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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사장님 힘내세요"... 조국이 꺼낸 중앙일보 사건

취재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변하는 언론의 선택적 취재

등록 2020.11.16 13:30수정 2020.11.1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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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 '광견' 취재와 '애완견' 취재 그리고 '무' 취재 > ⓒ 조국 페이스북

  
조국 전 장관이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광견' 취재와 '애완견' 취재 그리고 '무(無)취재'>라는 제목으로 언론의 취재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조 전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와 부인, 그리고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관련 각종 의혹에 대하여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언론은 유례없이 차분한 보도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며 자신의 사건 때와는 전혀 다른 언론의 보도 태도를 지적했습니다.

이어 "자택 입구에서 새벽부터 심야까지 진을 치고 있지 않으며, 망원렌즈 달린 카메라로 온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지도 않는다"며 "버스에까지 따라 타서 카메라를 들어대고 질문을 퍼붓지 않으며, 아파트 보안문을 통과하여 계단 아래 숨어있다가 귀가하는 가족 구성원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으며, 가족 차량 이동 시 취재 차량을 몰고 추격전을 벌이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조 전 장관이 나열했던 취재 방식은 그와 가족들이 직접 겪었던 일입니다. 실제로 조 전 장관을 취재하기 위해 집 주변에는 항상 기자들이 대기했고, 배달원이 나오자 몰려와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인터넷에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 전 장관은 "이상 옳은 일이다. 이렇게 가야 한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가 떠올라 입안이 소태처럼 쓰다. 언론의 이런 얌전한 취재 기조가 다른 공인-특히 진보진영 공인-에게도 적용될까? 아닐 것이다"라면서 "한국 언론은 취재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광견'처럼 또는 '애완견'처럼 취재한다. 자사 사주의 범죄나 비리에 대해서는 '무(無)취재'는 물론이고, '회장님, 힘내세요'를 외친다"고 지적했습니다.

1999년, 중앙일보 기자들의 "홍석현 사장님, 힘내세요"
  

1999년 9월 30일, 당시 홍석현 < 중앙일보 > 사장이 검찰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 기다리고 있던 자사 기자 40여 명이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말했다. ⓒ 한겨레 PDF

   
조 전 장관이 말했던 '회장님 힘내세요'는 1999년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검찰 조사를 받을 때 기자들이 했던 "사장님 힘내세요"를 말합니다.
  
당시 홍석현 사장은 <중앙일보> 사주이자 보광주식 21%를 보유한 대주주로 조세포탈과 횡령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홍 사장은 고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와 남매입니다.

1999년 9월 30일 오전 10시쯤, 홍 사장이 검찰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 기다리고 있던 <중앙일보> 기자 40여 명은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검찰 청사 앞에 일렬로 서서 "사장님 힘내세요"를 외쳤던 <중앙일보> 기자들의 모습은 마치 조직폭력배 보스를 배웅하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기자들은 <중앙일보> 기자들이 "홍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외쳤다고 보도했지만, <중앙일보> 측은 '홍 사장'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중앙일보가 나서서 '님'자를 붙였느냐 아니냐 변명하는 자체가 더 이상했습니다.
   
홍 사장의 검찰 출석을 배웅했던 중앙일보 기자들은 대부분 사내 '언론장악 분쇄 비상대책위원회' 소속이었습니다. 이들은 홍 사장의 수사는 '언론장악 음모'라고 주장하며, 수사상황 속보를 막기 위해 다른 언론에 보도 자제를 요청하고, 검찰 쪽에도 엠바고(보도금지) 설정을 요구했습니다. 검찰 출입기자단은 검찰의 엠바고 요청과 <중앙일보>의 협조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증여세 등 조세를 포탈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던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에게 서울지법 형사21부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함께 벌금 38억 원을 선고했습니다.

2005년, 홍석현 회장의 경호원으로 변신한 <중앙일보>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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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2일,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 1997년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을 정치권에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는 홍석현 전 주미대사(< 중앙일보 > 사주)가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홍 전 대사가 공항을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권영빈 <중앙일보 > 편집인(왼쪽)과 기자들이 인터뷰를 시도하는 타 언론사 기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 권우성

  
2005년 '삼성 X파일(안기부 X파일)' 사건이 터집니다. 당시 이상호 MBC 기자는 1990년대 안기부 내 비밀 도청팀인 '미림팀'이 수집한 테이프를 입수해 폭로합니다.

이 테이프에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만나 불법 대선 자금을 제공하고, 고위 검사들에 대한 금품 로비 등을 논의하는 대화 내용이 나옵니다.

'삼성 X파일'이라며 온 나라가 들썩이던 2005년 11월, 홍석현 회장이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합니다. 홍 회장이 입국장에 들어서자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중앙일보 기자들은 취재하는 기자들을 밀치는 등 그를 호위하기 바빴습니다.

홍 회장을 호위하는 기자 중에는 권영빈 <중앙일보> 사장과 국회 출입 기자 등도 포함됐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마치 홍 회장의 보디가드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2008년, 기자의 취재를 막는 중앙일보 기자들 
 

특검에 출석하는 홍석현 회장 뒤로 삼성 SDI 해고 노동자가 피켓 시위를 하려고 하자 <중앙일보> 기자가 저지하고 있다. ⓒ 오마이TV

 
2008년 삼성의 불법 비자금 조성과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통한 이재용 불법 승계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삼성 특검이 시작됐습니다.

같은 해, 3월 4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 피고발인 신분으로 출석했습니다.

특검에 출석하는 홍 회장 뒤로 삼성 SDI 하청업체인 하이비트 해고 여성 노동자가 피켓 시위를 하려고 하자, 중앙일보 인터넷 매체인 <조인스> 영상기자가 손으로 막으며 제지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영상과 보도를 보면 당시 영상기자의 카메라는 홍 회장을 향해서가 아니라 뒤로 돌려진 상태였습니다. (관련 기사: 또다시 생각나는 "홍 사장 힘내세요" http://bit.ly/4JI4C)

<중앙일보> 기자들은 홍 회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가로막고 심한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타 언론사 카메라까지 파손됐습니다. 당시 <중앙일보> 기자들이 얼마나 취재기자들을 방해했는지 삼성특검 영상취재기자단은 성명서까지 발표했습니다.
 
중앙일보 사진기자들의 취재 질서 문란 행위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바란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삼성특검 조사를 받은 오늘, 기자의 본업을 망각한 중앙일보 기자들의 현장 취재 질서 문란 행위에 대해 우리는 깊은 유감을 표한다.

중앙일보 사진기자들은 홍석현 회장의 삼성특검 조사 후 귀가 과정에서 다른 취재진의 취재를 물리적으로 가로막았으며 현장 기자들이 동의하지 않은 포토라인을 편의적으로 설치하는 등 정상적인 취재활동을 방해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 방송사의 카메라가 파손되기도 하였고 홍석현 회장이 차에 오르는 모습을 취재하려 했던 기자들은 중앙일보 기자들에게 끌려나가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중앙일보 사진기자들은 건물 밖에 마련되어 있는 포토라인을 다른 기자들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장에 있던 어떤 영상취재기자도 그러한 포토라인의 설치에 동의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포토라인은 전혀 실효성이 없는 포토라인이었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중앙일보 사진기자들의 이번 행동은 삼성특검이 시작된 이후 지난 두 달 동안 선진적인 취재문화 정착을 위해 삼성특검 관계자, 취재원, 취재진 간의 의견을 조율하며 합리적인 포토라인을 설치, 유지해 온 삼성특검 출입 영상취재기자단의 노력을 수포로 만든 일이며 지난 몇 년간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인터넷기자협회가 추구해 온 합의에 의한 포토라인 설치에도 위배되는 변칙적인 포토라인이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이에 우리는 이번 중앙일보 사진기자들의 행위가 과도하게 사주를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으며 따라서 해당 기자들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한다. 또한 이번 사건이 사주가 있는 언론사 기자들의 현장 취재 도덕성에 심각한 상해를 가한 매우 좋지 않은 사례를 남겼다는 데 더욱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우리는 이번 취재 질서 문란 행위를 자본과 언론의 자유가 분리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매우 침통한 사건이라 규정하며 이번 사건이 해당 기자들로 하여금 양심으로부터의 진정한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08년 3월 4일
삼성특검 영상취재기자단
 
기자들이 말하는 언론탄압은 무엇일까?
  

1999년 홍석현 사장이 보광그룹 탈세로 수사를 받자 <중앙일보>는 언론탄압이라며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 한겨레

 
1999년, 홍석현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보광그룹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중앙일보>는 '언론 탄압' '언론 길들이기'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중앙일보>는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들의 말을 인용해 신문 지면을 이용해 '특정 언론 표적 탄압'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언론장악 대책 문건'을 공개했는데, 이 문건은 <중앙일보> 기자가 작성해 국민회의 부총재에게 보낸 것입니다.

기자는 "살아있는 권력을 비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기자가 자사 사주의 범죄나 비리를 비판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또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이들의 불법적인 행동을 눈감고, 오히려 옹호하는 기사를 자주 보도했습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2016년 23%, 2017년 23%, 2018년 25%, 2019년 22%로 조사 대상 37개국 가운데 꼴찌였습니다. 기자들조차도 '우리나라 언론은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관련 기사: 기자들이 스스로 고백한 한국 언론의 불량 품질 http://omn.kr/1m8ea)
  
언론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신뢰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기자와 언론의 신뢰는 독자들의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특정인을 향한 편향된 취재와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가 계속 이어진다면,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계속 추락할 것입니다.
#중앙일보 #홍석현 #언론탄압 #언론신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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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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