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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분쟁 느는데 뒷짐만 지는 플랫폼 기업들

외형은 커졌지만 소비자 보호 장치는 미흡... 전문가들 "플랫폼 기업 책임 강화해야"

등록 2020.07.01 13:01수정 2020.07.0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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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자상거래 시장은 플랫폼 기업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 픽사베이


온라인 종합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상품 판매자에 대해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원하는 물건을 검색하고 가격 비교를 통해 최종 구매 물품을 선택한 후 장바구니에 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판매자가 불량 제품을 판다거나 최악의 경우 돈만 받고 상품을 보내지 않는 '먹튀'를 저지를 것이라는 의심을 갖는 경우는 드물다. 여기에는 수많은 판매자를 중개하는 유명 온라인 쇼핑몰이 기본도 안된 최악의 판매자는 걸러냈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현행법을 따져 보면 이런 믿음에는 근거가 없다. 현행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상 온라인 쇼핑몰은 '통신판매 중개업자'로 구분된다. 이에 따라 이들 업체들은 상품의 직접 판매 당사자가 아니라 단순한 통신판매 중개업자라는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알리기만 하면, 거래되는 상품의 품질과 배송 등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플랫폼 기업의 유명세와 공신력만 믿었다가는 상품 거래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 기업들의 규모가 날로 커지면서 상품 판매를 둘러싼 분쟁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을 보호할 법적 장치 마련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 "판매 당사자 아니다" 알리면 끝? 

우리나라 전자상거래 시장은 이미 플랫폼 기업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월 발표한 '2019년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총 11조7800억원의 온라인유통업체 매출 가운데 플랫폼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30.8%로 가장 높았다.


대표적인 국내 전자상거래 업체인 G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의 수수료 기준 매출은 지난해 1조원을 돌파했고, 오픈마켓 대표 주자로 꼽히는 쿠팡의 지난해 매출도 7조원을 넘겼다. 배달앱 시장 1위 배달의민족을 운영하고 있는 우아한형제들의 지난해 연간 매출은 전년 대비 80% 성장한 5654억원을 기록했다. 

외형은 성장하고 있지만 이들 업체가 져야 할 책임은 그만큼 커지지 않고 있다. 현행법상 전자상거래 판매자는 크게 통신판매업자나 통신판매중개자로 구분돼 있다. 통신판매업자란 직접 소비자들에게 재화·서비스를 판매하는 업체고, 통신판매중개자는 통신판매업자들과 소비자들이 거래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업체다. 플랫폼 기업에 대한 별도 구분이 없어 대다수의 플랫폼 기업들이 통신판매중개자 신분을 갖고 있다.

현재 전자상거래법이 통신판매중개자(플랫폼 기업)에게 요구하고 있는 의무사항은 '소비자들에게 자신이 통신 판매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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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과 11번가, G마켓과 중고나라 등 플랫폼 기업들은 사이트 하단에 스스로 통신판매중개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 각 사이트 캡처

 
통신판매중개자의 의무를 정해둔 전자상거래법 제20조 등에 따르면, 통신판매중개자는 '중개업자'라고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경우 판매업자와 연대 배상해야 한다. 이 때문에 플랫폼 기업들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통해 상품·거래정보 및 거래에 대해 일체 책임이 없다고 알리고 있다.   

문제는 이 조항이 플랫폼 기업의 '관리 방치'를 공식적으로 용인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플랫폼 기업은 자사의 플랫폼을 통해 어떤 상품이 거래되든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금연보조 의약품으로 약국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금연껌이 11번가·G마켓 등 다수의 오픈마켓을 통해 유통돼 문제가 됐지만, 지금도 비슷한 제품이 '해외 직구' 방식으로 판매되고 있다. 중고나라에서는 법적으로 판매를 금지하고 있는 화장품 샘플이 판매되기도 한다.

인체에 해가 되는 상품이 오픈마켓에서 유통되는 일도 있었다. 지난달 11일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소독용 과산화수소가 오픈마켓 쿠팡 내에서 식용으로 판매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과산화수소를 구입해 복용한 피해자들은 각혈이나 구토 등의 피해를 입었다.(관련기사: 못 먹는 과산화수소, 쿠팡에서 '식용' 둔갑 http://omn.kr/1njsv).

턱없이 부족한 판매자 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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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제20조에는 통신판매중개자에게 부과되는 의무와 책임이 적혀 있다. ⓒ 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


현행 법이 플랫폼 기업에 요구하고 있는 '고지의 의무' 또한 그 내용이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자상거래법 제20조는 통신판매중개자가 판매를 요청받았을 때, 이를 의뢰한 통신판매업자의 이름(법인의 경우 그 명칭과 대표자 이름)·생년월일·주소·전화번호 등을 파악해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정보는 소비자들의 구매 판단을 돕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변웅재 소비자단체협의회 자율분쟁조정위원장은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상품을 구입하려 한다면, 판매자가 괜찮은 상품을, 꼭 보내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할 텐데 이름이나 주소, 전화번호 정도로 어떻게 그 믿음을 가질 수 있겠냐"며 "통신판매업자의 재무상태나 신용도, 평판 등 정보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전자상거래법 시행령 제25조에 따르면, 통신판매중개자가 공인인증기관·신용정보회사를 통해 판매 의뢰자의 신원정보·신용도를 확인하면 그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의무는 아니다. 전자상거래법 제20조 2에도 통신판매중개업자가 파악한 의뢰인 정보가 잘못돼 소비자가 피해를 입으면 통신판매중개자가 의뢰자와 함께 보상해야 하지만, '소비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상당히 주의를 기울인 경우에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추가 조항에 따라 책임을 면할 수도 있다.

전자상거래법은 플랫폼 기업들에 소비자 불만상담센터를 설치할 의무도 지우고 있다. 이에 따라 통신판매중개자는 판매업자나 소비자 불만을 접수할 인력과 설비를 갖추고, 분쟁 해결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또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원인을 조사해 10일(영업일 기준) 안에 조사 결과와 처리 방안을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

문제는 소비자와 판매자 간 감정의 골이 깊어 소비자 불만상담센터에서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때다. 대다수는 한국소비자원에 피해구제를 신청해 합의하거나 민사소송을 진행한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거래는 소액이라 소비자가 비용이 많이 드는 소송 절차를 밟기는 사실상 힘들다. 결국 대부분의 경우 소비자나 판매자 중 어느 한쪽에서 피해를 떠안고 사건을 끝내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일정 규모를 갖춘 플랫폼 기업의 경우 내·외부에 분쟁조정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변웅재 위원장은 "소비자·판매자 간 갈등이 생기면 플랫폼 기업은 '법적 책임을 다했다'는 입장이라 소비자는 통신판매업자를 대상으로 소송 등 전통적인 방식의 분쟁 해결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라며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 기업에 대해 내·외부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기업의 책임 강화한 중국

특히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강화한 중국의 전자상거래법의 사례를 눈여겨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온라인 쇼핑에 대응하기 위해 2018년 중화인민공화국 전자상거래법을 만들어 2019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전자상거래 판매 주체를 전자상거래 플랫폼 경영자(플랫폼 기업)와 플랫폼 내 경영자(플랫폼 기업에 입점한 판매자), 자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경영자 등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눈 뒤, 각각 별도 규정을 마련했다.  

중국 전자상거래법 제38조에 따르면, 플랫폼 기업을 판매 당사자로 보지 않는 대신 플랫폼 내에서 이루어진 거래에서 소비자의 권익이 침해되는 등의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관리 부실 책임을 물어 판매자와 연대 책임을 지도록 했다.

특히 소비자의 생명·건강과 관련한 상품·서비스에 대해서는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을 더 엄하게 묻는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경영자가 플랫폼에 등록한 판매자의 자질·자격에 대한 심사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거나 소비자에 대한 안전보장 의무를 다하지 못해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치면 법에 따라 상응하는 책임을 부과한다.

국회 입법조사처 최은진 경제산업조사실 금융공정거래팀 입법조사관보는 "우리도 플랫폼 기업에게 책임을 묻자는 건 다수의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부분"이라면서도 "하지만 갓 시작한 플랫폼 기업 등 영세 사업자에게 책임을 묻기 쉽지 않기 때문에 대상자 선정 기준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플랫폼기업 #공정거래위원회 #전자상거래법 #오픈마켓 #배달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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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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