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6 07:48최종 업데이트 20.09.16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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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산막에 삽니다. ⓒ 송성영

 
"2년 넘었죠?"
"햇수로는 그렇죠. 병원에서 판정 받은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네요."
"약은요?"
"병원 약은 전혀 먹지 않고 있어요."

"병원 약도 없이 이리 버티시는 걸 보면 참 대단하십니다. 그럼 그동안 검사도 전혀 안 받아 보셨겠네요?"
"한약은 1년 정도 복용했고요. 암 판정 받고 난 이후로 내시경이나 MRI 같은 검사는 전혀 받아본 적 없어요."


"한 번 받아보시지."
"받아보면 뭘 어쩌겠어요."
"멈췄는지 진행됐는지."
"어차피 수술 하지 않을 것, 그냥 이대로가 좋아요.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죠 뭐."
"그래도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불안해 할 텐데요."


당사자인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궁금해 합니다. 그동안 암세포가 전신에 얼마나 퍼졌는지 아니면 멈췄는지를.

그렇습니다. 저는 암환자 입니다. 그러니까 지지난해, 2018년 늦가을이었습니다. 곶감이 한창 당도를 높일 무렵인 11월 말경이었습니다. 월세로 살고 있는 산속 허름한 농가의 생태화장실에서 변비 끼가 있는 큰일을 힘겹게 보고 나오는데 갑자기 눈앞이 침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산속 오두막집에서 본 밤풍경 ⓒ 송성영

 
2년 전, 그날

두 다리가 휘청거리고 심한 빈혈에 땅바닥이 어질어질 일어나 그대로 맥없이 폭삭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일어서려고 힘을 쓰면 쓸수록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어? 어? 왜 이러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다시 용을 써봤지만 그럴수록 숨구멍이 옥죄어 왔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산속 오두막집, 산막(이후 산막)에는 나 혼자뿐이었습니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산속의 외딴집이라 크게 소리 쳐도 듣는 이 없지만 그럴 힘도 없었습니다. 주머니에서 손전화기를 꺼내 큰 아들 인효에게 겨우 전화를 걸었습니다. 본래 혼자 생활하는데 때마침 그 전날, 서울을 오가며 음악활동을 하는 두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놀러 왔습니다.

밤새 모닥불 피우고 노래 부르며 신나게 놀다가 그 날 아침 겸 점심을 챙겨먹고 두 아들마저 읍내 버스터미널에 친구들 배웅 나갔던 것입니다. 다들 산막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내 몸은 멀쩡했습니다. 이틀 내내 마늘과 양파 심을 밭에 거름을 내고 두 아들과 친구들에게 뼈다귀감자탕까지 요리해 먹였을 정도였으니까요. 아, 그 전날 큼직한 거름 포대를 밭으로 옮길 때 빈혈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인효야... 어..얼릉 와봐야겠다..."
"아빠! 왜 그려! 왜 그러시는데!"
"내가.. 몸이... 이상 혀...하...하..어지러워...이.. 일어나질... 못하겠다..."
"아빠 금방 갈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돌이켜 생각해 보면 119를 불러야 했는데 경황이 없어 당장 두 아들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가쁜 숨이 더욱 더 심해졌습니다. 어떻게 하든 옥죄어 오는 숨구멍을 열어보겠노라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소용없었습니다. 숨구멍은 점점 막혀왔습니다. 순간, 숨 막힘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땅바닥을 박박 기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쥐약 먹은 개처럼 흙바닥에 엎드려 어떻게든 좀 더 신선한 공기를 들이켜 살아보겠노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두 아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숨 막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렇게 처참하게 죽는구나... '폼생폼사'의 인생,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최대한의 숨을 끌어 모아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습니다. 단전호흡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두세 차례의 들숨날숨조차 버텨내지 못하고 결가부좌를 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죽음이 뇌리를 스치며 쓰러지는 순간, 하필이면 저만치 처마 끝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곶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숨 막혀 죽어가는 순간 곶감이 눈에 밟혔다. ⓒ 송성영

 
매년 산막에서 열리는, 그 어떤 보조금이나 자본에 매이지 않고 무료공연 무료관람으로 서로 베풀고 나누는 음악회, 배부른 잔치에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나눠줄 곶감이었습니다. 나눠주고 남은 곶감을 팔아 밑반찬 거리라도 마련하려고 매일 매일 보름 넘게 천 개가 넘는 감을 깎아 매달아 놓았던 것입니다.(관련기사 : 모든 것이 무료, '배부른 잔치'에 초대합니다 http://omn.kr/1iofo )

생의 마지막이 될 수 있었던 그 몇 초의 순간에 곶감 걱정을 하고 있다니. 아직은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 쓰러진 상태에서 사력을 다해 마지막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는데 짙어지는 어둠속에서 마치 한줄기 빛이 새어들어 오듯 숨통이 조금씩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기진맥진한 탈수 상태에서의 달콤한 생명수 한 모금처럼 신선한 공기가 깊숙이 스며들어와 꽉 막힌 온몸의 기혈을 조금씩 열어 놓았습니다.

후에 알게 된 것인데 옆으로 비스듬히 꼬꾸라진 자세가 어머니 뱃속의 태아 자세였습니다. 호흡을 중시 여기는 수행자들은 이를 태아 호흡법이라 합니다. 태아 호흡법은 보다 깊게 숨통을 열어준다고 합니다.

검은 변

그렇게 생사의 경계선에 걸터앉아 생(生)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달콤한 숨을 내쉬고 있는데 인효, 인상 두 아들이 도착했습니다. 녀석들은 흙바닥에 꼬꾸라져 있는 내게 넋이 나간 표정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빠 왜 그래! 괜찮어? 괜찮어? 119 부를까..."
"이제 좀 괜찮아... 아빠 당장 안 죽어 짜식들아..."
"못 일어나겠으면 내 등에 업혀. 일단 방으로 들어가자."
"그냥 이대로 조금만 더 누워 있어야겠다. 공기가 달콤하니 좋다."

"왜 그러는데... 어디가 아픈겨?"
"나도 모르겠다.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몰려오고 숨이 막혀서... 깜박하는 사이에 황천길 갈 뻔했다..."
"병원에 가 보자."
"좀 있어보고..."
"지금 가자니까."
"인저 숨이 돌아 왔으니께 방에서 좀 쉬자. 심하게 움직이면 더 안 좋아질 수 있으니까."


방안에서 겨우 숨을 쉬어가며 누워 있는데 화장실에 다녀온 한 녀석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빠 변 색깔이 쌔꺼멓던데... 그거 피가 굳은 거 아녀?"
"모르겠다. 어제 현석이네 집에서 평곤 아저씨랑 낙지 삶아 머리를 통째로 먹었는데 그 변은 낙지 먹물일 거여."
"낙지 먹물이 그렇게 시꺼메? 석탄 덩어리처럼?"
"낙지 먹물? 완전 시꺼메. 시꺼먼스처럼..."
"어이구 지금 농담이 나와?"
"사는 게 별거 있냐. 이럴수록 웃어야지. 아까 숨이 막혀 다 죽어 가는데 그 마지막 순간에 곶감이 눈앞에 어른거리더라. 인생 별거 없어 그냥 코미디여 코미디..."


다음날 아침 겨우 몸을 일으켜 대변을 보았습니다. 이번에도 석탄 덩어리처럼 까맣고 딱딱한 변을 힘겹게 내보냈습니다. 그 변을 보고 나서 서 있는 것은 고사하고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로 다시 심한 현기증이 몰려왔습니다.

현기증을 잠재울 영양 보충용으로 푹 삶은 뼛국을 먹고 사흘을 버텼지만 현기증은 여전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화장실 가는 길이 멀기만 했습니다. 변조차 보기 힘들었습니다. 힘을 쓰면 현기증이 몰려오니 힘을 쓸 수도 없고 결국 두 아들의 성화로 힘겹게 자동차에 실려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둠 깔린 산막 주변 ⓒ 송성영

 
의사가 자초지종 물어가며 눈 밑을 까내리더니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거울을 보라 했습니다.

"얼굴색 좀 보세요. 핏기가 하나도 없잖아요. 검은 변은 혈변입니다."
"예?"
"피를 쏟았다고요! 당장 병원에 왔어야지요. 그러다 진짜 죽어요. 지금 살아 있는 것만 해도 천운입니다."


급히 응급실에 옮겨져 온갖 주사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난생처음 병원에 입원하여 다섯 봉지의 피를 수혈했습니다. 낙지 먹물이 아닌 피를 그만큼 쏟았던 것입니다.

의사 말대로 살아난 것이 천운이었습니다.

어떤 스님은 그럽니다. 죽어가는 순간에 누군가에게 주고 싶었던 그 곶감의 자비로운 마음이 나를 살렸다고. 하지만 나의 불행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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