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바람피운 아내가 남편에게 이혼 요구한 까닭

[제25회 BIFF] 영화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

20.10.30 13:44최종업데이트20.10.30 13:53
원고료로 응원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은 비관적인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분투하는 동시대 청년들이 등장한다. ⓒ 부산국제영화제

 
거칠고 무기력한 세상에서 인간은 오히려 몸부림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 초청된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감독 이시이 유야)을 보고 나면 가슴 한구석이 무거워진다.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젊은 초상들의 이야기. 쉽게 잊히는 상실의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표류하는 인간들이 공존하는 세상을 그린 92분간의 러닝 타임은 지독하기까지 느껴지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보게 되는 건 지금 동시대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아츠히사(나가노 타이가)와 나츠미(오오시마 유코)는 부부다. 둘과 타케다(와케다 류바)와는 친한 고등학교 동창이다. 아츠히사와 타케다는 중국어와 일본어 수업을 들으면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꿈을 꾼다. 어느 날 아츠히사는 나츠미가 다른 남자와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한다. 나츠미는 아츠히사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서 괴로웠어." 아츠히사는 충격을 받지만 뭐라고 제대로 말대꾸를 하지 않는다.

내용보다 각 인물이 처한 상황에서 그려내는 감정에 집중하는 게 영화를 이해하기 쉽다. 이시이 감독은 자기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그린다. 아츠히사는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지만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다. 왜 그러냐는 타케다의 물음에 "마음속으로는 울고 있어. 실제로는 눈물이 안 나와"라고 답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아츠히사의 속마음이 어떤지는 알아채기 어렵다.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이시이 감독은 <행복한 사전>(2013)과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2017)를 통해 동시대 청춘들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극단적으로 내성적인 성격과 다소 고지식한 성격 때문에 타인과 이야기하기 어려워하는 사전편집부 마지메(마츠다 류헤이)와 불안한 심정을 쓸데없고 공허한 수다로 지워버리려는 일용 노동자 신지(이케마츠 소스케)가 각각의 작품에 등장한다.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 역시 인간과 인간의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상대방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까? 진짜 내 마음은 무엇일까? 꼭 표현해야만 상대방을 알아채는 것일까?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올 때쯤이면 여러 질문이 머릿속에 둥둥 떠오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인간은 답답할수록 더 악을 쓴다는 점이다. 아츠히사는 답답할수록 감정을 더 표출하고 발산하려고 한다. 상대방에게 다가가고 이해하기 위해 분투하는 한 젊은이의 울분과 몸부림이 보인다.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는 비관적인 현실도 그냥 넘기지 않는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8년이 되었지만 대량의 오염수를 뿌린다는 뉴스가 들린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매춘하는 여성은 손님을 응대하다가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딱히 나설 수 없다. 가만히 있는 게 유일한 답이다. 영화는 힘들고 버거운 현실을 직시한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이런 세상이기에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시한다.
 
홍콩국제영화제가 "Back to Basics (B2B) : A Love Supreme"(원점에 서다 : 진정한 사랑) 프로젝트로 제작한 저예산 영화 여섯 편 중 첫 번째 영화다. 국내에서는 내년 개봉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 이시이 유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