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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①-2 근골격계 직업병과 근골유해요인조사

등록 2020.10.27 13:57수정 2020.10.2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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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간하는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가 통권 200호를 맞이하였다. 2003년부터 2020년까지 <일터>는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문제를 의제화하기 위해, 다양한 현장의 현실과 투쟁의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고군분투했다. 이번 기획에서는 <일터>가 특집으로 다뤘던 주제 중 세 가지를 선정하여, 지난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앞으로의 방향과 전망을 세워보고자 했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로의 전환 국면에서 근골격계질환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을 다루었다.

제도화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의 현실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제도가 법제화된 이후, 총 6회의 정기 유해요인조사(3년마다 실시하는 정기 유해요인조사는 최초인 2004년, 2007년, 2010년, 2013년, 2016년, 2019년)가 이뤄졌다. 하지만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가 사업주의 의무로서 시행됨에 따라, 초기의 취지를 잃어버리고 형식적으로 시행하는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 현장에서 근골격계질환의 직업병 인정을 둘러싼 지형은 법제화 이전과 다른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조직화를 바탕으로 거리에서 분출했던 근골격계 투쟁은 개별 사업장의 담벼락 안으로 갇히고 말았다. 노동자가 주도권을 갖고 실시했던 현장조사는 회사와 이를 대행하는 전문기관의 손에 주도권을 내주게 되었다. 현장개선과 노동강도의 문제는 예방관리프로그램으로 봉합되며, 현장개선을 통한 예방의 영역으로부터 질환자 관리 및 치료의 영역으로 협소화되었다. 요컨대, 법제도의 틀 내로 운동이 포섭되어가면서, 노동강도 완화, 노동시간 단축, 노동자에 의한 현장 통제 등을 요구했던 정치적 투쟁으로서의 의미가 형해화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해요인조사는 현재 어떻게 실시되고 있을까? 이를 2019년 안전보건공단이 실시한 작업환경실태조사 결과에서 일부 확인할 수 있다.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조사는 5인 이상 제조업과 5인 미만 제조업 중 산재발생의 가능성과 위험도가 높은 업종 9개를 표적업종으로 삼아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제조업과 비제조업 중 유해·위험인자 다수 보유업종 13개를 표본조사한 것이다. 이 중 전수조사 대상인 10만 7665개 사업장 중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곳이 2만 7221개소(25.3%)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곳은 16.3%이며, 표본조사의 경우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한 비율이 전수조사보다 적은 7.6%로 그쳤다.

물론 이 자료를 통해서 더 자세한 현황을 파악할 수 없고 유해요인조사 실시 여부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가 3년마다 실시해야 하는 사업주의 의무로 제도화되었음에도, 시행하는 곳에 비해 실시하지 않는 곳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초기 취지가 퇴색되었다는 평가와 별개로, 유해요인조사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현재 정부 차원에서 실시율 자체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결국 법적 의무로 협소화되면서, 현장에서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할 내적 동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지, 돌아봐야 할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강도 완화 투쟁 중인 풀무원노조 조합원들. 출처: 풀무원 춘천지역 노동조합, 일터 통권 1호(2003.08) 수록.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나아가 유해요인조사를 제대로 실시하도록 강제한다고 하더라도, 조사 자체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2019년 고용노동부의 산재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업무상 질병으로 치료를 받은 노동자의 67.2%가 근골격계질환으로 요양을 하고 있다. 이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비용은 상당히 크다. 유해요인조사를 통해 일차적으로는 산재 실태를 드러내고, 산재승인율을 높이는 데 일정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조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이를 넘어서 작업환경 개선 등 근골격계질환 자체를 예방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해요인 조사의 실시율이 낮을 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인간공학적 요인 개선 외에는 노동시간 단축, 교대제 전환 등을 통한 작업환경 및 노동강도 개선 논의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활용하여 노동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실시하는 현장조사를 통해 현장을 개선해가고 있는 금속제조업 현장의 모범사례들이 있다. 전문가들의 손에 맡겨져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진행하는 근골유해요인조사 방식(현장조사 시트 등의 개선)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객관적·과학적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인간공학적 평가 중심의 조사방식을 넘어, 수차례의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현장 경험을 반영한 주관적 노동강도 평가를 적극도입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의 치료·요양 경험을 진단하여 질환자에 대한 조치를 개선하고자 한다. 그리고 조사결과에 근거한 개선조치를 목록화화고 이행현황을 점검함으로써 작업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해나가고 있다. 금속제조업 현장에서는 근골격계 문제를 사회화하는 '1라운드'를 거쳐, 본격적으로 현장에서 이를 둘러싼 현장개선과 노동강도의 문제를 둘러싼 '2라운드'를 치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몇 년간의 노동조합 조직률의 증가와 함께 2000년대 초반 금속 제조업을 필두로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이 문제를 사회화한 것처럼, 학교급식, 마트, 청소, 건설 등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들도 산재신청과 근골격계질환 현황 드러내기를 통해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다른 현장 곳곳에서도 '1라운드'를 본격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해요인조사 실효성 증진을 위한 개선과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가 예방을 위해 도입되었다는 본래 취지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보완되어야 할 지점들이 상당히 존재한다. 유해요인조사가 형식적 조사로 그치도록 하는 현실적 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 투쟁을 통해 제도변화를 강제해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당면한 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1개 부담작업으로 제한된 고용노동부 고시 기준의 폐기다.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는 11개 부담작업을 기준으로 평가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도입 당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아왔다. 제조업의 라인 업무나 조선업 등만을 기준삼았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업종과 작업의 비정형적인 업무는 반영되지 않는 점,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하여 여성이나, 장년 등 일터에서 일하는 성별과 연령 차이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 하루 2시간, 5kg 등 시간과 무게를 일률적으로 제시하여 마치 그에 해당하지 않으면 근골격계질환이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규정하고 있다는 점 등을 현장 노동자와 전문가들이 지속해서 비판해왔다.

그러나 해당 고시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대다수 사업장에서는 이를 기초로 본 조사에 앞서 예비조사를 실시하는데, 고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상당수의 작업은 아예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만약 본 조사에 포함되었다고 하더라도, 고시에 제시된 시간과 무게 등을 근거로 부담이 없는 작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따라서 고시 기준을 폐기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둘째, 유해요인조사의 내용이 인간공학적 평가로만 제한되고 있는 현실을 바꿔내는 일이다. 대다수 현장에서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할 때, 작업장 상황이나 작업조건 등 사업장 현실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를 수행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공학평가와 그에 따른 개선만 다루고 있다. 이는 근골격계질환의 주요 부담요인, 근본요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인간공학평가 중심의 유해요인조사는 외부전문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이로 인해 현장 노동자의 참여를 어렵게 만든다. 그 결과, 노동자가 현장조사의 주체가 아니라 조사 대상으로만 머물게 될 위험이 있다.

셋째, 유해요인조사가 근골격계질환의 예방에 있어 실질적 역할을 하도록 개선해야 한다. 이는 본래 취지를 되살리는 일이다. 예를 들어, 유해요인조사가 특정 평가로 제한되고 형식적으로만 시행되면서, 사업주에게 작업환경개선 조치를 요구해야 할 사항들이 '운동범위의 축소, 쥐는 힘의 저하, 기능의 손실 등'과 같이 노동자 개인들이 유의해야 할 사항, 개별적 조치 사항으로 협소해지고 있다. 또한 현장개선요구조차 '인간공학적으로 설계된 인력작업 보조설비 및 편의설비를 설치' 등 인간공학적 개선에 편중되어 있다. 또한 사업장 인력 대비 일정 규모 이상의 근골격계 질환자 발생 및 산업재해 인정 여부를 기준 삼아, '예방관리프로그램의 시행을 의무화'하고 있기에 배제되는 사업장들이 다수 발생하여, 보호·예방에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

근골격계질환은 특정 업무, 특종 직군에게만 나타나는 질병이 아니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병에 노출될 수 있고, 누구든지 이 병의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 다만, 그 고통의 현실을 노동조합 등 조직적 운동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 '직업병'임을 알리고 앞서서 대책을 요구하며 현장을 개선한 노동자들과 뒤늦게 이를 '직업병'으로 자각하고 현장 개선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노동자들이 있을 뿐이다.

현재 '일하다 보면 아픈 게 당연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자각한 노동자들이 일부 조직되어 있다면, 여전히 대다수의 노동자는 '일하다 보면, 아픈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 머물고 있고, 자본은 이윤 축적을 위해 끊임없이 노동자들을 골병들게 하고 있다. 그렇기에, 근골격계질환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회문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전통적인 제조업을 넘어 노동시장, 고형태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현실을 반영하여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대책이 적극적으로 수립될 필요성이 있다. 앞서 고용노동부의 11개 고시를 폐기할 필요성을 언급하며 지적했던 제조업 남성노동자에 국한된 범정부적 인식은 노동시장과 고용 형태 변화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미 노동시장은 전통적인 제조업으로부터 다양한 서비스직군의 출현에 따라 그 중심이 변화하고 있으며, 여성이나 고령 노동자가 고용시장에 진입하면서 단속적 노동, 비정형 노동, 불안정 노동 등이 지배적인 노동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이를 반영한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보호와 예방' 대책뿐 아니라, '치료와 재활'을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한편, 이러한 현실은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진행해 왔던 금속제조업 현장에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신규 고용이 창출되지 않는 제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고령화는 매우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장년 노동자에게 적합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는 것이 더이상 미뤄져선 안된다.

마치며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노출되며, 고통받을 수 있는 근골격계질환은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인 금속제조업 노동자의 투쟁을 통해 비로소 '직업병'으로 등장했다. 이후 이를 둘러싼 투쟁과 싸움은 그 진폭은 줄었지만, 다양한 형태로 반복·변주되고 있다. 근골격계질환은 일하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당신은 얼마나 인간적인 노동을 하느냐'의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도 끊임없이 되묻고 있다. '골병 들지 않는 일터', '인간다운 노동을 하는 일터'가 어떻게 가능하며, 그 기준이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느냐고 말이다. 그 기준은, 다른 무엇이 아닌 노동자의 몸과 삶이어야 하지 않냐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이신 손진우님이 작성하셨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0, 11월 합본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 #근골격계질환 #노동안전보건 #산업재해 #노동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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