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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총리와 박용길 장로, 그리고 알렉세예비치

<봄길 박용길> 출판기념회에서 축사...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 속에서 보석 찾아내야"

등록 2020.06.04 14:54수정 2020.06.0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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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봄길 박용길> 출간기념회에서 축사를 하는 한명숙 전 총리. ⓒ 삼인출판사

한명숙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대한 '검찰의 위증교사 의혹' 등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 전 총리가 고 문익환 목사의 집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지난 1일 오후 3시부터 서울 성북구 수유리에 위치한 고 문익환 목사의 집('통일의집')에서는 제22회 늦봄 통일상 수상식과 함께 평생 동안 기독교운동과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에 헌신해온 박용길 장로의 전기 <봄길 박용길>(엮은이 정경아, 삼인출판사) 출간기념회가 열렸다.

특히 출간기념회에서는 지난 2017년 8월 만기 출소한 이후 외부활동을 자제해온 한명숙 전 총리가 축사에 나섰다. 그 축사에서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찾아내야 한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앞서 한 전 총리는 지난 5월 23일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11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주변 인사들에게 "제가 인생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라고 결백을 주장한 바 있다.

"문익환 목사님의 부인으로만 기억할 뻔한 것을..."

이날 출간기념회에서 한 전 총리는 먼저 "언제부터인가 잘 오지 못했다, 굉장히 오래간만에 왔다"라며 "그런데 참 많이 사랑받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을 보고 기뻤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한 전 총리는 "우선 <봄길, 박용길>이라는 이 책이 나올 즈음에 저에게 추천사 부탁이 왔다"라며 "그래서 박용길 장로님 원고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을 때에 초고를 제가 받아보고 그 분의 인생에 굉장히 푹 빠져들었던 게 몇 달 전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용길 장로님의 전기가 나온 것을 저는 누구보다도 정말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기쁘게 생각한다"라며 "여신학자협의회에서 기획하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이렇게 좋은 책을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라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한 정 총리는 "문익환 목사님의 그림자에 가리어져 그냥 목사님의 부인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 뻔한 것을 박용길 장로님이라는 하나의 독립적인 인간, 독립적으로 살아온 부분을 이렇게 훌륭하게 세상에 알리게 된 것에 감사드리고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세예비치의 작품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문학동네

벨라루스 작가 알렉세예비치를 호명한 이유

이어 한 전 총리는 "우리나라가 일제시대에 정말 많은 고초를 겪었을 때 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었다"라며 "우리가 아는 독립운동가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 여성독립운동가가 누가 있을까 하면, 정말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의 이름밖에 생각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한 전 총리는 "그래서 우리 독립운동(3.1운동) 100주년을 맞았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하십시오'라는 것을 발표하고 그 이후에 그러한 작업이 일어난 것을 알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스베틀라나 알렉세예비치'라는 벨라루스 작가를 호명했다.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작가인 그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War's Unwomanly Face)> <체르노빌의 목소리(Voices from Chernobyl)> 등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과 전쟁을 다룬 작품을 써왔고, 지난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노벨재단은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기념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여성 200여 명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한 전 총리는 "이 분이 강조하는 것이 박용길 장로님의 전기가 나온 것과도 맥이 통한다"라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출판사에 가서 3년 동안이나 묶인 채 발간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3년 동안 출간되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2차대전의 모습을 그리는데 여성 중에서도 여성 영웅의 모습을 그려야지 왜 그렇게 아무 이름도 없고, 유명하지도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사람의 목소리를 책에다 실어야 하느냐?"라는 세계적인 통념 때문이었다. 한 전 총리는 이 작가의 목소리를 이렇게 전했다.

'전쟁의 역사는, 전쟁의 인물은 영웅이다. 지금까지는 영웅이었다. 그러나 나는 영웅을 조명하지 않았다. 그 전쟁이라는 가장 비참한 고통 속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으며, 아이들이 어떤 고통을 느꼈으며, 엄마가 그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떤 아픔을 느꼈는가? 그리고 할머니가 그 속에서 어떤 눈물을 흘렸는가?'

한 전 총리는 "이 작가는 이런 것을 인터뷰하면서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책에 담았다"라며 "이것이 지금까지 나왔던 책에 대한 하나의 통념을 깨부수는 노벨문학상의 기점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 전 총리는 "그런 점에서 볼 때 앞으로 우리 여신학자협의회에서도 계속 여성들의 전기를 펴내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속에서도 이제는 유명하고 영웅이고 알려진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인생 속에서 보석을 찾아낼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발간된 고 박용길 장로의 전기 <봄길 박용길>. '봄길'은 박용길 장로의 호다. ⓒ 삼인출판사

"박용길 장로님은 예수님을 따라서 사는 분이었다"

한 전 총리는 "제가 박용길 장로님의 원고를 쭉 읽으면서 너무나 많이 깊숙이 빠져들었다"라며 "왜냐하면 일제시대를 제외하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삶의 모습이 겹치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특별히 박용길 장로님은 그렇게 넓고 깊은 사람이 또 있을까 할 정도로 언제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배려심이 깊었고 인자하고 잘 인내하고 잘 섬겼다"라며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문익환 목사님보다도 훨씬 더 심지가 굳고 당당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머뭇거릴 때도 아내인 박용길 장로님은 땅에 뿌리를 깊게 드리우고 꿋꿋하게 버텨내는 모습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한 전 총리는 "기독교가 진정한 예수의 길을 따라서 사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기독교가 최근에 많이 흐려진 데가 있다"라며 "그런데 우리 박용길 장로님의 책을 읽음으로써 이 봄길의 반김이 곧 예수님을 따라서 사는 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됐다"라고 말했다.

<봄길, 박용길>은 "일제강점기·해방·전쟁·민주화운동으로 점철된 20세기에서 21세기 초반에 이르는 한반도 역사를 기독교운동·민주화운동·통일운동의 최전선에서 살아낸 여성 박용길(1919년~2011년)"의 전기다.
 
'봄길 박용길' 장로는 누구?

봄길 박용길은 1919년에 황해도 수안면에서 태어났고, 네 살 때 평안북도 대유동으로 이사하여 6남매 중 넷째 딸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울 경성공립여자고등학교(현 경기여고)를 졸업한 뒤 1937년 일본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에 들어갔고, 이듬해 조선인 신학생들의 모임에서 문익환을 처음 만났다. 1944년 문익환과 결혼하여 중국 만주에서 목회자의 아내로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해방과 전쟁 중에 서울·경상도·제주도·일본 도쿄를 오가며 호근·영금·의근·성근을 낳고 키웠다.

1955년에 한신대 캠퍼스 사택에 정착했고, 경기여고 동창들과 전후 구호 활동에 앞장섰으며,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임원으로 고희 때까지 교회여성운동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다. 1970년에 지금 통일의 집이 자리한 수유동에 터를 잡았고 1975년엔 한빛교회의 첫 여성 장로로 안수받았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때부터 10년 넘게 남편을 옥바라지했으며, 민주화실천가족운동 협의회 회원들과 거리로 나서 평화시위의 역사적 장을 열어갔다. 1994년 문익환이 사망한 뒤 통일맞이칠천만겨레모임을 설립하여 통일운동을 이어갔고, 1995년 김일성 주석 1주기 조문을 위해 직접 북한을 방문했다. 이 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 국제앰네스티 양심수로 인정, 집행유예로 4개월 뒤 석방됐다.

2005년에 민주화와 남북화해에 헌신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다. 2011년 93세로 삶을 마감하고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문익환의 곁에 안장됐다.


*출처 : <봄길, 박용길>, 삼인출판사,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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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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