착상 전 유전자 진단으로 건강한 정자와 난자만을 시장에 제공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마디로, 우생학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장애를 야기할 수 있는 배아는 버려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장애 없는 건강한 정자와 난자만이 선택되는 이 현상을 우리뿐 아니라 전 인류는 방관해도 되는 것일까? 체외 수정은 곧 인간의 존재와 연결되는 예민한 사안이다. 인간 존재를 누가 어떻게 승인하고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사회적 숙의와 논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안이기에, 이 중요한 논의를 누락한 채 그저 불법 합법 문제만으로 나아가는 것은 위험하다.

다시 딸의 물음으로 돌아오자니 착잡해진다. 루다도 사유리씨도 아닌, 아이 없는 삶을 권하면 안 될까? 내 신념은 과거에도 지금도, 아이 없어도 괜찮은 삶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은 마음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불철주야 고군분투로 이어질 끊임없는 양육의 노력을 생각해볼 때, 수굿해진다. 하지만 왜 아이를 꼭 필요로 하는지, 또한 생명이라는 존엄이 '필요'라는 욕망의 대상이 돼도 괜찮은 건지도 같이 숙의되었으면 한다. 체외 수정이든 아니든, 태어난 생명을 온전히 키워내는 일은, 그저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똥 치우는 일인 노동이라고만 대변될 수 없는, 또한 모성으로만 대체되어서도 안 되는, 존엄을 전제해야 하는 사회 공동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
#사유리 씨 비혼 출산 #비혼 출산 #가족 구성권 #재생산권리 #미혼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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