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들 뵐 면목이 없어요.

산업단지로 수용되는 성환읍 복모리 이평재씨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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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skrie)등록 2020.07.14 09:03
조상 대대 내려오는 땅과 집 그리고 선산을 수용 당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되었다. 고향 땅에 산업단지가 조성된다는 사실을. 천안시 성환읍 복모리 출신의 이평재씨의 경우다. 그는 경기도 오산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고향 복모리에는 93세 노모가 살고 계신다. 이 날도 그는 밭에 심겨진 배나무를 돌보고, 어머니 근황을 살펴보기 위해 복모리 옛집을 찾고 있었다. 어머니는 노구를 이끌고 집안 청소를 하고 밭에 나가 일을 하신다. 배밭을 살펴보고 나오는 이평재씨를 만났다.

 

성환읍 복모리 이평재 ⓒ 이상기

 
 
"어머니가 걱정입니다. 함께 살자고 해도 여기가 좋답니다. 도시에 가면 뭐 할 게 있느냐고 하면서, 농촌에서 꿈지럭거려야 건강에도 좋다고 하십니다. 허리가 굽은 것을 제외하고는 건강한 편이에요. 목소리도 아직 당당하십니다. 저에게 큰소리를 칠 정도니까요. 그런데 결국 어머니가 이 집을 떠나게 생겼습니다. 그 뿐입니까? 집 뒤 선산까지 다 수용이 됩니다.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이번에 산업단지로 들어가는 이평재씨 소유 물건은 토지, 주택, 선산 크게 세 가지다. 성환읍 복모리 397번지 일대 토지가 있다. 이곳에는 배나무가 330주 심어져 있다. 무화과, 포도, 사과, 호두 같은 유실수도 일부 심어져 있다. 복모1길 22 주택에는 어머니가 살고 계신다. 벽돌조 슬라브집이다. 주택 옆으로 창고가 있다.

 

절충장군 첨중추부사 이지술(李祉述)과 그 부인 묘 ⓒ 이상기

 

성환읍 복모리와 신가리는 광주이씨 세거지다.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이지술(李祉述) 선조가 복모리에 자리 잡은 이후 300년 이상 세거하고 있다. 그리고 마을 뒤 성제산을 선산으로 하고 있다. 지번으로는 성환읍 복모리 5이며, 수십 기의 묘가 분포하고 있다. 선산에 올라가면 이평재씨 집과 밭이 가까이 내려다보인다. 그 건너 들판으로 경부선이 지나간다. 경부선과 1번 국도가 멀지 않은 곳에 이평재씨가 살아온 터전이 있다.

그 삶의 터전을 천안 북부BIT 일반산업단지가 빼앗아 가는 것이다. 300년 역사와 얼이 서린 광주이씨 세거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과거 복모리 주민의 80%가 광주이씨였다. 지금은 많이 외지로 나가면서 그 비율이 낮아졌지만, 선산 때문에 후손들이 이곳에 살고 또 찾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산업단지 조성으로 광주이씨 세거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평재씨는 조상들 뵐 면목이 없다고 말한다. 선산을 팔아먹는 놈이 되기 때문이다.
 
천안 북부BIT 일반산업단지는 어떤 곳인가?
 
 

산업단지로 수용되는 성환읍 복모리 지역 ⓒ 이상기

 

천안 북부BIT 일반산업단지 계획이 승인․고시된 것은 2019년 10월 16일이다. 성환읍 복모리, 신가리, 어룡리 일원 87만5천㎡이다. BIT란 이름에서 보듯 BT(생명공학)와 IT(정보공학) 산업단지를 유치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목적이다. 그리고 천안의 신성장동력 거점을 마련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천안북부 일반산업단지(주)가 만들어졌다. 민관이 합동으로 개발하는 제3섹터 방식이어서 천안시가 40%, 코오롱글로벌(주)가 60%의 자금을 투자했다.

11월 15일 성환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사업설명회가 있었고, 12월 말까지 토지보상 관련 가옥, 수목, 비닐하우스, 축사 등 지장물에 대한 기본조사를 마쳤다. 2020년 3월 보상과 관련한 공문이 발송되었고, 5월 4일부터 18일까지 보상협의가 있었다. 한국감정원이 천안북부 일반산업단지(주)로부터 보상업무를 위임받아 주민들과 보상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토지와 지장물 보상이 끝나면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 2023년 12월 31일 산업단지 조성을 완료할 예정이다.

그러나 주민들이 보상에 불만을 표하면서 협의가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보상액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었기 때문이다. 낙후된 천안 북부지역 개발, 신성장동력 창출, 첨단 산업단지 조성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수용과 보상을 강요하고 있다. 주민들은 적절한 보상가 산정과 이주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농지, 임야, 택지에 대한 보상가가 지나치게 낮다. 영농손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동안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노인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구체적으로 보상비를 한 번 살펴보자.
 
 

이평재씨 소유 배나무 과수원 ⓒ 이상기

 

성환읍 복모리 토지와 건축에 대해 한국감정원에서 제시한 보상액을 가지고 이야기해보자. 복모리 397번지 과수원 부지는 평당 34만 보상해주려고 한다. 바로 옆 전답은 도로에 인접해 있다는 이유로 51만을 보상한단다. 차등을 두는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다. 복모1길 22 이평재씨 노모가 살고계시는 주택과 대지에 대한 보상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복모리 395, 395-1에 창고와 철골 판넬 지붕, 콘크리트 노대, 관정과 같은 시설물이 있다. 창고는 50㎡가 조금 안 된다. 이를 ㎡당 18만원으로 계상해서 870만원 보상비가 책정되었다. 건축비를 ㎡당 50만원만 잡아도 2,500만원은 보상해 줘야 한다. 창고를 새로 지을 경우 이전지역의 토지와 건축비까지 계상한다면 4,000만원은 보상해 주어야 한다.

 

93세 노모가 살고 계신 집 ⓒ 이상기

 

그리고 이곳에 자두나무, 감나무, 엄나무, 배나무, 무화과, 대추, 사과, 포도, 호두, 자두, 탱자, 참죽, 복분자 나무 같은 유실수가 심어져 있다. 이들에 대한 보상은 일괄평가라는 이름으로 467만원이 책정되었다. 유실수의 숫자가 80주 정도이므로 주당 보상가가 6만원도 안 되는 것이다. 그 중 배나무가 17주다. 배나무는 주당 15만원을 보상해 주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그것만 해도 255만원이다.

이평재씨는 노모가 살고 계시는 주택과 선산의 보상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동안 조상들이 가꾸어 오고 부모님이 살아온 터전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자신의 대에 잃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한다. 보상 내용을 일일이 거론하면 조상들께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말을 아끼는 것 같다. 보상비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게 치사하지만 배나무 과수원만이라도 제대로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게 그의 본심이다. 과수원은 자신의 노력으로 일군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제대로 된 보상인가?
 
 

한국감정원이 산정한 보상가 내역 ⓒ 이상기

 

천안 북부BIT 일반산업단지는 평택 고덕산업단지와 연결된다. 수도권에 더 이상 산엄단지를 만들 수 없어, 경기도 경계에 인접한 복모리 지역에 산업단지가 조성되는 것이다. 신성장동력, 첨단산업 같은 표현은 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주민들은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지키길 바란다. 그것이 불가능해진 현실에서는 적정한 보상을 원한다. 그런데 천안시와 한국감정원에서 제시하는 보상가는 터무니없이 낮다.

토지를 평당 34만원에 수용해서 그 다섯 배에 해당하는 180만원에 분양하는 게 타당한 행정인가? 보상가의 두 배인 70만원은 보상을 해줘야 한다. 배나무를 주당 15만원 보상해 주는데 이게 적정한가? 10년 자란 나무로 최고의 배를 생산하는 시점인데, 그 두 배는 계상을 해줘야 한다. 영농손실로 인한 보상비를 준다고 하는데, 액수가 낮고 그 조건도 아주 까다롭다.

 

복모리 마을 표지석 ⓒ 이상기

 

배나무의 경우 주당 20만원을 준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농협이나 원협에 판매해 받은 수입 영수증을 첨부해야 한단다. 그럼 인터넷을 통해 직거래한 사람들은 그 증빙서류를 어떻게 제출한단 말인가? 나무 한 그루당 배가 40개 정도 달리니, 전체 나무 수와 개당 판매가를 곱하면, 토지당 생산액이 나오는 거 아닌가? 이런 식의 계산과 보상방식이 더 정확하고 공정하지 않은가 말이다. 인건비, 비료와 농약대 등에 들어간 돈을 생각하면, 어떻게 해도 농사꾼에게 돌아오는 몫은 아주 적은 편이다.

농지가 더 이상 없어지지 않으면 좋겠다. 전통마을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다. 광주이씨 집성촌 복모리도 머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장수마을 복모리라는 표지석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았다. 그곳에 살던 노인들은 성환읍이나 천안 그리고 서울로 떠나가서 잘 살 수 있을까? 지방자치단체마다 벌이는 산업단지 만들기 경쟁이 언제쯤 끝나려는지. 천안시의 인구증가가 바람직한 현상인지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복모리 출신 이평재씨의 속이 타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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