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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콩나물국밥? 여기서는 꼭 먹어야죠

[사람 사는 거제도 점빵] 태풍 매미가 모래숲 해변에 남긴 '매미 공원' 그리고 국밥집

등록 2020.07.07 08:08수정 2020.07.0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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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딱히 일이 정해져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내의 수행을 돕는 정도가 전부이고 그 일도 대기하는 시간이 많아서 항상 손이 비어 있다. 즉 백수다. '노니 이 잡고 노니 염불한다'고 짬짬이 거제 경기의 부활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 거제도에서 영업하는 곳 중, 추천할 만한 곳을 찾아 소개하려고 한다.[기자말]
2003년 추석 연휴에 태풍 매미가 거제도를 강타했다. 태풍 매미는 2003년 9월 12일, 추석 다음 날 밤에 거제도에 상륙했다. 괌 부근 해상에서 발생한 이 태풍은 거제도 중심을 관통했는데, 한반도의 동부내륙을 할퀴고 지나간 후 대륙성 저기압이 되어 동해상을 빠져나가 일본 홋카이도 해상에서 소멸했다.


그 과정에서 거제도 일부 지역은 초유의 재난 사태를 맞았다. 고압 철탑이 쓰러져 거의 한 달여를 암흑 시대로 살았는데, 당시에 망치리 양지마을에 살던 나도 뒷산 개울가에서 빨래하며 이 기막힌 재앙을 보냈다. 

자연 재난에 놀란 지역사회는 지명이나 관광지에 매미라는 이름을 붙여 타산지석으로 삼는 지혜를 발휘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를 비추어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보다 발전적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마찬가지로 재앙을 기억하는 것은 미래의 재앙에 대비하자는 뜻일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 사태에 전 세계가 속수무책인 상황에서는 더 의미심장하다.

매미가 낳은 매미공원
 

매미 공원 매미 태풍은 '매미 공원'을 남겼다. 작지만 잘 정돈된 해수욕장으로 변모했다. ⓒ 이승열

 
매미라는 이름을 붙인 가장 대표적인 거제도의 지명은 '매미 성'과 '매미 공원'이다. 거제도의 북쪽 해안에 밭을 가진 주민이 태풍 매미로 무너진 해안 벽을 보수하면서 작은 돌성을 쌓기 시작했다.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만든 돌로 된 이 방벽이 십수 년 후에 명소가 되었으니 바로 매미 성이다.

이곳의 취재는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매미 공원과 콩나물국밥 집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매미가 오기 전 와현마을은 모래 해수욕장을 낀 오래된 어촌마을이었다.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집마다 민박을 쳤다. 여름 두 달 수입으로 1년을 사는 집도 수두룩했다. 그러나 매미는 대대로 전해 내려온 마을을 하룻밤 사이에 초토화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갯가에서 평생을 엎드려 살던 사람들은 삶과 추억과 밥 벌어먹던 일터를 잃었다. 물론 마을의 절반 이상을 휩쓴 매미 덕분에 와현해수욕장은 거제에서 가장 단정한 모습을 지니게 되었지만, 이 말은 지금에야 겨우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마을의 배후지와 유실된 마을 터 일부를 구획정리하여 전부 100여 미터씩 물려 앉혀 새집들을 지었다. 폐허가 된 옛 마을 터는 말끔히 정비하여 '매미 공원'이라고 명명했다. 해수욕장 이름도 '와현모래숲해수욕장'이라고 바꿨다.

매미태풍 속에서 살아 남은 국밥집
 

조은국밥집의 콩나물국밥 사각거리는 식감이 살아 있는 콩나물국밥 ⓒ 이승열

 
다행히 해변에 붙어 있지 않은 집들은 겨우 피해를 면했는데 그 집 중에 '조은국밥집'이 있다. 원래 민박집이었으나 새집들이 전부 현대식 펜션으로 변하자 국밥집으로 업종을 바꿨다.

와현해수욕장이 있는 와현 동네에는 호텔이 세 개나 되고 몇십 개의 현대식 펜션들은 많지만 밥집은 많지 않다. 그 중 '좋은 국밥집'은 근방에서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첫눈에 봐도 1층 슬래브 주택을 식당으로 개조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어촌계장과 아내가 자신의 집을 식당으로 운영하고 있다.

남자 사장은 채낚기 면허로 고기를 잡는 어부였으나 건강이 나빠진 이후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아내 일을 돕는다. 남자 사장인 어촌계장은 어부답게 생겼고 여사장인 부인은 어부의 부인답게 생겨서 서로 똑 닮았다.

'어부답게 생겼다'라는 말은 '태양은 가득히'에서 요트를 타는 '알랭 드롱'처럼 생겼다는 말도 아니고, 해풍과 태양에 그을리고 타서 거북등처럼 거친 외모를 가졌다는 말도 아니다. 그냥 묵직하고 힘이 세 보이며 순풍에는 돛을 올리고 역풍에는 노를 저을 줄 아는 지혜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그게 뭔지 모르겠거든 직접 와서 보면 된다. 더는 나도 설명하기 어렵다.

사각거리는 식감이 살아 있는 콩나물국밥

원래 메뉴가 다양하고 복잡한 식당은 음식 맛의 깊이가 없고 식단의 계통도 없기
마련이다. 인공양념으로 강렬한 첫맛을 내려고 하는 다급하고 천박한 장삿속 때문이다. 한 마디로 '게미'가 없다.

이 국밥집은 돼지국밥, 콩나물국밥, 해물탕이 대표 메뉴인데, 이미 먹어 본 돼지국밥도 맛이 떨어지지 않지만, 콩나물국밥은 최상, A+에 해당한다. 원래 콩나물국밥에 들어간 콩나물은 당연히 익혀서 콩 비린내가 안 나야 하지만 사각거리는 식감은 그대로 살아 있어야 한다.

거기다 콩나물국밥이니 당연히 콩나물이 푸짐해야 하는데, 빠지다 만 중년 남자의 대머리처럼 듬석 듬석 들어가 있으면 초라하고 한심해서 젓가락질에 흥이 나지 않는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춘 데다가 묵은지가 아주 조금 들어가 있어서 시원한 맛을 뒷받침하고 있고, 새우젓갈은 행여 남아 있을지 모를 콩 비린내를 눌러 맛의 감칠맛을 더해 준다. 푸짐하고 시원한 콩나물국밥이다. 행여 맛이 기대 이하면 인공조미료에 중독된 내 미각 탓은 아닌가 깊이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배를 만드는 도시의 아이들은 바다를 보며 큰다
 

'와현모래숲해변 해수욕장'은 7월 4일에 정식 개장했다. 코로나 정국 속에서 방역 수칙을 최대한 준수하는 범위에서 7월 4일에 정식으로 개장했다. ⓒ 이승열

 
와현해수욕장에서 사시사철로 모래 놀이에 신이 난 엄마와 아이들을 자주 본다. 아마 아빠는 조선소의 어느 공간에서 용접봉을 태우며 가족의 행복한 시간을 상상하다 혼자서 비시시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배를 만드는 도시의 아이들은 바다를 보며 크고 있다.

코로나 방역 수칙을 최대한 준수하며 7월 4일 정식 개장된 와현 바다는 여름의 열정으로 뜨겁고 사람들은 한결같이 들떠있다. 매미의 상흔이 오래전에 식은 재처럼 곳곳에 흩어져 배어 있고, 콩나물국밥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파도 소리가 섞여 근거 없는 식욕을 만들어 내는 와현해수욕장은 거제도의 남쪽에 있으며 구조라해수욕장과 학동 몽돌해변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매미 공원 #매미성 #조은 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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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월에 퇴직한 후 백수이나, 아내의 무급보좌관역을 자청하여 껌딱지처럼 붙어 다님. 가끔 밴드나 페이스북에 일상적인 글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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