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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한반도로 건너온 재일동포의 시를 소개합니다

재일동포 문인 시지 '종소리' 84호를 읽고

등록 2020.11.18 11:43수정 2020.11.2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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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의 아침(2005. 7. 23. 촬영). ⓒ 박도

 
대한해협을 건너온 <종소리>

나는 2005년 7월 20일부터 25일까지 평양, 백두산, 묘향산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에 참석했었다. 재일동포 문인들도 그 대회에 참석했다. 나는 그분들을 평양 대동강 쑥섬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2020년 올 가을까지 해마다 철마다 시지 <종소리>를 멀리 도쿄에서 고국의 강원도 산골까지 한 번도 빠짐이 없이 꼭 보내주고 있다. 나는 그때마다 가능한 그 시지에서 두어 편을 <오마이뉴스>에 실어 고국 독자들에게 전해 드린 바가 있었다.

재일동포 문인들은 당신의 시가 고국 <오마이뉴스>에 실린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고, 고맙게 여기고 있다. 그리하여 2012년 6월 12일 시지 <종소리> 50호 발행 기념일에는 조국의 문인 홍일선, 정용국 시인과 필자도 함께 도쿄로 초대해 재일동포들과 매우 의미 있는 모임을 갖기도 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들 가운데는 인천공항에만 가도 혀가 꼬부라지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내 조국에서조차도 외국인 학교를 보내면서 우리 말 대신 영어 몰입교육에 치중하는 지도층도 있다. 어떤 전직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에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영어로 수업하겠다고 해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남의 나라에서 수십 년이 지나도 한민족의 정체성을 그대로 지닌 채 한복을 입고 우리 말 교육에 여념이 없는 재일 동포들을 보고 진짜 애국자를 만난 그 느꺼움에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번 2020년 10월 가을 호 <종소리> 제84호에 실린 주옥같은 시 가운데, 지면상 두 편만 소개한다.


"재일동포 여러분,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종소리> 제84호 ⓒ 시지 <종소리>

 
나의 기상 예상도

                    김성철

평소엔 텔레비전을 안 보는데
이 가을 며칠 동안은
박힌 듯 태풍 소식만 봤다

안타깝다
조마조마하다
태풍 10호야, 너까지도
너까지도 조선반도를 택했단 말인가

평성에 계실 고모님은 아무 일 없는 지
땀 흘려 가꾼 새 거리 새 마을
제발 무사하기를 바라는
이 마음도 구름 낀 듯 무겁기만 하여라.

나는 얼결에 창문을 열어
멀리 내 나라 하늘을 그려본다.
나의 기상 예상도를 마음속에 펼쳐본다.

-조선반도에 들이닥친
태풍 8호, 9호, 10호는
분단의 장벽을,
딱 그것만을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 새
조용히 없어져 버렸습니다.
하늘엔 태양이 눈부시고
푸르른 하늘이 가없이 펼쳐졌습니다.

나의 소원
나의 기상 예상도

 
   

한복을 입고 일본 도쿄의 거리를 누비는 재일 동포 소녀들. ⓒ 눈빛출판사/ 김지연

   

교장일기2

                    리일렬

2020년 9월 x일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언제나 고맙습니다!

이른 아침 청소하는
내 귓가에 울리는 소리
은방울이냐 금방울이냐
맑디맑은 목소리

아침마다 공손히
머리 숙여 인사를 하는 너희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
올해 따라 더한 더위를 무릅쓰고
한달음에 달려와
아침 햇빛을 받아 눈부시구나!

여느 때 없이 힘든 나날에도
너희들은 강을 건너 언덕을 넘어
이 땅의
온갖 모진 비바람도 이겨내고
우리 학교로 오는구나!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가 닦아주시고
아버지, 어머니가 끊임없이 걷고 걸어
지켜온 그 길을
오늘은 너희들이
바람처럼 메아리처럼 달려오는구나!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언제나 고맙습니다!

얘들아, 나는
우리 학교를 다니는 너희들이 고맙단다
아직은 너희들에게 못해준 일 많아도
너희들이 커서
다시 우리 학교를 고향처럼 찾아올 그날에도
교문을 깨끗이 청소하며 기다리리라

 (*일부 표기는 고국의 현행 맞춤법에 따랐음을 양해 바랍니다. 언젠가는 남북 동포, 해외 동포까지 모두 하나된 맞춤법으로 통일이 될 그날도 꼭 오기를 학수고대합니다.)

  

평양 대동강변에서 만난 재일 문인들(2005. 7.). 이 가운데 세 분은 그새 고인이 되었다는 부고를 받았다. ⓒ 박도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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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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