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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굴곡, 월급쟁이 신화에서 '4대강 실정'까지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 (73)] 제17대 대통령 이명박 ②

등록 2020.09.18 09:31수정 2020.09.1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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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시절 정주영 명예회장(왼쪽)과 이명박(오른족) ⓒ 자료사신

  
'월급쟁이 신화'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그의 아버지 이충우는 가족을 데리고 고향 포항으로 돌아온 뒤 동지상고 이사장의 목장 노동자로 일했다. 워낙 가난한 집안이라 이명박은 초등학교 때부터 성냥, 김밥 등을 팔면서 가계를 도왔다. 중학교를 가까스로 마친 이명박은 담임 선생님의 주선으로 동지상고 야간부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3년 내내 학비 면제 장학금을 받았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서울로 올라온 이명박은 헌 책방에서 책을 사서 독학해 고려대 상과대학에 진학했다. 1963년 고려대 상과대 학생회장이 됐고, 1964년에는 고려대 총학생회장 직무대행으로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이때 이명박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대학 졸업 후 여러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시위 전과 기록 때문에 취업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현대건설에 입사해 미친 듯 일했다. 그리하여 입사한 지 2년만에 대리로 승진했고, 서른 살에 이사가 됐다. 

"공휴일도 없이 하루 18시간 넘게 일했다."

1977년 37세에 현대건설 사장이 됐고, 40대에 마침내 현대건설 회장이 됐다. 그는 '월급쟁이 신화'였다. 그의 성공담은 1989년 <야먕의 세월>이라는 TV 드라마가 되기도 했다. 그 덕분에 그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이를 계기로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다. 김영삼의 제의를 받아들여 민자당 전국구 국회의원이 됐다. 
  
청계천 복원사업 
 

2005년 6월 1일 오전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아일보앞 청계광장에서 청계천에 실제로 물을 흘려 보내는 `유지용수 통수 시험'이 실시됐다. 한나라당 이혜훈, 박계동, 이재오 의원과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을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고 즐거워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서 출마해 이종찬, 노무현 등과 겨뤄 당선했다. 하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2000년 광복절 특사로 복권된 이명박은 2002년 서울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2005년 6월 1일, 서울시장 이명박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통수문을 여세요."

그 말이 떨어지자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 청계광장 배수로에는 막혔던 물이 '콸콸' 쏟아졌다. 맑은 시냇물이 서울 한복판을 가로질러 흘렀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이와 함께 대중교통 개편사업을 시행해 버스 중앙차로제, 교통카드 제도를 도입해 시민들의 대중교통 이용에 획기적인 편의와 성과를 이뤄냈다. 이로써 대중지지도도 치솟아 마침내 제17대 대통령에까지 당선됐다.

금강산 길, 끊다
 

2008년 7월 11일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 초병이 쏜 총에 피격된 금강산해수욕장 바다. 해수욕장과 북한군 군사보호시설 사이에 녹색 울타리가 처져 있었고, 10미터 정도의 모래톱은 사람이 드나들 수 있었다(2006, 9. 촬영). ⓒ 박도

 
금강산은 천하명산이다. 일찍이 중국의 시인 소동파는 "원컨대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願生高麗國一見金剛山)이라고, 그 절경을 감탄했다. 그런 탓인지 금강산은 이름도 많다. 봄에는 금강산(金剛山),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으로 불리며 이밖에도 열반산, 지달산, 중향산 등의 별칭이 있다.

하지만 이 금강산은 분단선 밖이라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이 철옹성 같은 금강산 길을 열기까지는 강원도 통천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인간 승리가 있었다. 아버지가 소 판 돈을 몰래 빼내 서울로 올라간 소년이 반세기가 넘어 소 1000마리를 몰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감동 드라마는 모든 겨레를 울려 마침내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행 바닷길이 열리고, 2003년 2월 21일 금강산 육로 시범버스가 휴전선 철조망을 넘었다. 어느 정치인도 못한 일을 그는 해냈다. 그는 현대그룹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었다.

한동안 금강산 길이 열려 자유롭게 오가던 남북 화해의 물결은 끊겼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중인 2008년 7월 11일 새벽에 금강산 관광특구 군사지역에서 남녘 관광객이 북한군 초병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그 사고로 금강산 길은 끊겨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열리지 않고 있다. 

가족을 잃은 유족의 슬픔은 당연히 안타깝고 위로받아야 마땅하다. 동시에 이명박 정부가 협상 등의 다른 선택지 없이 어렵게 뚫린 금강산 길을 끊어버린 것은 정치력 부재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정치는 종합예술이다. 우리 겨레의 갈등과 대립을 고도의 정치력을 푸는 게 지도자의 덕목이요, 그것이 정녕 지도자다운 길이다. 금강산 총격사건이 일어났을 때 유족을 보듬으면서 인내력을 갖고 북측으로부터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내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케 해야 옳았다.

교류가 끊기지 않았더라면 이후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사건과 같은 비극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현저히 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멀리 내다보지 못했다. 
  
4대강 죽인 4대강 살리기 사업 
 

4대강 사업 이후 녹조가 발생하면서 수시로 물고기 떼죽음이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죽은 물고기 사체는 썩어서 물속에 녹아내리고, 날 파리와 야생동물로 이어져 사람에게까지 질병이 전파되기도 한다. ⓒ 김종술

 
이명박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제안했다. 제17대 대선을 앞두고 대운하 건설 공약을 가시화했다. 그는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경부운하, 영산강의 호남운하, 금강의 충청운하를 건설한 후 너머지 강줄기를 수로로 연결하고, 장기적으로는 북한 운하까지 건설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후 전국민 반대로 대운하 사업을 슬그머니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전환시켰다.

그 명분은 물 부족과 홍수 피해를 줄이고, 수질을 개선하며, 생태하천 구역을 조성하고, 여가문화 및 삶의 질 향상과 34만 개의 일자리를 새로이 만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달랐다. 

퇴임 후 4대강 평가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가 제시한 청사진은 모두 '실패'로 귀착했다. 그 무엇보다 신령한 국토 산하를 함부로 해치고 정복하겠다는 오만의 극치였다. 그 피해는 두고두고 자연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또한 쉽사리 치유되지 않을 '대실정'(大失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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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8년 7월 17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이밖에도 110억 원대 뇌물수수, 350억 원대 다스 횡령, 자원외교 비리, 방위산업 비리 혐의 등 많은 논란이 있지만 여기서 줄인다. 앞선 회에서 밝혔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재 구속집행정지 상태에 있기에 더 이상의 비판은 금도에 어긋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시장 또는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그의 공직생활을 끝냈더라면 본인에게나 국가에 더 좋았을 것이다. 

(* 다음은 마지막으로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명박 지음 <신화는 없다> 외 여러 문헌과 당시의 신문보도 등을 종합 참고하여 쓴 기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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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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