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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살포를 환영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까닭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남북 평화와 지역 경제와의 상관관계

등록 2020.06.10 17:40수정 2020.06.1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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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경 지역 대북전단 살포는 남북관계 경색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도 일부 탈북자 단체들은 북을 향한 선전전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과 큰샘(대표 박정오) 같은 단체들이 인천광역시 강화군 앞바다에서 대북 전단과 쌀 1kg 및 마스크를 넣은 2리터짜리 페트병 100여 개를 물에 띄우려다가, 현지 주민들의 반발로 포기하고 돌아갔다.

그날 한 주민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바다에 띄운 쌀 페트병은 대부분 북으로 가지 못하고 바다를 오염시켜서, (동네) 주민들이 수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북전단으로 인한 북한 도발도 우려되는데, 이 행사를 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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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보호 속 대북삐라 20만장 살포 접경 지역 대북 전단 살포는 남북관계 경색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2014년 9월 탈북자단체인 자유북한연합 등이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 부근 주차장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를 비난하고, 이승만·박정희·박근혜 대통령을 칭송하는 내용의 전단 20만장과 1달러 1천장 등이 담긴 풍선 10개를 북으로 날려보냈다(사진). ⓒ 권우성

 
쌀 외에도 치약·칫솔·비누·내의·연고·붕대·화장지·소화제 등과 함께 살포하는 대북전단은 "김정은을 특수강간 및 미성년 성폭행 죄로 고발합니다"라거나 "세습정권, 독재정권, 장기집권은 망한다" 등등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 정권을 자극하고도 남을 만한 내용들이다.

심리전이라고도 할 수 있고 선전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활동은 서로 전쟁하는 관계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다. 당연히 양측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남북이 평화를 통해 안정과 번영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한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대북전단을 뿌리는 지역은 남북 군대가 밀집한 곳이다. 부산 앞바다에서 일본을 비판하는 전단을 뿌리는 일과 휴전선 앞에서 북한을 비판하는 전단을 뿌리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양쪽 군대가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고 서로 총까지 겨누는 곳에서 이런 살포 행위가 일어난다면, 전단을 받는 쪽에서는 상대 정부와 군부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남북 간 불신을 키우고 한반도 위기를 한층 더 조장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북한이 지금은 남북 통신 연락선을 차단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탈북자 단체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계속 방치한다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이전으로 남북관계가 회귀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통일부가 지난 4일 여상기 대변인을 통해 "접경 지역에서의 긴장조성 행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개선 방안을 이미 검토하고 있다"고 한 데 이어 "법률 정비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밝힌 것은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부 해법에 대해 미래통합당은 비난을 퍼붓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정부는) 간·쓸개 다 빼주고 비굴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상황을 진전시킨 게 없다"고 한 뒤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한마디 하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삐라(전단)를 금지하겠다' 한다. 국민 자존심을 깡그리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날 원내대책회의 종료 뒤에도 기자들에게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늘 저자세로, 굴종적 자세를 취하다가 이런 일이 생겼다"며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휘둘리며 북한 기분을 맞춰온 결과가 이렇다니 참담할 뿐"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이종배 정책위의장 역시 "정부는 북한의 모욕적인 행위에도 일언반구 응대하지 못하면서, 되레 '대북전단금지법'을 언급하며 굴종적 대북관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배준영 대변인도 논평에서 "적반하장 식으로 구는 불량국가 북한을 비판하긴커녕 감싸는, 굴종적인 정부 태도는 정상적 대응이라고 할 수 없다"며 비난의 날을 세웠다.

통합당은 이처럼 민주당 정권의 대북정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전단 살포 금지가 추진되는 현 상황이, 문재인 정부의 유약한 대북정책 때문에 생겼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사안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정부의 대북정책이 핵심은 아니다. 전단 살포에 대한 부정적 기류의 저변에, 전혀 다른 원동력이 존재한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접경지역 주민들의 이해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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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는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 ⓒ 남소연

 
대북 경계심 높은 접경지역 주민들, 그럼에도 전단 살포 반대하는 이유는

1945년 38도선 설정 이래로 접경지역은 군사적 긴장이 매우 첨예한 곳이었다. 한국전쟁 발발 전에도 이곳에서 국지전 양상의 전투가 자주 벌어졌다. 또 전쟁 뒤에는 무장공비 침투 사건도 자주 발생했다.

그래서 접경 주민들의 대북 경계심 혹은 안보의식은 여타 지역보다 높을 수밖에 없었다. 미·소 냉전이 끝난 1990년대는 물론이고 21세기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2016년 <국가정보연구>에 실린 허태회 선문대 교수의 논문 '21세기 안보환경 변화와 국민 방첩의식의 변화: 여론조사와 과제'는 국민 1020명 대상 여론조사를 근거로 안보의식의 지역별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역적으로는 서울·경기·강원 등 접경지역 국민들 53.7%가 정치·군사 안보의 중요성을 우선으로 지목한 데 비해, 대전·광주·제주 비(非)접경 국민들은 43.0%가 정치·군사 안보 영역을 지목하여 지역별 차이가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북한과의 접경지역에 거주하는 국민들이 정치·군사 안보에 더 민감한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정치·군사, 경제, 사이버, 사회, 환경·보건 중에서 어느 분야 안보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가에 대한 설문의 결과였다. 정치·군사 안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한 국민의 비율이 접경과비접경 지역에서 각각 53.7% 대 43.0%로 나왔다.

위 조사에선 접경 주민일수록 더 높은 방첩(防諜: 기밀·보안 유지)의식을 지녔다는 결과도 나왔다. "서울과 경기, 강원 지역이 북한과의 접경으로 늘 예민하게 스파이 활동에 대한 경각심을 가진 때문인지, 비접경 지역보다 외국 스파이에 대한 방첩의식이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북한에 대해 위험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게 논문 결과다. 접경 주민들이 과거 경험으로 인해 여전히 냉전적 사고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접경 지역 반공의식이 아직 높다고 해도, 이곳을 대북전단 살포 장소로 쓰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이는 이 지역 주민들의 의식에서 나타나는 의미 있는 변화를 무시하는 처사다. 건장한 강화도 남성들이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를 막아서는 뉴스 화면은 접경 주민들의 의식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반영하는 장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장면은 이미 9년 전부터 나타났다. 2011년 3월 4일에는 임진각 상인들을 비롯한 파주시 문산읍 주민들이 대북전단 날리기를 임진각에서 열지 않도록 해달라고 읍장에게 요구했고, 비슷한 시기에 문산읍 이장단 협의회도 읍장에게 동일한 요청을 했다. 또 같은 달 24일에는 강원도 철원군 주민 10여 명이 당시 대북풍선단이 하려던 전단 살포를 막기도 했다.

이런 반응들은 대북전단 살포에 과민해진 북한 군부가 조준격파 사격을 경고한 데 따른 것이기는 했지만, 2010년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접경 지역을 한층 더 위험하게 만든,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불안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접경 지역이 여타 지역에 비해 높은 대북 경계심을 가진 건 사실이지만, 위와 같이 지난 9년간 이 지역에서 전단 살포에 대한 거부감 또한 커진 것 역시 사실이다. 해당 지역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다만 접경 지역 변화를 신변 위협 우려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접경 지역 부동산을 보유하고 지역 여론을 움직이는 집단의 태도를 그것만으로 풀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가 자신들 이익을 해친다고 인식하는 집단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접경 지역에서 인식 변화가 찾아온 이유 중 하나

그런 분위기 중 하나가 2018년에 최종환 파주시장이 제시한 '파주시 통일 경제특구 구상'이다. 파주시청이 그해 12월 18일 배포한 '파주시, 통일 경제특구 큰 틀의 청사진 제시'에서 그 구상을 확인할 수 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최 시장은 '파주시 통일 경제특구 지정을 위한 타당성 조사연구 용역' 최종 보고회에서 "통일 경제특구가 조성되면 파주는 남북교류 협력 장소이자 평화 도시 중심지로 부상하게 될 것이며, 한반도 정세변화와 남북관계의 부침과 같이 어떠한 정세 변화에도 불구하고 항구적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명했다. 대결이 아닌 평화가 지역 경제에도 유리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2018년 10월 26일자 <매일경제> 기사 '심상찮은 땅값... 10년 만에 최대 상승'에 따르면, 경기도 파주(8.1% 상승)와 강원도 고성군(6.5% 상승)은 그로부터 1년 전보다 땅값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 중에서 1위 및 2위에 올랐다.

두 지역 땅값 상승을 끌어올린 공통 요인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남북교류 길이 열리면, 접경은 경계나 변방이 아니라 중간 연결점으로 바뀌게 된다. 남한에서 대전광역시가 차지하는 위상이 남북교류 시대에는 접경 지역의 위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접경지역 부동산에 투자자가 느는 데엔 이런 배경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2014년 철원·고성을 지나던 중, '통일에 대비해 투자하라'는 취지의 플래카드를 본 적도 있다.

결국,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환호하며 손뼉 칠 사람들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남북화해를 추동하는 기운이 빈부와 이념 차이를 넘어 한국 사회 곳곳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북전단 #탈북자 단체 #접경지역 #한반도 평화 #남북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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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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