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4 08:28최종 업데이트 20.06.2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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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과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 ⓒ 이희훈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 덕분에 '기본소득이냐, 전 국민 고용보험이냐'라는 논쟁이 활발하다. 불과 한 달여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이런 논쟁 구도가 생길 줄은 아무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두 제도 각각의 필요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온 결과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 


기본소득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재정립하지 않으면 도입하기 어려운 제도다. 때문에 기본소득의 규모나 재원 마련 가능성보다는, 왜 그만한 돈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줘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토론과 합의가 먼저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대해 반대론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면, 국민 1인당 얼마씩 줄 때 예산 얼마가 필요하고 그 재원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전 국민 고용보험', 혹은 소득 기반의 사회보험 확대 적용 방안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고용관계를 넘어서, 모든 형태의 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사회안전망이 제공돼야 하는 이유에 대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기존 제도의 틀 안에서 소폭 보완하는 것 이상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통념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과 관련해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더라도 제도 도입 쪽으로 결론이 나기는 쉽지 않다. 우리 사회 안에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는 통념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능력과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런 좋은 일자리들은 임금과 안정성, 사회적인 인정 및 권한, 기업 복지 등 부가적인 혜택에 있어 다른 일자리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통념이 있다. 다시 말해 능력과 자격이 부족한 사람들은 '나쁜 일자리'를 전전하는 것이 당연하며, 이 일자리들의 질이 낮은 것은 어쩔 수 없다는 통념이다.

이런 생각들이 위의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과 대척점에 존재하는 이유를 짚어보자. 그동안 우리는 일자리에 대해서 대체로 '고용하는' 입장에서 생각해 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학교는 기업이 고용할 만한 인재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 교사 및 교수들의 주된 역할은 학생을 기업이 채용할 만한 상태로 만들어서 노동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기업은 고용 비용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 되도록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보다는 파견제도나 아웃소싱을 활용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안 그래도 한국은 노동생산성이 낮은데, 이를 높이려는 기업의 노력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데는 교육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숙련도를 높이거나, 설비 투자 등을 통해서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방법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노동자 수를 줄이는 쪽이 낫다. 그쪽이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임금은 그대로인데 업무량이 점점 늘거나 갑자기 다른 업무에 배치되더라도, 심지어 해고되더라도, 군말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노동자 개개인보다는 기업의 생존이 중요하고 기업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되기 때문이다.

경영진과 기업 소유주들만이 아니라 대체로 노동자인 국민들 상당수가 이런 생각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영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이 '나쁜 일자리'를 쉽게 거절해서는 안 된다. 안전장치가 미비해서 위험해 보일 때, 사용자가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써주지 않고 4대보험 가입을 회피할 때, 임금을 체불하거나 비인격적인 대우를 할 때, 당당하게 거부하고 사표 내는 사람들이 많아서는 기업들이 지금처럼 고용 비용을 아낄 수 없기 때문이다. 

'임계장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사회

사용자 입장에서는 사표 내는 사람에게 '너 아니어도 일 할 사람 많다'고 말하고 실제로 구인공고만 내면 일하겠다는 사람이 계속 나타나는 것이 좋다. 일하다가 생명을 위협받고, 비인격적 대우에 모멸감을 느끼더라도 '이 일을 안 하면 나와 가족이 굶어죽는다', '여기서 못 견디면 더 비참한 일자리로 가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꾸역꾸역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이 지금까지와 같이 굴러갈 수 없다.

이런 현상들을 응축해서 보여주는 책이 있다. 지난 3월 출간된 <임계장 이야기>(후마니타스)다. 공기업에서 38년간 일한 뒤 정년퇴직한 조정진씨가 '임계장'(임시계약직 노인장이라는 의미)으로 다시 취업해서 4년여 동안 일한 경험을 펴낸 책이다. 아파트 경비원, 터미널 직원 등 그가 경험한 일자리들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하고 말도 안 되게 열악하며 인격이 말살될 지경으로 비인격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몰라서 이를 감내한다지만, 그는 어떤 지시와 처우가 불법인지를 다 알면서도 참았다. 해고되기 전까지는 자발적으로 그만두지도 못 했다. 가족들을 위해 소득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정년퇴직 당시에 건강했던 그는 '임계장'으로 일을 시작한 지 4년여 만에 심각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임계장 이야기>를 읽으면 자연스런 의문이 남는다. 대한민국에는 엄연히 근로기준법이 있고 고용노동부와 노동청이 있고 근로감독관이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 무법천지처럼 이런 일자리들이 버젓이 유지되고 있을까? '어떤 일자리는 질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강해서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5대 노동개혁' 중에는 파견직의 업종 제한을 고령자에 한해서 전부 없애는 방안이 있었다. 파견직 일자리의 질이 대체로 낮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확산되지 않도록 업종 제한을 두어온 것인데, 이를 완화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고령자 일자리를 늘리는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 제한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일자리는 질이 낮아도 할 수 없고 일자리 수만 늘리면 된다는 발상이다. 이 같은 상황은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청소년 및 청년, 경력단절 여성 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데 기본소득제라는 것이 생기면 어떨까?

일 안 해도 존엄한 사람
 

지난 2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신중년인생이모작지원센터에서 한 구직자가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를 활용해 면접 영상을 녹화하고 있다. 수원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채용행사 개최가 어려운 상황에서 구직자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2020 비대면 희망 일터 채용면접행사'를 24일까지 진행한다. ⓒ 연합뉴스

 
일을 하든 안 하든 매달 일정한 금액을 나라에서 받을 수 있다면 '나쁜 일자리를 거절 못 하는' 경향은 약해질 수 있다.  기본소득의 규모는 물론 중요하다. 생계를 지탱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면 그 파급효과가 작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액을 떠나서 기본소득제가 있다는 자체가 가지는 의미도 있다. 기업 관점에서 개인을 보던 시각의 변화다. 즉, 우리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아니더라도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메시지, 그냥 그 자체로서 이 나라에서 살아갈 자격과 권리가 있는 존엄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기본소득은 준다. 

전 국민 고용보험, 혹은 사회보험 확대 방안도 같은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정규직 공채 입사 성공과 실패의 차이가 너무 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각자 선호하는 일의 형태와 관계없이 그런 조직 앞에 일렬로 줄을 설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그 조직과 전혀 성향이 맞지 않는데도 성적이 좋아 선발되고, 반대로 만족스럽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떨어지는 일이 생긴다. 양쪽 모두 행복할 수 없다. 

그래도 일단은 안정적인 기업에 들어간 사람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서 그만두려다가도 퇴사 이후를 상상해 볼수록 엄두가 안 난다. 단지 임금만의 문제가 아니라 큰 조직에 있을 때는 겪지 않았던 갑질과 무시를 당할 수도 있고, 퇴직금도 4대보험도 없이 일 하다가 아차 하는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조직에서 일하든,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든, 정규직이든 아니든, 혹은 아예 고용계약 없이 일하든, 상관 없이 똑같은 사회안전망을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는 그 영향이 상당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일하다가 좀 쉬어도 괜찮다고, 잠시 다른 일을 해보는 것도 좋다고, 그래도 큰일은 나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큰 조직에서 장기근속하는 사람에 비하면 누리는 혜택은 작다.  그렇더라도 정 힘든 사람은 그만두는 선택을 할 수 있고, 또 맞지도 않는 조직에 들어가려고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통념, 실질적 변화

이런 메시지들이 새로운 통념이 되고 일상이 된다면, 직종이나 고용 형태에 따라서 사람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일도 지금보다는 줄어들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 성향과 적성에 따라서 다양한 일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거나, 가족이 아파서 돌봄이 필요할 때 일을 쉬다가 다시 복귀하는 것도 지금보다 쉬워질 것이다. 사회 전체로 볼 때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기본소득제와 전 국민 고용보험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로 대두된 것은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를 존중해 달라'는 구호만으로는 이뤄지지 않았던 실질적인 변화를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느냐는 토론이 아니다. 어느 쪽을 미는 정치인이 대선 주자로 더 적합하냐는 토론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수준을 뛰어넘는 더 넓은 토론의 장이 필요하다.

대중의 지지를 받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이 열망의 의미를 해석해서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내고 바람직한 토론의 장으로 사람들을 끌어내야 한다. 또 사회적 합의까지 이뤄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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