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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순이의 최후? 거북이가 부러운 현실이 서글프다

[기사 공모 - 부동산 때문에 생긴 일] 혼자 사는 나에게도 집은 필요하다

등록 2020.08.03 13:46수정 2020.08.0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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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집순이의 최후'라는 제목의 글이 화제를 모았다. 만만치 않은 조회 수에 댓글의 양도 상당하기에 호기심이 동해 나도 모르게 마우스를 클릭했다. 잠시 후, 모니터에 떠오른 것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어린이용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에피소드 중 한 대목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우스 신과 헤라 여신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때, 켈로네는 결혼식에 가기 귀찮아진 나머지 이렇게 투덜거린다.

"남의 결혼식 따위에 내가 왜 가? 차라리 집에서 뒹굴고 말지."

사실을 알게 된 헤라 여신은 격분한다. 그래서 헤라 여신은,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 혼자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편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집순이' 켈로네를 거북이로 만들어 버린다. "집이 그렇게 좋으면 평생 그렇게 살려무나"라는 살벌한 저주의 말과 함께.

아니,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야?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 것도 잠깐,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나가는 동안 나는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등껍질을 집에 빗대서 평생 집을 짊어지고 살게 된 거북이의 운명을 두고 네티즌 대부분이 하나같이 비슷한 농담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앗싸, 내 집 마련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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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 언스플래쉬

 
대한민국에서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미션'인지를 헤아려보면, 등껍질을 집 삼아 살면 그만인 거북이가 오히려 부럽다는 의미의 그 댓글이 단박에 이해가 될 것이다. 요즘 말대로 이 '뼈를 때리는' 냉소적인 농담들 사이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절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오랫동안 내 집 마련을 꿈꾸고 있지만, 지금 같아선 차라리 다음 생에 거북이로 태어나는 편이 더 빠를 수도 있겠다고 한탄하는 신세다.

대출 받자고 결혼을? 

나는 작년에 새로 이사를 했다. 혼자 사는 처지다 보니 대부분의 가전이 필수 옵션으로 장착된 15평 남짓한 빌라를 전세로 얻게 되었다. 그런데 이 손바닥만 한 집의 전세 보증금이 생각보다 제법 비쌌다. 신축 건물인 것과 대로변에 위치해서 치안이 보장되어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예산을 초과하는 보증금 때문에 처음에는 계약을 망설였다. 그러나 서울에서 그나마 집값이 저렴하기로 알려진 동네인 데다가, 아파트가 아닌 다음에야 여자 혼자 안전하게 살 만한 곳에 자리 잡은 적당한 가격의 전셋집을 찾기가 쉽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나는 결국 이 집을 계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에 살던 집의 보증금을 빼고, 모자라는 것은 전세 자금 대출을 받을 요량으로 은행을 찾았다. 그런데 거기에서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대출이 이자도 제일 싸고, 얻기도 쉬우니까 혼인신고를 먼저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친절하게 귀띔해주는 은행 직원 때문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것 보세요, 대출받자고 결혼할 수는 없잖아요?"

문 대통령은 2018년, 신혼부부와 청년들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직접 발표한 바 있다. 2022년까지 신혼부부 주거 지원을 88만 가구로 늘리고, 신혼부부가 집을 사거나 전 월세를 얻을 때 대출 지원을 수월히 받을 수 있도록 하며, 청년 주거 지원도 대폭 확대하겠다는 요지의 발표문을 읽으며 나는 그 안에 1인 가정에 관한 논의가 빠져있다는 사실이 몹시 서운했다. 그런데 이번 7·10 부동산 대책 또한 어쩐지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 같지가 같다.

정부가 집값을 잡으려 하는 데에는 분명 극심한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하는 속셈이 들어있을 것이다. 집이 없어 아이를 낳는 것을 미루는 부부가 없도록, 집이 없어 결혼하지 않는 청년이 없도록 미리 손을 쓰겠다는 것인데 그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고, 청년이라 부르기에도 다소 애매하게 나이 들어 버린 나 같은 1인 가정의 가장은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마다 번번이 소외당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018년 부동산 정책 발표 시, 문 대통령은 발표문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집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옳은 말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않아도, 집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어야 마땅하지 않나? 

물론 모든 법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매번 바뀌는 부동산 정책마다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는 사람의 주거 문제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은 어쩐지 조금 억울하다.

게다가 몇몇 전문가들이 이번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집값이 내려가게 되면 오히려 전세가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어 그 또한 큰 걱정이다. 내 집 마련이 힘든 1인 가정의 가장에게는 집값의 안정보다 전세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번 부동산 정책에서 정부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전 월세 대출 지원이 강화되고, 버팀목 대출에서도 보증금 지원 한도가 확대된다니, 그 역시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집값을 잡으려는 그 정책이, 전세가를 올려놓는 역효과를 불러온다면 집 없는 서민 입장에서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 년마다 한 번씩 이삿짐을 꾸려온 전세 유목민인 나는, 세상 모든 1인 가정의 안정과 행복을 응원하는 집 없는 나는, 이 글을 쓰는 내내 서글프다. 월급만으로 내 집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진작에 종말 됐다면, 적어도 대한민국 집순이의 최후가 켈로네처럼 비참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거북이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부동산 때문에 생긴 일' 공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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