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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죽음, 음모론 말하는 아빠와 싸웠다"

[진단]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으로 갈라진 세대... 가정, 정당, 학교, 시민단체 전방위적

등록 2020.07.16 07:11수정 2020.07.16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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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가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 사진제공 서울시

 
김서진(가명·24)씨는 아버지와 며칠째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고 박원순 전 시장의 사망에 대해 아버지가 고소인이나 야당 정치인들을 원망하는 모습을 보이며 '모종의 음모'가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고, 김씨가 이를 반박하면서 둘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버지에게 피해자의 삶 역시 박 시장의 삶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라며 "정치공작을 언급한 것 자체가, 성폭력 피해를 노동권 침해나 폭력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성혐오적 시선"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신혜(가명 27)씨도 우연히 만난 어머니 친구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고 박원순 시장 사망에 대해 "누가 사주한 것 같아" "남자들은 순진해서 그냥 넘어간다"라는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옆에서 어머니가 바로 제지하는 바람에 언성이 높아지는 일은 없었지만, 이씨는 '50대들의 평균적인 인식이 저런 건가'라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과 동시에 불거진 성추행 의혹에 관해 곳곳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애도를 중시하며 박원순 시장의 공을 먼저 이야기하는 쪽과,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고소인의 인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쪽이 맞서고 있다. 특히 20~30대와 그들의 부모 세대인 50대의 의견차가 두드러져 보인다. 온라인 상에는 부모님과의 의견 차로 고민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실제로 <오마이뉴스>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14일 하루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진상조사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20대 여성은 '조사 필요' 응답이 79.9%로 모든 성별·연령별 계층 중에서 가장 높았다. 반면 50대 여성은 '조사 필요' 응답이 53.2%로 모든 성별·연령별 계층 중에서 가장 낮았다. (관련기사 : 박원순 전 시장 성추행 의혹 "진상조사 필요하다" 64.4%  http://omn.kr/1ob5z )

진보진영 내에서 도드라지는 인식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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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유족·시민 추모감정에 상처줬다면 진심으로 사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됐다. 장례기간 동안 추모의 뜻 표하는 것과 피해 호소인에 대한 연대 의사 밝히는 일이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와 정의당의 입장이었다"라고 밝혔다. ⓒ 남소연

 
특히 진보진영에서 젠더 이슈에 대한 인식 차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분위기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4일 오전 장혜영-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이 박 전 시장 조문을 거부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고 입장을 내자, 정의당의 젊은 당원들이 반발한 것이다.

홍명교 정의당 혁신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 심상정 의원의 갈팡질팡 메시지로 인해 피해자와 그에 연대하는 시민들께 상처드려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혼란을 가중시키고 두 의원의 권위를 손상시켰다"며 심 의원을 비판했다. 이어 홍 위원은 "이제 진실과 연대의 시간이다.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이 당사자의 절규로 끝나지 않도록 이제 우리 사회와 진보정당이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장혜영 의원도 14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심상정 대표의 의원총회 모두발언은 솔직히 당황스러웠다"면서도 "(면담 이후) 심상정 대표가 이번 사안에 관한 저의 관점과 행보를 여전히 존중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장 의원은 "이 사안을 둘러싸고 당내에 큰 이견이 존재함을 알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가 누구라도 인간 존엄의 가치를 훼손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한다면 안간힘을 쓰며 존엄 회복을 위한 싸움을 시작한 한 여성의 목소리에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원들은 온라인 상에서 '류호정, 장혜영을 지지하는 정의당원 연서명'을 이어가는 등 우선적으로 '피해자(고소인) 연대'를 외친 두 의원에 힘을 실어주려는 분위기다. 

"교수님 부끄럽습니다"... 박 전 시장 추모 글에 항의하는 학생들

진보적 사회학자로 이름이 알려진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지난 14일 박원순 시장 추모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자, 성공회대 재학생/졸업생들이 댓글이나 공유를 통해 김 교수를 비판하는 일도 있었다.

김 교수는 "박원순 같은 사람은 당장 100조 원이 있어도 복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 사람이 죽음으로써 우리 국가와 사회가 입은 피해, 사회적 약자들이 앞으로 입을 피해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라며 그의 공을 기렸다. 이어 그는 "성적인 농담도 할 줄 모르던 그가 성폭력 가해자가 된 사실을 아직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가해와 피해의 논쟁은 이제 멈추고 진실이 드러나기를 기다립시다"고 밝혔다.

이 글에는 동의한다는 의견도 많이 달렸다. 하지만 김 교수의 수업을 들었다는 일부 누리꾼들은 "교수님 부끄럽다"며 반박하는 댓글을 달았고, 역시 다수의 공감을 받기도 했다.  

성공회대 졸업생인 장아무개씨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김동춘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던 주변의 재학생이나 졸업생들이 '박 시장 추모글'에 반발하고 있다. 교수님에게 실망했다는 말들이 많다"라며 "남성 교수들의 젠더 인식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장씨는 "교수님들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이들이고, 사회적 발언권도 강하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미투 운동이나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그들이 활동하던 1980년대가 아니라 이제는 2020년이라는 것을 깨달으셨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NGO 활동가는 "박 시장이 시민사회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 아닌가. 시민운동을 그와 함께 키워온 리더들이나 연령대가 높은 활동가 사이에서는 추모 분위기가 강하다. 하루종일 울거나 조문을 같이 가자는 분도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젊은 활동가들은 대부분 이번 사건에 분노하고 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라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라며 "믿고 있던 남자 리더가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것을 보면서 다들 절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NGO단체에서도 박 전 시장의 죽음에 대한 평가 때문에 활동가들끼리 다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 시대 저무는 것... 구조적 성찰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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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러한 논란에 대해 김명인(62) 인하대 교수는 기성세대의 '성찰'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14일 오전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고소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뜻을 표하며 박 시장의 죽음에 대해 "(고소인에게는) 어떤 위로도 어떤 속죄의 행위도 아니다(...) 증거인멸 행위이며, 동시에 2차가해다"라고 밝혔다.

그는 "여전히 감성으로는 애통하고 참담한 기분을 좀처럼 누르지 못하겠다. 하지만 박 시장에 대한 이런 나의 애도는 어쩔 수 없이 '낡았다'는 것 또한 느낀다. 확실히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라며 "'화급한 과제'를 앞세운 가부장적 위세와 그것을 보장하는 모든 시스템들은 이제 전면적으로 성찰되고 폐기되는 수순이 밟아져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애도와 추모는) 박 전 시장의 모순된 삶에 의해, 앞 세대의 가부장들이 누렸던 부당한 권력에 의해 전존재가 형언할 수 없는 위기에 빠져버린 바로 '그 사람'(고소인)의 평범한 삶을 되돌려놓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정부 국정홍보 비서관을 지낸 시인 노혜경(61)씨는 "박 시장에게 제기되는 의혹은 '구조적'이고 '전형적'이다"라며 "지금의 50~60대는 권력이 있으면 누구나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성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씨는 "민주화 세력이 '성폭력'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 특수하고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다보니 박 전 시장과 피해자 사이의 문제로 여기게 되는 것"이라며 "이제 민주화세력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젊은 정치인들을 키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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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 stargazer@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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