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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생 제 일은, 치매 걸린 할머니를 돌보는 겁니다

[조기현의 영 케어러 ②] "그날 음식물 쓰레기를 내가 버렸다면..." 뜻하지 않은 '직업'의 시작

등록 2020.09.18 13:09수정 2020.09.1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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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돌봄'을 말할 때 떠오르는 얼굴들은 '중장년'입니다. 하지만, 분명 한국 사회에도 아픈 부모나 가족을 돌보며 살아가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영국과 일본 등에서는 이들을 지칭하는 '영 케어러'(Young Carer)라는 개념이 있을 정도지만, 한국에서는 그저 '효녀', '효자'로 불릴 뿐 사회적 주체로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직접 돌본 조기현 <아빠의 아빠가 됐다> 작가가 자신과 같은 한국의 영 케어러들을 찾아나섭니다. 돌봄이 형벌이 되지 않는 사회를 위해, 더 많은 청년들의 경험담을 기다립니다. 
(제보 - youngcarer90@gmail.com, jeor23@ohmynews.com)[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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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미


87년생 손자는 34년생 외할머니를 수발한다. 손자가 할머니를 수발하는 낯선 풍경이 진경훈(가명)씨에게는 이제 익숙하다. 할머니를 돌본 지 벌써 두 해가 넘어간다. 아침이면 거실로 나와 누워있는 할머니를 일으켜 밥을 먹을 수 있게 앉힌다. 밥을 다 먹으면 트로트 카세트나 텔레비전을 틀어주고, 대소변을 눌 수 있게 화장실까지 함께 간다. 화장실 가기 전에 할머니가 기저귀에 볼일을 봐도, 이젠 능숙하게 치운다.

할머니가 거실에서 음악 감상이나 텔레비전 시청으로 오전 시간을 보내는 사이, 그는 방에 들어가 주식 투자를 한다. 주식이 끝나면 늦은 점심을 먹고 할머니와 노닥거린다. 저녁쯤 그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주식 공부를 하고, 퇴근한 아빠, 엄마, 동생이 거실을 오가며 할머니의 말에 대꾸해준다.

그러다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가족들은 경훈씨를 부른다. 그가 할머니 전담자이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할머니를 씻기고 잠을 재운다. 거실이 조용해지면, 그도 자신의 방에 들어간다.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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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현 작가가 경훈씨와 이야기 나누는 모습. ⓒ 김예지


경훈씨와 나는 1년 전쯤, 영화를 만드는 청년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모임을 이끌던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차례대로 자기 소개를 하도록 유도했고, 내 차례가 됐을 때 아픈 아버지를 돌본 경험을 책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아픔과 돌봄 이야기에 그러려니 하는 사람도 있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어쩔 줄 모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나는 말하지 않으면 통할 수 있는 기회조차 놓친다고 생각했다. 당장 관심을 두지 않아도 좋다. 나중에라도 돌봄 상황이 닥칠 때, 엿들은 소문처럼 이 이야기가 떠오를지도 모른다고 기약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 자리에 경훈씨가 있었다. 나중에, 그는 내가 사람들 앞에서 돌봄 이야기를 하는 게 "충격이고 놀라움"이었다고 말했다. 또래 집단이기에 당연히 이런 주제에 대한 공감대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가족 돌봄 이야기를 한다는 게 더 새삼스러운 일로 다가온 듯했다.  

경훈씨는 하루 중 할머니 돌봄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지만, 그 많은 시간은 말이 되지 못했다. 당연히 누군가와 통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모임에서는 돌봄이 말이 될 수 있었다. 모임에 참가한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내 말이 그에게 머물렀다. 그렇게 우리의 비슷한 경험이 연결됐다. 말이 되어야만 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사실. 그가 지난 8월 31일 오후, 인터뷰에 응한 이유였다.
 
2018년 6월 그날, 음식물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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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고 있는 경훈씨. 그의 곁엔 할머니가 평소 사용하던 메모장과 플레이어가 놓여있다. ⓒ 김예지


"계단 밑에 할머니가 쓰러져 있어요!"

2년 전 여름, 오랜만에 할머니 집에서 자던 날 사고가 났다. 이른 아침에 음식물 쓰레기를 내다 버리려 문밖을 나선 할머니는 미끄러졌다. 계단에 머리를 부딪쳤다. 쓰러져있던 할머니를 옆집 사람이 발견했다. 그는 119에 신고하고 할머니 집으로 뛰어 들어와 자고 있던 경훈씨를 깨웠다. 경훈씨가 서둘러 나갔을 때 할머니는 이미 구급차에 실려 있었다. 어제까지 할머니와 함께 한 시간은 선명한데, 앞으로 할머니와 어떤 시간을 보낼지 몰라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의 가족이 사는 집에서 할머니의 집은 대중교통으로 15분이면 닿는 거리였다. 그는 때때로 혼자 사는 할머니 집에 혼자 놀러 갔다. 할머니는 갈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고 이부자리를 살펴주었다. 함께 밥을 먹고 노닥거리다가 서너 밤 자고 올 때도 있었다. 2018년 6월의 그날은, 할머니가 사고를 당한 날이자 그를 보살펴주던 할머니의 모습을 본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음식물 쓰레기를 제가 버리지 않은 게 가장 후회됐어요."

할머니는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중환자실에서만 14일을 보냈다. CT 촬영으로 들여다 본 할머니의 두개골 속은 뇌막을 따라 얇게 핏물이 고여 있었다. 외상에 의한 뇌출혈이었다. 부모님과 동생까지 모여 처음 대면한 의사는 가족들의 걱정을 추슬렀다. 치료하면 된다고 했다. 할머니의 말이 조금 어눌해질 수는 있지만 상당 부분 회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 할머니의 상태는 불안정해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의사는 시술이나 수술을 권했다. 할머니가 갑작스레 쓰러진 데다,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여러 혼란스러운 과정을 겪은 경훈씨 가족들은 병원과 의사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았다.

경훈씨 가족은 할머니의 거취를 결정해야 했다. 가족들에게 가장 유력한 선택지는 요양병원이었다. 경훈씨는 '집'으로 가길 원했다. '누가 할머니를 돌볼 수 있을까?' 할머니를 집으로 데려가려면 이 질문에 누군가는 답해야 했다. '누가 할머니를 돌볼 수 있을까?' 아무도 할머니를 돌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경훈씨는 그 질문에 답을 하고 싶었다. 아니,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가족들에게 할머니를 집으로 모시자고 말했다. 

"할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가요"

누워있는 할머니가 내쉬는 숨에는 아직 힘이 남아 있었다. 아무런 말은 못 해도 큰 눈을 깜빡이며 가족들을 둘러보기도 했다. 할머니의 작은 입은 이유 없이 오물거렸다. 지난날 경훈씨와 함께 밥을 먹던 입이었다. 경훈씨는 할머니의 죽음을 기다리기보다 아직 할 수 있는 걸 해보고 싶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 창업 준비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경영학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한동안 회사 식당 조리사로 일하다, 이제야 하고 싶은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가 찾은 일은 반려동물 사료 사업이었다. 시장 조사도 하고, 관련 법령도 찾아보고, 생산을 외주할 공장도 다녀왔다.

할머니를 돌보는 건, 얼마 전까지 확신에 차서 전진하던 창업 준비에 제동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할머니를 위한 일에 더 마음이 갔다. 다만, 아예 창업 계획을 접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1년 정도만 고생해서 할머니를 돌보고 다시 시작할 작정이었다.

"제가 케어를 하겠다고 가족들 사는 집으로 모셨거든요. 제가 욕심을 부렸죠. 엄청 힘들었죠. 처음 적응 안 될 때는 제가 24시간 붙어있어야 했어요. 기저귀 채우는 노하우도 없을 땐 똥오줌 다 새고 이불 빨고 또 매트리스도 닦고 또 똥 누면 통째로 들어서 옮기고. 아버지랑 둘이 할머니 팔다리 잡고 들어서 화장실 가서 씻기고. 처음 두세 달 정도는 개인 시간이 없었어요."

할머니가 집으로 온 후, 가족들이 총동원됐다. 경훈씨는 매일매일 혈액순환이 잘되도록 팔다리를 주물렀고, 할머니가 병원에서 먹던 유동식과 뿌리채소를 달인 즙도 꼬박꼬박 챙겼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할머니는 점차 말을 하고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지금은 걷지 못하지만 수저를 뜨거나 칫솔질 정도는 혼자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

4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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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메모를 남긴 노트, 트로트 음악을 듣는 플레이어. ⓒ 김예지


"물건 꺼내 와서 먹자."
"가게 샷다 내려야지!"


할머니의 시간은 대부분 40년 전 어느 날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치매가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고, 경훈씨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40년 전으로 돌아갔으니 경훈씨를 모르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할머니는 지금 자신의 고향인 충남 부여에서 슈퍼를 하고 있다. 서울에 올라온 지 40년이 지났지만, 그 기억은 통째로 사라졌다. 십여 년간 운영하던 슈퍼에 있는 음식을 함께 먹자거나 가게 "샷다"를 내려야 할 시간이라고 일러주기도 한다. 간혹 할머니가 경훈씨가 누군지 알아차릴 때도 있지만, 경훈씨를 중학생으로 여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요양이 필요한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고, 그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할머니와 경훈씨는 요양서비스를 받지 않는다. 할머니에게 24시간 붙어있어야 하던 초반에는 "목마른 사람이 우물 찾듯"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찾았고, 어서 신청해서 개인 시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요양서비스를 신청하는 건 병원 퇴원 후 6개월이 지나야 자격이 주어졌다. 만성적인 노인성 질환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의사의 진단서도 필요했다. 할머니를 들고 업고 운전하고 나르는 과정을 생각하면 진단서 한 장을 떼는 것에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신청 가능할 때까지 6개월만 버텨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할머니와 함께하는 일상에 적응했다. 경훈씨는 할머니가 더 나아질 거란 희망도 체념도 없이 "할머니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 할머니의 돌발행동과 신체리듬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노하우도 생겼다. 남는 시간에 집에서 할 수 있는 주식 투자를 전업으로 시작했고, 수익률도 나름 안정적으로 상승 중이었다. 그에게 돌봄은 도리나 의무가 아니라, 하나의 '직업'이 되어 갔다. 

싸움과 탈출을 반복하던 모녀

"쟤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

할머니는 유독 자신의 딸이자 경훈씨의 엄마인 순혜(가명)씨를 마뜩잖게 여긴다. 늘 구박부터 한다. 엄마도 할머니를 싫어한다. 엄마가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헤어졌다. 할머니는 고향에서는 슈퍼를 했고, 서울 와서는 화장품 가게를 하다가 공장을 다녔다.

그러는 사이 딸을 제대로 챙겨주지는 못했다. 도시락은 항상 "밥 한 덩이에 고추장 한 스푼, 멸치 몇 쪼가리 넣어주고 대충" 싸줬다는 엄마의 증언에, 경훈씨는 그녀의 서운함을 가늠한다. 어쩌면 할머니는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생계의 무게를 딸이 감정적으로라도 나눠 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딸은 엄마의 세계를 탈출하고 싶었고, 결혼하면서 생활의 안정을 찾았다.

경훈씨가 어린 시절에도 할머니와 엄마가 서로에게 쌓인 앙금이 보였다. 둘 사이에 갈등은 깊숙한 뿌리가 있는 듯했다. 그렇게 같이 살아보려고 시도하다가 다시 싸우고 따로 살고, 또 같이 살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다치면서 딸은 엄마의 세계를 탈출해서 독자적으로 꾸린 자신의 세계를 침범당했다. 경훈씨도 이 사정을 모르지 않기에, 묵묵히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두 해가 넘어갈 줄을 몰랐지만, 이젠 익숙해졌다. 

만약 순혜씨가 딸이고 직계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의 돌봄을 떠안았다면 어땠을까. 이미 어긋나있던 두 사람의 관계는 더 빠르게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를 돌보는 것을 '일'로 택한 경훈씨의 모습은 분명 낯설다. 하지만 이 같은 경훈씨의 선택 덕분에, 이 가족은 돌봄 과정에서 서로를 원망하고 관계를 갉아먹는 일을 어느정도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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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현 작가가 경훈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거리를 걷는 모습. ⓒ 김예지


연극의 막이 오를 때

경훈씨가 감당하고 있는 스트레스의 무게와 너비와 깊이는 얼마나 될까? 묵직하다고 생각했던 내 질문은 경훈씨의 태도 앞에서 가벼운 깃털이 되어버린다. 그는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의 일상에는 피해자의 눈물도 없고, 효자가 살점 떼어내는 고통도 없다. 그는 돌봄을 그저 일과 중 해야 하는 일로 여기며 뚝딱 해낸다.

"할머니에게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칭찬부터 해요."

할머니는 늘 "알뜰하고 정직한" 성품을 중요시했고, 자신의 삶이 곧 그런 성품을 실천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알뜰함도, 정직함도 증명하지 못한 채 한 평도 안 되는 침대 위에서만 머문다. 그럼 경훈씨는 할머니에게 칭찬 연극을 하거나 악당 역할을 한다.

연극의 막은 할머니의 침묵이 이어질 때 오른다. 소란스레 이런 말 저런 소리를 하다가 할머니가 침묵에 잠기면, 할머니의 자존은 가라앉는 중이다. 경훈씨의 눈에는 마치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듯하다. 그때 바로 연극의 막이 오른다. "할머니는 참 알뜰하고 정직하기도 하지, 그치?" 계속 칭찬을 하다 보면 할머니는 그새 자신이 알뜰하고 정직한 일을 했다고 여긴다.

그것도 안 되면 경훈씨는 악당 역할을 자처한다. 위악적으로 할머니에게 "개천에 내다 버린다"고 말한다. 할머니의 근원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대사다. 그럼 할머니의 내면은 바닥으로 침잠하다가 벌떡 일어선다. 개천에 내쳐지지 않기 위해서, '나쁜' 경훈씨를 혼내기 위해서 다시 힘을 낸다. 알뜰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자신이 버려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경훈씨에게 "경우가 없다", "예의가 아니다"라고 혼을 내다가도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면, 경훈씨가 "'실례'라는 말이 하고 싶은 거죠?"라며 할머니가 놓친 언어를 다시 쥐여준다. 그럴 때 경훈씨는 혼이 나면서도 할머니가 잠시 놓쳐버린 언어를 다시 움켜쥘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힘을 지지해주고 싶다.

존재, 그 자체를 대하는 방법 

경훈씨는 할머니가 예전처럼 돌아올 거란 기대를 버린 후, 할머니의 존재 자체를 느낄 수 있게 됐다. 그는 할머니가 "반려동물" 같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할머니를 반려동물로 비유한 게 하늘이 분노할 불경스러운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아프고 치매가 있다는 이유로 인간임을 인정받지 못하는 서러운 상황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잘해주면 만족하고, 싫으면 불평하고, 허기를 느끼고, 성적 호기심도 있고, 따뜻하고, 배변 욕구가 있고, 할머니가 생명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느낌이 있어요."

나는 매일 늙은 강아지와 함께 출퇴근한다. 강아지의 건강을 살피고, 욕구를 파악하고, 밥을 주고, 똥을 치워주는 건 내 일상이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를 돌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나는 아버지를 돌보는 걸 고통으로 느끼고, 강아지를 돌보는 걸 일상으로 느꼈을까. 어쩌면 나는 강아지의 의존은 당연하지만, 아버지의 의존은 예외적이라고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닐까. 돌봄 강도보다, 존재를 어떻게 느끼느냐의 차이처럼 보였다. 

우리는 타인을 존재 자체로 느낄 수 있을까? 인간이면 으레 '정상'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표준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가 할머니를 돌보았던 2년의 시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같았다.  

경훈씨는 여행을 가지 못한다. 구체적인 미래 계획을 세우는 일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외박이 불가능한 게 큰 제약이다. 여러 생애 계획들이 무산되고 밀려났지만, 성훈씨는 연애와 결혼은 무산시키고 싶지 않다.

"그때는 요양원 적극적으로 알아봐야죠."

언젠가 목이 마르고 우물을 찾듯이 다시 공적 제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경훈씨는 지금 자신의 미래와 할머니의 현재 사이를 조율하는 중이다.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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