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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보면 아픈 게 당연? 그게 아니다

[기획]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①-1 근골격계 직업병과 근골유해요인조사

등록 2020.10.27 13:54수정 2020.10.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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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간하는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가 통권 200호를 맞이하였다. 2003년부터 2020년까지 <일터>는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문제를 의제화하기 위해, 다양한 현장의 현실과 투쟁의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고군분투했다. 이번 기획에서는 <일터>가 특집으로 다뤘던 주제 중 세 가지를 선정하여, 지난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앞으로의 방향과 전망을 세워보고자 했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로의 전환 국면에서 근골격계질환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을 다루었다.

들어가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혀왔던 질환이 있다. 바로 '근골격계 질환'이다. 살아가기 위해 어느 누구든 몸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사람의 신체를 구성하는 근육, 뼈, 인대, 신경조직 등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병증은 그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왔다. "아이고, 삭신이야", "젊을 때 너무 고생해서, 일찍 골병이 들어서 그래"와 같이 사람들은 이 질환을 '삭신이 아픈 병', '골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이제 포털 사이트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검색하면 페이지 가득히 다양한 내용이 나열된다. 뉴스란에는 체중 증가와 비만이 근골격계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건강 상식을 담은 기사도 있고, 다양한 근골격계 질환에는 도수 치료가 근본적인 치료법이라며 이를 시행하는 병원을 홍보하는 기사도 눈에 띈다. 이렇듯 '근골격계 질환'은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입에 잘 붙지 않고 낯선 질환일 수도 있지만, 포털 사이트에서 누구나 손쉽게 주요 질환, 증상과 일반적인 특징, 치료방법과 전문 치료기관을 알 수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질병 중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근골격계 질환이 사회화된 배경에는 IMF-구조조정을 거치며 분출된 노동자들의 역사적인 투쟁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근골격계 질환'이 노동자를 병들게 하는 '가장 흔한 직업병'이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한 현장개선이 동반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3년에 한 번씩 정기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찾아보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지만 말이다.

감히 말하자면, '근골격계 직업병'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창립하게 된 배경이다. 이를 현장에서 제기하며, 노동자의 직업병으로 조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결집하여 연구소가 결성됐다. 그만큼 200호를 맞이하는 <일터>의 현재까지, 주요하게 다뤄지고, 언급된 노동자의 직업병이기도 하다.
 

작업대 앞 두원정공 노동자들. 출처: 금속노조 두원정공지회, 일터 통권 1호(2003.08) 수록.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근골격계 질환은 어떻게 직업병이 되었나?
 
"지난 2002년 초 비 내리는 새벽 거제 옥포 매립지에 허리, 어깨, 팔, 다리가 아파 버스에 오르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판명난 노동자 중 회사의 압력과 회유 속에서도 30% 정도인 76명의 노동자가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집단 산재요양에 들어갔고, 전원 산재 인정을 받았다. 사측에서는 노동자들이 심하지 않은 증상을 침소봉대한다고 하며, 일을 하기 싫으니까 노동조합의 힘을 빌어 산재에 들어간다는 말이 나돌았다. 예전에 유기용제에 의한 직업병이나 망간중독증처럼 한 번 스쳐가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2002년 7월에는 한라공조 11명, 카스코 등 32명, 11월에는 대우상용차 27명이 집단 산재 요양에 들어갔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삼호중공업 33명, 두원정공 21명, 대한이연 10명의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 요양 투쟁을 시작으로, 풀무원, 도시철도, 철도,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업종을 초월하여 여러 지역의 사업장에서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한 집단 산재요양 및 노동강도 강화저지 투쟁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 일터 통권 1호(2003. 08), 기획2, "근골격계 직업병의 현황과 실태", 고상백(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준) 연구기획실), p.18
 
연구소가 창립을 준비하던 시기에 작성된, 위의 <일터>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근골격계 질환'은 2002년 대우조선 노동자들을 필두로 한 2003년 금속제조업 노동자들의 연이은 집단요양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직업병'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국통신 전화교환원, 현대정공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집단요양이 없었던 바는 아니지만, 2003년을 정점으로 진행된 금속제조업 노동자의 집단요양 투쟁은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특정한 직업군에서 근골격계 질환이 발견되거나 전문가들에 의해 밝혀진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이 현장조직화를 기반으로 "허리 아파 어깨 아파 사업주가 책임져라", "노동자가 철인이냐? 근골격계 대책 마련하라!", "아프나? 치료하자! 힘드나? 쉬었다 하자!"를 외치면서, 자신의 망가진 몸과 훼손된 신체를 '증거'로 내세워 이것이 직업병임을, 문제해결이 필요함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근골격계질환이 주요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1997~1998년 IMF-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대량의 정리해고가 횡행하던 노동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산 자'와 '죽은 자'로 분류되어 공장 밖으로 밀려나가는 것을 지켜봤던 노동자, 동료들이 잘려나간 그 자리가 하청,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로 채워지는 것을 지켜봤던 노동자, 누군가 떠난 몫까지 고스란히 할당되어 강화된 노동강도를 감내하며 생존을 위해 버텨왔던 노동자들. 바로 이들이 당시에는 생소했던 근골격계 질환을 '골병'으로 명명하였다. 나아가 집단요양 투쟁이라는 방식으로 운동을 조직했고, 근본적인 대책으로 '노동강도 강화 저지'를 내세웠던 것이다.

이러한 금속제조업의 집단요양 투쟁은 조직노동자들에게 '근골격계 질환이 직업병이며, 산재신청을 통해 치료받을 수 있다'라는 걸 널리 알리는 계기이자, 이 직업병의 원인이 노동강도 강화와 같은 집단적 요인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를 통해 '일하면 아픈 게 당연한 것', '나이 들면 아픈 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나이, 키, 몸무게, 취미생활 등 개인적 요인이나 중량물 취급, 불안정한 작업자세, 진동 등 개별적 작업요인만이 아니라, 근골격계 질환의 집단적 발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노동과정의 조건(노동강도, 노동조건, 노동시간, 직무스트레스 등), 집단적 요인이 가장 밑바탕에 있음을 알게 됐다.

또한, 이 과정을 거치며 노동조합은 현장 조직화와 현장 개선의 소중한 경험을 축적하게 됐다. 당시 집단요양의 목표를 단순히 요양 승인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요양자만이 아니라 현장조합원 전체가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현장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노동자들의 투쟁은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의 도입'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국가가 주도하는 근골격계 질환 예방제도인 '유해요인 조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유해요인조사와 관련한 법제도적 근거는 2003년 하반기 당시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보건조치), 산업보건규칙 제9장을 신설함으로써 새롭게 마련됐다.

  

연도별 업무상 질병자와 근골격계질환자 수(직업성 근골격계질환의 발생 현황과 특성, 2010, 김규상·박정근·김대성)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발빠른 자본의 대응, 제도 안에 갇혀버린 노동자의 '골병'

앞서 밝혔듯이, 2003년 당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의 법제화는 금속제조업 노동자들이 전개한 집단요양 투쟁의 성과였다. 하지만 동시에 더이상 투쟁이 진전되지 않는 한계 속에서 형성된 타협의 산물이기도 했다. 자본과 정부는 당시 확산 일로에 있었던 근골격계 투쟁을 효과적으로 막아서기 위한 제도적 수단이 필요했고, 노동 측에서는 직업병 인정 투쟁을 넘어 노동강도 저하 및 현장 통제력의 복원으로까지 투쟁을 확장하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었다.

당시 자본은 근골격계 투쟁이 '아픈 노동자의 치료'를 넘어 실질적인 '구조조정 저지,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으로 나아가는 데 두려움을 느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었다. '골병'으로 아프지 않은 현장을 만들겠다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적정 인력과 생산량 등에 대한 현장통제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진전될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다. 자본은 이 투쟁이 이윤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자신들의 고유영역인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임을 재빠르게 간파했다.

이에 반해, 노동조합은 근골격계 투쟁이 가지고 있는 '노동강도 저지' 투쟁으로서의 본질적인 의미를 되새기는 데 한 발짝 늦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 전면에는 '노동강도'의 문제를 내세웠으나, '당장 직업병으로 인정받아, 치료라도 받는 게 어디야'라는 인식들이 도처에 자리잡고 있는 현실도 존재했다.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집단요양 투쟁을 전개한다는 자체만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측의 유무형의 탄압, 건강진단 감시, 조사요원 사업장 진입방해(진입시 형사고발), 요양신청 철회 압력, 잔업특근 불이익, 계약직의 경우 계약만료, 폭력행사, 교섭 전면 거부 등등은 노동자가 기계 부품만도 못하다는 것을 뼈 저릴만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집단요양 투쟁을 하고 그 다음에 해야 할 것을 보자면 이것이 일도 아님을 알게 된다." - 2) 일터 통권 1호(2003.08), 기획1,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 어디를 향하여 갈 것인가", 김재광(노동강도강화저지와 현장투쟁승리를 위한 전국노동자연대), p.15
 
이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은 2003년 8월호(통권 1호) <일터>가 당시 분위기를 전하고 있듯이, 대단한 각오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치료를 받는 데 있어, 자본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것이 노동자에게 유리하다는 현실적 판단을 하는 경우들도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에 따라 법 조항과 노동부의 11개 근골격계 부담작업 고시 등 세세한 부분을 규정하는 데 있어 일부 마찰이 있기는 했으나, 현재 수준의 '절충된 타협안'이 도출되었다.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는 당시의 자본과 노동의 힘관계를 반영한 제도적 산물이었으며, 빠른 속도로 법제화되었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다른 제도와 비교했을 때, 유해요인조사는 (정기 유해요인 조사뿐 아니라 질환자 발생에 따른 조사, 새로운 공정 도입에 따른 조사 등에서) 노동조합의 참여와 개입을 상당히 허용하였다. 그렇기에 현장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력한 기제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소간의 '긴장감 있는 절충안'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집단요양 투쟁이라는 형태로 제기되었던 근골격계질환 산재 인정 요구는 승인율의 변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투쟁 이후, 근골격계질환 승인율은 그 투쟁의 파고만큼이나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IMF-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시기인 1998년에는 업무상 질병자 중 근골격계 질환자는 124명(7%)에 그쳤었다. 집단요양 투쟁이 정점에 이른 2003년도에는 업무상 질병의 4532(49.6%)명에 이르며 승인율도 93.7%에 달했다. 이후 근골격계 질환이 정부와 자본의 적극적인 관리하에 들어가면서 2005년 2901명(38.7%)까지 하락했으나, 이후 점차 회복되며 2008년 이후 현재까지 70% 내외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근골격계질환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 그만큼 산재 신청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근골격계질환으로 치료를 받는 데 있어서, 여전히 산재 승인이라는 장벽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이신 손진우님이 작성하셨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0, 11월 합본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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