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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옆에서 70분 동안 오열한 까닭

[70년 기다림, 감동의 70분] 장진호 전투 전사자 고 김정용 일병 누이동생 김민자씨

등록 2020.08.13 20:42수정 2020.08.1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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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정용 일병의 누이동생 김민자씨. 지난 6월29일 열린 ‘6ㆍ25 전사자 봉환유해 합동안장식’ 장면. ⓒ 국가보훈처 박병주

 
"제자리 섯! 뒤로 돌앗! 오른 팔 올렷!"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김민자씨는 70년 전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6.25 전쟁이 터진 뒤에 사라졌다가 한 달여 만에 군복을 입고 나타난 4살 터울의 오빠 김정용씨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던 구령소리였다. 오빠인 김정용씨는 "7분 휴가를 허락받고 왔다"면서 가족들에게 얼굴만 내비친 채 다시 집밖으로 나서는 참이었다.

평소 오빠와 장난을 자주 쳤던 김씨는 학교에서 받았던 제식훈련을 떠올리며 군대식으로 오빠를 멈춰 세웠다. 그 뒤 생소한 차림으로 나타난 오빠의 새로운 정보를 7분 만에 외워버렸다. 벗긴 모자에는 USA가 찍혔고, 군복 우측 상단에는 UN마크가 선명했다. 말 그림이 그려진 부대 마크도 확인했다. 14살이었던 그에게는 암호 같은 숫자도 있었다.

소속 미 7사단, 군번 K1113053.

그동안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던 이 숫자로 인해 그는 70년 만에 오빠와 다시 만났다. '7분의 기억'이 70년만의 만남을 성사시킨 것이다.

지난 3일 오후, 김씨를 전화 인터뷰했다.

[70분간의 만남] "대통령 옆에서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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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에서 국군 전사자 147명의 호국영웅이 한국으로 귀국했다. ⓒ 국가보훈처 박병주

 
지난 6월 25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에서 국군 전사자 147명의 호국영웅이 한국으로 귀국했다. 70분간 진행된 이날 행사장 곳곳에서 눈물이 번졌다. 신원이 확인된 7위(位)의 장진호 전사자 유해가 공군 비행기에서 나올 때에는 배우 최수종씨도 연신 눈물을 닦으며 사회를 봤다.

14세의 소녀였던 김씨는 84살이 되어 그 자리에 참석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 부부 옆 쪽에 서서 70년 만에 유해로 돌아와 조국에 복귀 신고를 하는 오빠를 맞았다.

"행사 내내 오열했습니다. 아니, 인천에서 서울공항으로 출발할 때부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70년 만에 한없이 울고 통곡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찾으려고 했던 오빠가 차가운 곳에 누워 있다가 이제야 돌아온 것 같습니다."

김씨를 더욱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나머지 140구 전쟁 영웅의 유해였단다. 그는 "지금도 누워 있으면 비행기에서 유해가 나오는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눈물이 난다"면서 "부모와 가족의 마음은 다 같을 텐데,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유해와 아직도 유해조차 찾지 못한 유가족들의 마음이 그려진다"고 말했다.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는 올해까지 유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 전사자 12만2609명의 호국 영웅의 헌신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끝까지 찾아야 할 122609 태극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날 70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와 복귀신고를 한 147구의 유해는 북한에서 발굴되어 미국 DPAA로 이송해 보관하던 중 한미간 공동감식 결과 국군전사자로 판정됐다.

김씨는 "전사자들은 대부분 자식들이 4~5살 정도 되는 어릴 때 헤어졌기 때문에 유해가 발굴되더라도 가족이라는 것을 확인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보다 많은 유가족들의 품으로 전사자들의 유해를 돌려주면 좋겠다"면서 "행사에 참석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유해를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70년 만에 받은 사망진단서] 보이스피싱? "군번 보고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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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 ⓒ 국가보훈처 박병주

 
당시 언론 등을 통해 행사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에게 '147구'는 감정이 배제된 단순한 숫자일 뿐이다. 하지만 김씨에게는 70년이라는 세월동안 켜켜이 쌓인 오빠와의 추억과 그리움, 이산의 고통이 더해진 육중한 무게로 다가왔다.

"오빠는 초등학생 때부터 4살 아래인 나를 깨워서 아침체조를 하러 갔어요. 그림을 너무 잘 그렸죠. 미국 영화배우들을 그렸는데, 제가 믿지 않자 저를 의자에 앉혔습니다. '너를 그리면 믿을래?' 하더군요. 오빠 방에 가면 초등학교 교복을 입은 내 그림이 있었어요. 함께 장난을 치며 놀았고, 자전거 타는 법도 알려줬습니다. 제 생일 때에는 '가진 돈이 없다'면서 필통에 예쁘게 깎은 연필 한 다스를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그의 오빠가 부산상고를 졸업하던 해에 6.25 전쟁이 났다. 오빠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대학교에 입학 원서를 작성하러 가다가 친구들과 함께 입대했다. 얼마 뒤 군복을 입고 집에 잠깐 들렀던 오빠가 김씨에게 한 마지막 인사는 "민자야, 오빠 간다. 엄마, 아버지 잘 모셔라"였다고 한다.

김씨는 그 뒤 오빠가 군사우편으로 보내온 편지 한통을 받았다. 그가 기억하는 내용은 대략 이랬다.

"지금은 흥남부두에 앉아서 쪽박 달을 쳐다보고 있다. 달이 아버지께서 자시는 막걸리잔 같다. 너한테 벌을 서던 생각이 나서 혼자 웃으면서 잠이 들기도 한다. 부모님 생각을 하면서 민자 앞으로 편지를 쓴다. 부디 답장을 길게 보내다오."

전선에서 달을 쳐다보면서 아버지의 막걸리 잔을 떠올릴 정도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애절했던 것이다. 김씨가 당시 오빠의 편지를 읽어주자, 부모님은 대성통곡했다. 부친은 특히 "그 놈이 왜 거기까지 갔노. 전쟁이 뭐 길래 자식 키워놓으니 이렇게 가네. 어디 무서워서 자식 키우겠나"라고 슬퍼했다고 한다.

이게 마지막이었다. 김씨는 "부산 집에 화재가 발생해서 오빠의 사진과 그림, 편지와 유품, 모든 게 사라졌다"고 원통해했다. 7분 만에 외워버린 군번을 포함한 오빠의 흔적은 오랫동안 김씨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었다.

최근 김씨는 오빠의 소식을 접했다. 육군참모총장이 등기우편으로 보내온 5쪽 짜리 '사망 진단서'였다.
 
소속 : 미7사단 49포병대대
군번 : K1113053
계급 : 故 일병
전사 일자 : 1950년 12월 12일
전사 장소 : 북한 장진호

"사망진단서를 보내오기 얼마 전에 유해발굴단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김정용 일병을 아느냐고 묻더라고요. 안다고 했죠. 유해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딸에게 전했더니 010으로 시작하는 유해발굴단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보이스피싱일 것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육군본부에 전화기도 많을 텐데, 왜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을까? 의심을 했죠."

집에 배달된 사망진단서의 군번을 보는 순간, 김씨의 의심은 통곡으로 바뀌었다. 70년 전에 헤어진 기억이 소환됐다.

[70년의 교훈] "전쟁은 절대로, 절대로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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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정용 일병의 누이동생 김민자씨. ⓒ 국가보훈처 박병주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10여 년 전에도 김씨는 육군본부로부터 오빠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에도 군번과 이름이 같았다. 이 때 김씨의 가족들은 대전 현충원에 태극기와 가족사진을 걸어놓고 한참을 울었단다. 나중에 동명이인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황망했던 기억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2009년 6월 6일 현충일에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했다. 이번에 고 김정용 일병 유해의 신원이 확인된 건 당시 DNA 검사 때문이었다. 특히 김씨가 기억하고 있었던 소속 부대와 군번도 일병 김정용을 찾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지난 6월 29일 고 김정용 일병을 포함한 7위(位)의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육군본부는 고(故) 김정용 일병 등 7위(位)는 6ㆍ25전쟁 시 육군야전재무대와 미7사단 소속으로 혹한 속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인 장진호 전투에 참전해 현지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서욱 육군참모총장은 이날 '6ㆍ25 전사자 봉환유해 합동안장식' 조사에서 "일곱 분의 호국영웅님들께서는 국가의 부름에 응하셨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다"며 "대한민국과 우리가 누리는 번영은 이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70년 동안의 기다림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회한의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아들의 생사를 수소문하러 다니실 때 수건을 2장을 가지고 다니셨는데, 1장은 머리 위에 얹어 땀을 닦으셨고, 나머지 1장은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생전에는 '아들이 죽었는데 내가 호사를 누릴 수 없다'면서 평생 아픈 마음을 안고 살아가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는 성장 절차가 있습니다. 어린이부터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등으로 들어서죠. 오빠는 20대에서 껑충 뛰어서 90대에 돌아가셨어요. 윤회로 다시 태어나신다면 나머지 30대, 40대, 50대 등 한 단계씩 밟아가면서 세월을 보냈으면 합니다."


김씨에게 '우리는 전쟁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기계는 하룻밤에 만들 수 있지만 아이들을 잉태해서 20년을 키우려면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대전 현충원에 가보니 수많은 청년들이 누워있었다"면서 "전쟁은 절대로, 절대로 안된다"고 강조했다.

고 김정용 일병 등의 유해가 조국과 유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었던 것도 문재인 정부 들어서 남북관계에 잠시 훈풍이 불던 지난 2018년 때에 미군에 의해 발굴됐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아직도 남북관계가 위태위태하고 겁날 때가 많다"면서 "현 정부는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역시, 김씨가 6.25전쟁 70주년 행사 때 문재인 대통령 옆에서 오열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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