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안전은 뒷전... 고3은 입시나 준비하는 존재인가요?

[주장] '고3은 등교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 바뀌어야

등록 2020.08.31 17:24수정 2020.08.31 17:24
1
원고료로 응원
 
a

코로나19로 인해 개학 연기 후 고3의 첫 등교일인 5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 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 ⓒ 이희훈

  
코로나 시국이다. 확산세가 빨라지면서 대부분의 사람이 감염의 위협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길 꺼리고 있다. 영리적인 목적이 강한 회사조차도 가능하다면 재택근무 조치를 하고 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은 왜 학교에 가야 하나.

정부는 말로만 절체절명의 위기라면서 고3은 등교하라고 한다. 만일 고3이 학교에서 코로나에 감염된다면 여지없이 인재일 것이다. 인재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정부가 방역과 안전을 최우선시했다면, 모든 학생의 등교를 금지하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정부는 등교를 강행했다. 지난 2017년, 지진으로 인해 수능을 연기한 정부와는 딴판이다.

정부 입장에서 고3 등교가 방역의 영역이 아니라 경제처럼 정치적인 영역이라고 해석하고, 이번 조치가 수능을 앞둔 고3을 위해 배려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조치로 고3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공부에 몰두해야 하는 존재라고 천명한 꼴이다.
  
학생은 공부하고 입시하는 존재인가
   
a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왼쪽부터),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 함께 수도권 유초중고 원격수업 전환 발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교육계는 고등학교 3학년은 온라인 수업 대상에서 왜 제외되었는지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대학입시 수시모집 준비와 대학수학능력시험(12월3일)을 남겨둔 상황에서 등교와 대면수업이 불가피하다고만 했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고3은 웬만하면 등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3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공부를 해야 하는 존재로 다루는 정부에 대해 문제제기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이런 사회의 잘못된 인식이 녹아있는 것이다.
   
이 문제제기의 기본은 '학생은 공부하고 입시하는 존재인가?'로부터 시작한다. 현재 고3의 등교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은 '학생은 입시를 준비하는 존재'라는 사회적인 동의가 암묵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생은 입시를 준비하는 존재이니,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그것을 보여주는 고3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모든 학년은 고3이 될 것이고 고3만 공부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기에, '고3은 등교하라'라는 말은 학생들에게 '너네는 공부나 하는 존재'라는 뜻을 전달하는 셈이다.
   
밤늦게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집에 들어온 학생이 새벽같이 일어나 0교시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성적이 좋은 대학을 담보하고 좋은 대학이 좋은 연봉을 보장한다는 낡아가는 명제를 바탕으로, 사회는 '학생 학대'를 당연시해왔다. 그 때문에 인권과 주체성을 버리고 쉴 틈 없이 공부만 하다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이상적인 학생의 모습이었다.
  
문제는 이상적인 학생이 미래에 좋은 연봉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다. 이상적인 학생의 모습을 만들어내면서 사회적으로는 다른 청소년들에게 그 이상을 강조하고, 주관적인 삶의 가치 대신 물질주의적인 삶의 가치를 일률적으로 주입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 예시가 고3이라는 이유로 등교를 강행하는 교육부의 모습이다.

현재 교육부는 높은 연봉은 좋은 미래를 보장하며 그를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뜻을 학생에게 전달하고 있다. 위의 문장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물질주의적인 사고관이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사고관을 가진 학생에게도 주입하여 학생들 간의 경쟁과 차별을 유도한다는 것은 문제이다.
  
언제부터 고3은 왜 불쌍한 존재였는가. 고3은 왜 대입을 준비하는 존재인가. 많은 학생과 선생들에게 이 질문을 하면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꿈을 위해 대학을 가는데 대입을 앞둔 시기에 이들은 성적에 맞추어 학과를 쉽게 바꾼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꿈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철학적인 생각이 들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다수 학생의 꿈은 현재 자신이 갖춘 성적이나 재능으로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좋아 보이는 목표직업이다. 교사들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조건에 맞추어 학과를 바꾸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물론 학생들도 자신의 조건에서 최적의 학교와 직업을 제안하기에 문제 삼지 않는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꿈이란 대입 위주의 교육정책을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은 성적에 따라 사람을 사회적으로 맞는 직업에 앉혀놓는 AI나 다름없다.
  
고3 등교는 '배려'가 아니다
 
 
a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가 시행된 6월 18일 오전 서울 상암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 교육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가 워낙 복합적이어서 대입과정 자체에 대한 비판은 잘 하진 않는다. 그러나 대입과정은 대부분의 복합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모든 것을 물질주의적으로 판단하게 만드는 것, 친구를 경쟁자로 만드는 것, 성적에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담는 것 모두 대입을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었다. 이런 교육이 사회에 나가서는 대학을 가지 않거나 못 간 사람들을 패배자로 간주하게 만들고, 또다시 무한경쟁의 늪에 빠트려 끊임없이 패배자를 만든다.
  
인천국제공항 사태를 보면 이 문제점이 뚜렷이 보인다. 인천국제공항은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경력직 사원을 시험까지 거쳐서 정규직 채용하려 했다. 그러나 이들의 정규직 전환은 청년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다. 그 이면에는 자신보다 학력이 낮을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게 된다는 이유가 내포되어 있었다. 

남의 일이 잘 풀리는 것을 못 보는 건 이들이 경쟁자여서다. 이들이 잘 풀리는 것에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적으로 자신들의 모든 가치와 가능성을 매기기 때문이다. 이런 청년들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들을 이렇게 키워온 건 다름 아닌 교육이다.

고3 등교는 대입을 앞둔 고3을 위한 조치가 아니다. 왜냐하면 학생은 대학을 준비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고3, 19세의 사람들을 위해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해버린 대학을 바로 세우고, 하고자 하는 일을 쉽게 시작하고 진로 탐색을 할 시간이 부족하면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하루 빨리 학생을 패배자 양성소인 한국 교육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정부는 수능을 적어도 '안전 뒤'로 보냈어야 한다. 정부가 학생들을 배려한다면 수능을 학생들의 우선순위에서 끝없이 밀려나게 해야 한다.

이젠 우리나라에서 19세의 사람은 대입을 앞둔 불쌍한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19세는 앞으로 미래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사회에 문제를 느껴 정치를 시작할 수 있으며, 기발한 생각으로 사업을 준비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 말고도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입이 전제되어서는 안 된다. 더는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19세의 모습을 아름다움이나 멋짐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쓰지만, 정부가 수능을 이참에 폐지한다거나 대입 위주의 입시체계를 완전히 틀을 바꿀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진보 대통령에 진보 교육감들이라고 한들, 그들에게 엄청난 진보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고3의 등교 시기를 늦추고, 그게 수능에 영향을 준다면 무기한 연기라는 결단 정도는 기대했다. '대학 못가더라도 학생들이 안전해야 해', '대학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학생들은 어쩔 수 없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길 기대했다.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의 거부는 그저 대학을 안 가겠다는 선택이 아니다. 지금의 입시가, 대학이, 교육이, 그리고 사회가 잘못되었음을, 온몸으로 외치는 것이다. 일단 그래도 대학은 가고 보라는 유예의 주문에 맞서, 지금 여기서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다. 더 이상 교육에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혀만 차지 말고, 지금부터 같이 바꿔나가야 한다고 손을 내미는 몸짓이다."

2011년 '투명가방끈'이라는 단체에서 한 대학입시거부 선언이다. 이 선언을 마지막으로 이글이 단순히 정부의 조치를 비판하는 글이 아니라 조치를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 자체를 비판하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인식을 바꿔야 교육부의 태도가 바뀐다. 이건 정권의 몫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다.
덧붙이는 글 투명가방끈 대학입시거부선언 보기, 거부선언 참여하기 https://hiddenbag.campaignus.me/18
#고3 #교육부 #입시 #청소년 #교육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3. 3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4. 4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5. 5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