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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까지 생각" 전두환 법정 서려던 외국인, 코로나로 결국...

[인터뷰] 5.18 목격 미국 평화봉사단원들, 40주년 행사 참석 무산... 아시아포럼도 온라인 참여

등록 2020.09.15 08:24수정 2020.11.0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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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평화봉사단 단원들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왼쪽에 카메라를 든 인물이 위르겐 힌츠페터이고 오른편 4명(차례대로 주디스 챔벌레인, 팀 원버그, 폴 코트라이트, 데이비드 돌린저)이 평화봉사단 단원들이다. ⓒ 위르겐 힌츠페터, 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의 중요성 때문에 오랫동안 광주 방문을 고대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계획이 취소돼 매우 안타깝다." - 폴 코트라이트(Paul Courtright)
"코로나19 때문에 전두환씨 재판에 직접 참석해 증언할 수 없게 됐다. 나는 필요하다면 기꺼이 격리될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안타깝다." - 데이비드 돌린저(David Dolinger)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올해 광주를 찾았을 외국인들이 <오마이뉴스>에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왔다. 40년 전 한국에서 5.18민주화운동(아래 5.18)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미국 평화봉사단원 네 명(폴 코트라이트, 데이비드 돌린저, 돈 베이커, 빌 에이머스)은 올해 광주를 방문해 5.18 기념식, 광주아시아포럼 등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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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군 헬기의 사격 탄흔 자국이 남아 있는 전일빌딩. ⓒ 이희훈

 
우선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5월 18일 옛 전남도청에서 진행된 5.18 기념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나마 광주아시아포럼이 5월에서 10월로 미뤄지며 광주 방문의 희망을 품었으나 이 역시 최근 온라인 개최가 결정되며 무산됐다(관련 기사 : 야속한 코로나... 10월로 미룬 5.18 국제행사 결국 온라인으로 http://omn.kr/1ov25).

특히 이들 중엔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이(데이비드 돌린저)가 포함돼 있다. 그는 전두환씨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겠단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으나 이 역시 코로나19 등 사정으로 인해 과거 영상으로 진술을 대체하기로 했다. <오마이뉴스>는 네 인물과 13~14일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랑하는 한국에 가고 싶었는데..."
 

영암에서 평화봉사단으로 근무했던 데이비드 돌린저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의 참상을 목격했다. 사진은 2005년 가족과 함께 한국을 찾은 데이비드 돌린저가 5.18재단 직원과 함께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찍은 것이다. ⓒ 데이비드 돌린저 제공

 
평화봉사단은 1961년 미국 정부가 만든 청년 봉사단체로 개발도상국에 파견돼 교육, 의료, 농수산기술 등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다. 한국엔 1966~1981년 평화봉사단이 들어와 있었고, 인터뷰를 진행한 네 명은 1980년 한국에 머물며 5.18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이다.

데이비드 돌린저와 폴 코트라이트는 5.18 중 상당 기간 광주에 있었던 인물이다. 두 사람은 고인이 된 팀 원버그(Tim Warnberg)와 함께 광주 시내 곳곳에서 참상을 목격했고 외신기자 인터뷰를 주선하고 직접 통역을 맡기도 했다.

데이비드 돌린저는 당시 자신이 찍은 사진과 모았던 자료를 서울에 있던 다른 평화봉사단원에게 전했고, 이들에 의해 해당 내용이 외신에 보도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폴 코트라이트는 당시 경험을 담아 올해 회고록 <5.18 푸른 눈의 증인>(영문판 <Witnessing Gwangju>)을 내놓기도 했다.  

데이비드 돌린저는 "나는 매년 5월 광주가 그리웠다"면서 "한국과 광주는 내가 고향으로 생각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아내와 함께 한국을 찾을 예정이었던 그는 "우리는 한국의 도시와 사람들을 사랑해 (내가 근무했던) 영암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면서 "뿐만 아니라 진도, 해남, 완도, 소록도 등 전라남도의 모습을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나는 5.18의 완전한 진실이 드러나지 않아 여전히 두렵다. 5.18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점점 나이를 먹고 있고 매년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나는 한국 정부가 5.18에 대한 개개인의 이야기를 모두 모아 문서화하길 바란다. 5.18의 일원이었던 이들의 눈을 통해 우리는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특히 그동안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밝혀온 데이비드 돌린저는 "광주에서 진행 중인 전두환씨 재판에 내가 직접 증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라며 "나는 기꺼이 격리될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검찰은 이전 (나의 영상으로) 진술을 대체하겠다고 했다. (재판과 관련된) 모든 것이 잘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어 "광주에서 겪은 이야기를 내년에 책으로 출판할 준비를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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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던 폴 코트라이트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의 참상을 목격했다. 사진은 나주에서 근무하던 폴 코트라이트의 모습. ⓒ 폴 코트라이트 제공

 

나주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던 폴 코트라이트의 최근 모습. ⓒ 폴 코트라이트 제공

 
폴 코트라이트는 "5.18 40주년에 광주를 방문해 (가해자의) 인정과 화해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면서 "또한 이번에 낸 책을 홍보하기 위해 한국 곳곳을 여행하길 원했고 제 이야기가 젊은이들에게 울림을 주길 바랐다"라고 말했다.


"한국엔 아직도 5.18의 진실을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정치적 성향이 없는 나이든 외국인으로서, 내 목소리가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비춰지길 바란다. (왜곡하는 이들의) 마음이 바뀌든, 그렇지 않든 나는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는 이 중요한 시기에 내가 한국에 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지만 나의 정신은 '우리나라(직접 한글로 표현, 대한민국을 의미 - 기자 주)'에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있다."

"희생자와 생존자에게 경의 표하고 싶었다"
 

1971~1974년 광주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던 도널드 베이커. 1980년 연구를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던 그는 1980년 5월 27일 광주에 가 5.18민주화운동 참상의 끝자락을 목격했다. ⓒ 도널드 베이커 제공

  

1971~1974년 광주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던 도널드 베이커. 1980년 연구를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던 그는 1980년 5월 27일 광주에 가 5.18민주화운동 참상의 끝자락을 목격했다. 그는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도널드 베이커 제공

 
도널드 베이커(Donald Baker)와 빌 에이머스(Bill Amos)는 5.18을 비교적 간접적으로 경험한 인물이다. 당시 서울에 머물고 있던 도널드 베이커는 자신이 평화봉사단원으로 근무했던 곳에서 큰 사건이 벌어졌단 소식을 듣고 곧장 광주로 이동했다. 그가 광주에 도착했던 시점은 5월 27일 항쟁이 막 진압된 직후였다. 그는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아시아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도널드 베이커는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경험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진단을 받았었다"라며 "상무대 영창을 비롯한 민주화성지를 방문하고 싶었다"라고 운을 뗐다.

"1980년 서울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중 단파라디오를 통해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접하게 됐다. 저는 그곳에 있는 친구들, 특히 제가 3년 동안 살았던 하숙집을 운영하던 가족들이 살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곳에 가야 했다. 그들의 생존을 확인한 후 나는 일본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다. 너무 화가 나서 그 시점엔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광주시민들이 '전두환의 불법에 저항했다'는 자부심을 표출하는 것을 보면 (1980년 5월) 기억에 대한 나의 고통이 덜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올해 광주를 방문할 수 있었다면 옛 전남도청 맞은편 체육관(상무관)의 어느 할머니와 어느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 저편으로 밀어넣을 수 있길 바랐다. 그 할머니는 손자의 시신이 안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줄을 서 있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의 관을 쫓아 내려오며 '아들아 가지마'를 외치고 있었다. 또한 나는 1970년대 아이들을 가르치던 동신중학교 인근 길모퉁이의 완전무장한 군인들에 대한 기억으로부터도 무뎌지고 싶었다."


빌 에이머스는 "5.18 40주년을 맞아 광주를 방문해 희생자와 생존자에게 경의를 표하길 고대했다"면서 "5월에 이어 10월에까지 한국에 가지 못해 깊이 실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5.18 당시 안양에서 근무하고 있던 그는 다른 목격자의 증언과 과거 목포에서의 근무 경험을 떠올려 1999년 <더 시드 오브 조이(The Seed of Joy)>란 제목의 소설을 내놨다. 5.18을 다룬 최초의 외국 소설이다.

한국인과 결혼한 빌 에이머스는 "이번에 계획했던 여행은 아내와의 첫 한국 여행이었다"며 "아내는 약 2년에 한 번 어머니를 뵈러 한국에 가지만 그동안 우리가 동시에 한국에 갈 여유가 없었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에서 더 많은 일을 할 계획이었다. 광주아시아포럼에 참여하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항쟁 현장 곳곳을 둘러보려고 했다"면서 "또한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나의 다음 소설을 준비하며 남해안을 둘러보고, 평택에 계신 장모님도 뵙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1979년~1981년 한국에 머물렀던 빌 에이머스가 1979년 자신이 근무하던 목포에서 한 학생과 찍은 사진이다. ⓒ 빌 에이머스 제공

  

목포, 안양에서 평화봉사단으로 근무한 빌 에이머스는 주변 동료들의 증언과 목포에서의 근무 경험을 토대로 1999년 소설 'The Seed of Joy'를 썼다. 이 소설은 외국에서 나온 첫 5.18민주화운동 관련 소설이다. ⓒ 빌 에이머스 제공

 
"내가 캐나다 대학생들에게 5.18 가르치는 이유는..."

한국에 직접 방문하진 못하지만, 네 사람은 온라인을 통해 10월에 열리는 광주아시아포럼에 참여할 계획이다. 1999년부터 매년 5월 진행돼온 광주아시아포럼은 아시아의 인권, 민주주의, 평화를 주제로 20~30여 개국 인사가 모였던 행사다.

올해 주제는 '아시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연대'로 주최 측은 지난 5월 일부 세션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나머지 세션의 경우 10월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려 했지만 코로나19 확산이 이어지자 결국 온라인 개최를 결정했다.

빌 에이머스는 "(온라인을 통해) 저는 '어둠 속 방관자의 기억'을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라며 "이는 광주 밖에서 항쟁을 관찰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베이커는 "광주가 제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말씀드리려고 한다"라며 "광주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그 일이 결코 잊히면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는 내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의 학생들에게 매년 5.18을 가르치는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돌린저는 "이미 재단에 서면 원고를 제출했고 곧 포럼에 사용될 영상을 촬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폴 코트라이트도 "포럼 주최 측 요청대로 20분짜리 영상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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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에 위치한 국립5.18민주묘지. ⓒ 이희훈

덧붙이는 글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5.18 #평화봉사단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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