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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저지에 노력했으나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 / 9회] 통절한 비애를 느끼면서 교섭국장을 사직하였다

등록 2020.07.16 17:39수정 2020.07.1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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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계의 노회한 요물이라 불리는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병탄의 야욕을 품고 일왕의 특파대신 자격으로 서울에 온 것은 1905년 11월 8일이다. 1904년 3월에 이어 두 번째 방한에 속한다.

광무황제를 고압적으로 알현한데 이어 그동안 하야시 공사와 하세가와 조선주차군사령관 등이 뇌물과 겁박으로 공작해온 각부 대신들을 만나 조약체결을 서둘렀다. 11월 10일 경 하야시를 통해 박제순에게 4개조의 조약문을 넘겨주었다.

 

을사오적(왼쪽부터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의 모습(대구 조양회관 전시 사진) ⓒ 조양회관

 
동년 11월 14일, 외부대신 박제순이 일본 영사관으로부터 이른바 을사조약이라는 4개조의 초안을 가지고 와서 이것을 토의하게 되었다.

선생은 도중에 정숙히 입을 열어 다음과 같이, 을사조약에 반대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 조약은 우리 국가의 주권을 없애는 것이니 망국멸족(亡國滅族)의 장본이요 큰 화(禍)가 장차 닥쳐올 것이니 외부대신으로서는 마땅히 결사적으로 이를 반대하여 국시(國是)를 엄히 지켜야 할 것이오. 만약에 일시적인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국가 대사를 그르친다면 이는 만세의 죄역(罪逆)이 될 것이 아니오!" (주석 7)

이시영이 박제순에게 "망국멸족의 장본인"이라 질타하며, 이를 막고자 했던 '4개조의 초안'은 다음과 같다.

제1조 : 일본국 정부는 재 동경 외무성을 거쳐 금후 대한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완전히 스스로 감리 지휘하며 일본국의 외교 대표자 및 영사는 외국에 있는 대한제국의 신민 및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

제2조 : 일본국 정부는 대한제국과 타국과의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온전히 할 의무를 지며 대한제국 정부는 금후 일본국 정부의 중계를 거쳐서 국제적 성질을 가지는 하등의 조약 혹은 약속을 할 것을 약(約)한다.

제3조 : 일본국 정부는 그 대표자로서 대한제국 황제폐하의 궐하에 1명의 통감을 두고 통감은 경성(서울)에 주재하여 친히 대한제국 황제폐하를 내알할 권리를 가진다. 일본국 정부는 또 대한제국의 각 개항장 및 기타 일본국 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곳에 이사관을 두는 권리를 가진다. 이사관은 통감의 지휘 아래 제 대한제국 일본 영사에 속하는 일체의 직권을 집행하고 아울러 본 협약의 조관을 완전히 실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체의 사무를 장리(掌理)한다.

제4조 : 일본국과 대한제국과의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 및 약속은 본 협약의 조관에 저촉되지 않는 한 모두 그 효력을 계속하는 것으로 한다. (주석 8)


박제순은 천성이 간악한 인물인데다 이미 일본측과 밀통이 되어 있어서 이시영을 의도적으로 피하였다. 사람을 시켜 총리대신 한규설의 의사를 알아보도록 요청했으나 이것도 여의치 않았다. 저녁에 일본 헌병이 포위하고 있는 외부로 나가 전화로 박제순과 연결되었다.

"국권(國權)에 손상이 없도록 개정(改訂)되었소."

"개정한 신안(新案)을 말해 보시오."

"전화로 일일이 말할 수 없소. 내가 거짓말을 할 리 있겠소."

전화로 박제순과 통화하는 도중 자신이 잠깐 정신을 잃은 것도 알지 못하다가 박제순이 '거짓말을 할 리 없다'는 말에 정신이 좀 소생된 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선생은 18일에야 박제순을 면대하게 되었다. 일본인들의 강압에 못이겨 할 수 없이 조약에 조인할 것이라고는 하지만, 박제순의 하늘에 가득 찬 대죄(大罪)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반역이었다. 선생은 이미 체결되었다는 소위 조약 전문에 대하여 박제순을 통렬히 매도하였다.  

"주권에 손상이 없도록 하였다는 것이 이것이오!"

박제순은 벙어리처럼 잠시 아무 말도 못 하고 앉아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대로 구소(口疏)나 성토(聲討)를 하시오."

이 말은 일찍이 선생의 대인(大人) 찬성공(贊成公)께서 박제순의 죄를 탄핵한 일이 있었는데, 그 상소 중 '참수(斬首)'란 두 글자가 있었음을 지적한 말이다. (주석 9)

 

을사늑약.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인용문의 '대인 찬성공'이란 이시영의 아버지 이유승을 말한다. 을사늑약은 교섭국장 이시영의 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11월 18일 새벽 2시반 경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공사 하야시가 초안에서 다소 변경된 늑약 문서에 서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을사늑약은 무능한 광무황제(고종)와 유약한 총리대신 한규설, 특히 을사늑약에 서명하여 '을사5적'이라 불리는 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배족매국 행위로 체결되었다. 조약문은 외교권의 박탈이 핵심이지만, 이로써 대한제국(조선)의 국권이 일제로 넘겨지는 사실상 망국조약이다.

을사늑약이 불법인 것은

① 무장병력으로 궁궐을 포위하고 황제와 대신들을 협박한 상태에서
② 외부대신의 관인을 이토의 통역관을 지낸 마에마 교오사쿠가 훔쳐다 날인하고 ③ 황제의 조약체결 위임장이 없으며
④조약문에 명칭도 없다는 등 '원천무효'에 속하지만, 일제는 무력으로 밀어붙이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했다.

이시영은 이같은 사태에 통절한 비애를 느끼면서 교섭국장을 사직하였다. 박제순에게 얼마나 분개하였는지 조카와 박제순의 딸이 혼약한 것을 파혼시키고 그와는 절교를 선언하였다.


주석
7> 박창화, 앞의 책, 30쪽.
8> 김삼웅, 앞의 책, 78쪽.
9> 박창화, 앞의 책, 31~32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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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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