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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취재] "지금의 당혹감과 공포는..." 약탈로 이어진 LA시위

1만명 모여 '경찰에 의한 흑인 사망' 항의... 평화롭게 진행됐지만 저녁부터 양상 바뀌어

등록 2020.06.01 07:12수정 2020.06.0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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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현지시각),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이 경찰관의 강압적 체포 과정에서 숨진 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여러 대도시에서 계속되고 있다. 서부의 로스앤젤레스에서는 29일부터 대규모 시위가 시작됐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막고 밤늦게까지 시위가 이어졌다. 경찰은 500명이 넘는 시위 참여자를 체포했다.

주말인 30일 시위에는 더 많은 참석자들이 모였다. 낮 12시경 LA의 랜드마크인 그로브 쇼핑몰 근처의 공원에서 집회가 시작됐다. 1만여 명의 시위대는 집회를 연 뒤 경찰이 차량을 통제하는 길을 따라 베버리힐스 쇼핑센터까지 도보로 행진했다. 시위 참석자의 대부분은 10~30대 정도의 젊은 유색 인종들이었지만, LA의 진보단체들도 대거 동참한 연대 시위 형태였다.

LA 지역 부의 상징 두 곳에서 공식집회 시작과 마무리
 

한 시위자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사인을 하고있다. ⓒ 이철호


집회와 행진은 평화롭게 진행됐다. 길가의 시민들은 구호를 같이 외치며 동조했다. LA 지역에서 부의 상징으로 꼽히는 그로브 쇼핑몰과 베버리힐스 쇼핑센터 두 곳을 집회의 시작과 마무리 장소로 정한 것은 의미심장해 보였다.
 

베버리힐스 근처에서 평화행진 중인 시위대 ⓒ 이철호


시위가 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오후 3시경, '블랙 라이브즈 매터 로스앤젤레스'(Black Lives Matter, Los Angeles) 등이 주도한 공식집회가 마무리된 후였다. 경찰은 여전히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를 분산시키기 위해 패어팩스 길을 중심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해산을 종용했다.

이에 몇몇 시위대는 경찰차를 부수고 방화하는 등 폭력으로 대응했다. 경찰은 폭력을 쓰는 일부 시위대에 고무탄과 최루탄을 쏘며 대응했지만, 대치가 이루어진 여러 곳에선 대부분 폭력을 자제하는 평화 시위를 고수했다.

오후 3시경 공식집회 종료 후부터 시위 격화
  

시위대가 파괴한 경찰차가 여러대 보인다. ⓒ 이철호

시위대에 의해 차량과 성조기가 불타고 있다. ⓒ 이철호


시위대는 경찰과 대치하며 "쏘지마라(Don't shoot)", "모든 경찰은 악당이다(ACAB/All cops are Bastard)",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No Justice, No Peace)"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한 시위자가 '침묵하는 자도 공범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이철호


경찰 저지선을 뚫자고 시위대를 선동하는 사람에게 평화 시위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간혹 상점의 유리창이 깨진 곳에서는 시위대가 경비를 서기도 했다.
 

경찰 저지선을 뚫자고 선동하는 시위 참석자를 다른 참석자들이 설득하고 있다. ⓒ 이철호


오후 6시경 시위 양상 다시 급변... 명품 상점들 약탈 시작

시위 양상이 다시 급변한 것은 오후 6시경. 이때부터 그로브몰과 베버리힐스의 로데오 거리의 명품 상점들이 약탈당하기 시작했다. 그로브몰 내 노스트롬 백화점과 애플 스토어, 레이벤 가게 등에 약탈자들이 난입하여 물건을 무단으로 가지고 나갔고, 그로브몰에는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기도 했다.

패어팩스 근처의 상점 여러 곳이 약탈을 당했지만, 경찰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베버리힐스 로데오 거리의 명품 상점들은 대부분 미리 상점 유리창을 커다란 나무판자로 막는 공사를 해둔 상태여서 약탈의 피해를 크게 입지는 않았다.
 

약탈당한 패어팩스 인근의 신발 상점. ⓒ 이철호

베버리힐스 로데오거리의 대형 명품상정들은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판으로 유리창과 입구를 막는 공사를 했다. ⓒ 이철호


약탈자는 시위대와는 다른 그룹이었다. 약탈을 목적으로 한 사람들은 자동차로 이동하며 적당한 상점을 물색하다가 가져온 야구방망이나 골프채로 상점의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물건을 실어날랐다. 일단 약탈이 시작되면 시위에 참가했던 일부도 약탈에 동참하는 양상을 보이긴 했지만, 주류 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시위대가 약탈자로 돌변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소 거리가 있다.
  
"당신이 겪는 당혹감과 공포, 우리는 매일 느낀다"
 

약탈당한 베버리힐스의 한 소매점 ⓒ 이철호


한편, 에릭 가세티 LA 시장이 오후 4시경, 밤 8시부터 일요일 새벽 5시까지 통행금지를 명령한 것을 시작으로 베러리힐스, 산타모니카, 컬버시티 등 LA 인근의 여러 도시들도 통행금지를 명령했다. 특히 LA 시장은 저녁부터 상황이 격화되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게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700명의 주 방위군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1992년 4.29 흑인 '폭동' 당시 많은 재산 피해를 입었던 한인들은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많다. 또한 흑인 인권이 무시된 상황을 항의하는 시위가 차량을 불태우고 상점 약탈로 이어진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많았다.

한 흑인 시위 참석자가 시위현장에서 ABC뉴스와 인터뷰하면서 던진 말이 여전히 귓전을 맴돈다.

"오늘의 피해는 불가피한 것이다. 왜인줄 아는가? 지금 당신이 겪는 당혹감과 공포는, 우리가 매일 길을 걸으며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아름다운 빌딩들은 볼 여유가 없다."
 

오후까지 대부분의 시위는 평화롭게 이뤄졌지만 곳곳에 방화의 흔적이 있다 ⓒ 이철호

패어팩스 인근에서 참석자들이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사인을 하고 있다. ⓒ 이철호

저녁이 되자 중무장한 경찰관들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 이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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