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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신의 전화가 무섭습니다

전화를 두려워 하는 사람들, 콜포비아로 산다는 것

등록 2020.07.28 16:11수정 2020.07.2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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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포비아. ⓒ pixabay

퇴근 후, 막 집에 돌아온 당신.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잊은 채 소파에 누워 당신이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려고 한다. 그때, 전화가 걸려온다. 발신인을 확인해 보니 모르는 번호다. 이때 당신의 반응은?

1. 누구지? 궁금한 마음에 얼른 전화를 받는다.
2. 에이, 뭐 급하면 문자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무시한다.

2번을 고른 당신이라면 '콜포비아'에 빠져있을 확률이 높다. 콜포비아는 전화를 뜻하는 콜(Call)과 공포증을 뜻하는 포비아(PhoBia)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전화 통화 공포증'을 의미한다.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는 데 있어서 필요 이상으로 긴장감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콜포비아'의 대표적 증상이다.

스마트폰의 이용 목적을 묻는 2014년 한국인터넷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채팅이나 메신저를 하기 위해서 스마트폰을 이용한다는 응답은 79.8%로 전화 통화를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 응답 70.7%를 앞질렀다. 즉, 그만큼 전화 통화보다 문자나 그 밖의 메신저 앱을 통해 상대와 대화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는 뜻이다.

나 역시 비대면 상황에서, 대화를 할 때 전화 통화보다는 메신저가 더 편하다. 특히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상대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알지도 못하는 상대와 통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나도 모르게 바짝 얼어붙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굳이 전화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제 얼마든지 상대와 대화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잘 갖추어진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장기화는 비대면 시대의 도래를 알렸고, 과학의 발전은 우리를 이제 상대와 얼굴을 마주 보거나 굳이 목소리를 듣지 않고도 얼마든지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대로 이끌고 있는 중이다.

현재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내 책상 컴퓨터에도 강사와 데스크 직원 사이 메신저를 이용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앱이 깔려있다. 입사 첫 날, 제일 먼저 한 일이 앱을 깔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온라인 앱의 부수 기능인 메신저를 이용해서 업무 지시를 주고받는다.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여간해서는 직접 통화할 일이 없다. 그날의 공지 사항이나 업무 시 유의할 점은 대부분 메신저로 전달받는다.

나는 수업을 마치고 나면 학부모님께 그날의 수업 내용과 학생의 학습 태도 및 성취도 평가 결과를 문자로 보낸다. 물론 앞서 말한 앱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문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는 것이다. 학생의 태도가 평소와 다르게 지나치게 침울하거나, 혹은 성적이 많이 떨어지거나 하면 학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상담할 수밖에 없다.

전화를 받지 않던 학부모가 보낸 메시지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전화번호를 누르기 앞서 나는 속으로 해야 할 말을 중얼중얼 연습해 보았다. 안부 인사는 어떻게 시작하고, 전화한 목적은 어떻게 꺼내며, 또 내가 이렇게 얘기했을 때 상대가 어떻게 대답하겠지, 그 예상 대답까지 짐작해 보느라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결심이 섰을 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아뿔싸, 신호음이 길게 이어지도록 학생의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삼십 분쯤 뒤에 다시 전화를 걸 생각으로 한 번 더 해야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일 분도 되지 않아 띠릭, 하는 소리와 함께 문자가 도착했다. "선생님, 혹시 무슨 일이 있나요?"

갑자기 픽 웃음이 났다. 그랬다. 상대도 나와 같은 부류였던 것이다. 일단 아이의 학원 선생이니 전화번호는 저장되어 있을 것이고, 내 이름이 발신인 목록에 떠오른 것을 확인한 뒤에는 벨이 울리는 내내 고민을 했겠지. 그때,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에이, 급하면 문자를 하겠지.'


전화보다 문자나 메신저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거기에는 '생각할 여지'와 '수정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문자나 메신저를 보낼 때는 할 말을 충분히 생각하고 난 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잘 전달 될 수 있도록 신중하게 단어를 선별하고 문장을 가다듬을 수 있다. 물론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전화 통화에서는 수정이 불가피하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 튀어나오거나 상대에게서 기대했던 반응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당황하고 빨리 이 전화를 끊고만 싶어진다. 

혹 내가 상대의 실수에 관대해질 수 있다면, 상대도 나의 실수를 너그럽게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금보다 전화 통화 하기가 좀 더 수월해질까? 아니면 결국 전화 통화 하지 않는 시대로 가기 위한 과도기에 '콜포비아'는 우리가 겪어야 할 자연스러운 변화의 양상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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