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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 수업 앞둔 호주 학교, 이렇게 섬세하다니

아이의 불안과 학력 차이 확인하려는 노력들... 8주간의 호주 온라인 수업 보고서

등록 2020.06.11 18:14수정 2020.06.1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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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채운 8주였다.

6월 9일, 드디어 호주 빅토리아 주(멜버른이 속한 주)의 모든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갔다. 호주는 현재(6월11일 기준) 코로나 확진자 7285명, 사망자 102명으로 상당히 선방한 나라 중 하나다. 물론 국가의 면적에 비해 인구 밀도가 낮고, 마치 섬처럼 고립된 대륙이니 공항만 폐쇄하면 외부로부터의 바이러스 유입 차단이 용이하단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5월 11일, 정부의 초강경 조치들이 서서히 '생활 속 거리 두기' 로 전환하고, 5월 26일, 프렙(유치원 마지막 과정으로 초등학교에 포함)부터 초등 1, 2학년이 1차 등교 수업을 실시했다.

호주란 사회는 법이나 규칙이 정해지고 시스템이 작동을 시작하면 무서운 곳이다. 한국에 살 때는 법을 지키면 손해보며 사는 느낌이 강했다면, 이 나라에선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야말로 벌금 폭탄이 쏟아진다. 요즘 한국 지인들과 만나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정부의 강력한 제한 조치로 완전히 달라진 일상의 모습을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우리 집은 두 달 동안 주유를 한 번 했고, 지인들 중에는 차를 오래 사용하지 않아 방전된 경우도 종종 있다.

각종 '사회적 거리 두기' 제한 규정들을 따르지 않아 벌금을 부과한 경우도 있다. 자동차 옆자리에 가족이 아닌 지인을 태워서 벌금을 내고, 카페 앞에서 커피를 들고 몇 명이서 수다를 떨다 벌금을 내기도 했단다. 심지어 요새는 방문객이 많이 몰리는 쇼핑센터 앞에서 신호등의 신호가 바뀔 때마다 버튼을 닦아 주는 사람, 이케아 매장에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카트 한 대 씩만 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생활 속 거리 두기'에 대한 안내문 교장 선생님이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인해 생기는 변화들을 가정에 안내하고 있다. 가정에서 아이들과 미리 대화를 통해 등교수업으로의 전환에서 오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낮추고자 함이다. ⓒ 이혜정

코로나 팬데믹 정국에서 우리 가정의 일상 모습을 가장 크게 바꾼 요인은 온라인 수업이었다. 근심을 가득 안고 시작된 온라인 수업은 평생 접해 보지 못한 호주의 교육과정과 교사들의 자질을 이해하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내 아이의 발달과 성장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과목은 무엇인지, 아이의 취향과 재능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무관심한 과목이나 활동에 흥미를 갖게 할까, 매일이 고민의 순간들이었다.

온라인 수업으로 알게 된 내 아이의 새로운 모습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는 8주간 눈에 띄는 발전이 있었다.


첫째로 학습면에서 영어 읽기와 쓰기 그리고 수학 실력이 부쩍 늘었다. 부모가 끼고 앉아 체계적이고 반복적으로 꼼꼼히 가르치니 학급에서 교사 한 명이 가르칠 때보다 효과가 좋았다. 특히 수학 과제로 제시되던 코딩을 몇 번 해보고는 코딩의 매력에 빠져 사니 실로 온라인 수업이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해에 방과 후 코딩 수업에 등록시키고 싶었으나 한사코 거부하던 아이가 몇 시간씩 코딩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 담임에게 달려가 꾸벅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IT 리터러시 측면을 반추해 보면, 온라인 수업 전과 후로 다른 아이가 존재한다. 몇 주 만에 능수능란하게 컴퓨터 타이핑을 하게 되었고, 이제는 혼자서 구글 검색을 하고 필요한 자료를 찾는다. 온라인상에서 어린이용 E북을 찾아 읽는 일이 일상이 되었고, 문서 편집과 발표 자료를 위해 그림이나 사진을 업로드하고 삽입하는 등의 컴퓨터 활용능력이 놀랄 만큼 향상되었다.

"어려서 가르칠 수 없는 게 아니라, 아이 수준에 맞게 자료를 재구성하고 아이 수준에 맞는 언어로 가르친다."

온라인 수업으로 스크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자 부모에게는 또다른 걱정거리가 앞섰다. 사이버 안전에 관한 문제, 신뢰할 만한 정보를 검색하는 능력, 그리고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표절)하지 않고 자료를 이용하는 방법 등에 관한 염려다. 온라인 수업을 지켜보다 보니 교사가 저작권에 대한 설명과 표절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물론 '어린' 학습자의 수준에 맞는 관련 책을 가지고 쉬운 언어들로 설명을 하고 있었다.

8년간 눈물겹게 길러 온 사회성, 코로나19 때문에...

반면에 사회성과 신체적인 운동면에서 부작용이 동반되었다. 사회성 발달이 느리고, 불안이 높은 아이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 버겁다. 호주 정부의 엄격한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가 내려진 이후로 아이가 다닌 곳은 엄마 따라 슈퍼에 장보러 가기와 집 근처 공원에 강아지 산책 시키기가 전부였다.

코로나 발발 전에는 주중에는 학교에서, 주말에는 친구 가족과 어울리며 점진적으로 사회성을 길러 나가던 아이에게 '면대면 사회 생활 금지'는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을 야기 시켰다. 몇 달 동안 친구들과의 만남을 전혀 갖지 못한 후로 친구랑 통화하기도 수줍어 하고, 집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니 등교 수업에 대한 불안이 높아졌다.
  

Student Assessment Opportunity 등교 수업 전에 담임교사와 학생간 일대일 면담 시간을 배정했다. 장기간의 온라인 수업으로 생긴 학력차이를 확인하여 수준별 맞춤 수업을 설계하고, 등교수업으로의 전환에 따른 불안을 낮추기 위한 배려다. ⓒ 이혜정

다행히 호주의 학교는 학부모가 원하면 언제든 '교장과 담임 찬스'를 사용할 수 있다. 아이들이나 사회 구성원들이 '준비되지 않은 급작스런 변화에 노출'되어 스트레스를 야기시키는 상황을 꺼리고,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학생 중심의 맞춤식 교육'을 지향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교장은 등교 수업 전주에 담임과 학생들의 일대일 면대면 상담을 배치했다. 장기간의 온라인 수업으로 생긴 학생들 간의 학력 차이를 확인하여 수준별 맞춤 수업을 설계하고,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인해 생긴 학교의 변화들을 학생에게 인지시켜 불안을 낮추려는 노력이다.

첫날 바짝 긴장하여 친구들과 담임에게 인사도 못 건네던 아이는 이삼 일이 지나자 적응이 되어 가고 있다. 아이들의 불편과 다양한 욕구를 이해하고 지원하려 애쓰는 다정한 학교 시스템과 교사들이 존재하기에 코로나가 아직 종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안심하고 매일 학교에 보내고 있다.

8주간의 온라인 수업은 아이가 살아갈 미래를 가늠해 보는 지렛대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IT에 관심과  재능이 있는 호주의 학생이 MIT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수업을 듣는 세상이라면 어떨까? 수학에 재능이 있는 한국의 학생이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에서 제공하는 청소년을 위한 온라인 수학 강의를 듣는 세상이 올까?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미국에 사는 학생이 서울대에서 제공하는 한국어 강의를 듣는 세상은 가능할까?

즐거운 상상을 하다 보면 살짝 걱정도 된다.

'사춘기가 된 아들이 학교를 거부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며 홈스쿨링을 하겠다고 주장하면 어쩌지?'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호주 교육 #호주이민 #코비드 19 #등교수업 #온라인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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