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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의 후회 "전직 대통령이 법정 서는 일, 다신 없길"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 (44)] 제13대 대통령 노태우 ⑤

등록 2020.06.11 09:15수정 2020.06.1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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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3당 합당 ⓒ 국가기록원

 
3당 합당

노태우는 13대 대선에서 야권 분열의 어부지리로 대권을 잡았다. 하지만 1988년 4월 26일에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여소야대' 국회가 됐다.

각 정당별 득표율은 노태우의 민정당 34.0%, 김대중의 평민당 19.3%, 김영삼의 민주당 23.8%, 김종필의 공화당 15.6%였다. 의석수는 민정당 125석, 평민당 70석, 민주당 59석, 공화당 35석이었다. 여권 125석, 야권 174석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여권은 여소야대로는 정국을 이끌어 가기가 어렵게 되자 정개 개편을 시도했다. 노태우는 먼저 김종필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김종필은 노태우의 손을 잡아줬다. 다음엔 김대중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김대중은 "4당 체제지만 협조할 것은 해드릴 테니 이대로가 좋겠다"라면서 거절했다.

그러자 노태우는 김영삼에게 손을 내밀면서 '보수대연합'을 제의해 호응을 받았다. 결국 1990년 1월 22일 민정당·민주당·공화당이 3당 합당을 선언했다. 새로운 당의 이름은 민주자유당(민자당)이라고 지었다.
 

3당 합당에 이의를 제기하는 노무현 의원 ⓒ 자료사진

  
오랜 세월 동안 군정 종식을 외친 김영삼은 "아침에 결심을 했다가도 저녁에 마음이 돌아서고, 자고 나면 마음이 또 바뀌었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3당 합당의 변으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민주당은 통합 후에도 한동안 홍역을 치렀다. 그 결과, 이기택·이철·홍사덕 등 일부 의원은 민주당에 잔류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꼬마민주당'이라고 명명했다.
 

노태우, 고르바초프 한러 정상회담(1990. 6. 5.) ⓒ 국가기록원

 
북방정책

노태우는 3당 합당으로 안정된 통치기반을 마련하자 그제부터 자신의 공약을 하나 둘 펼쳐나갔다. 주택 200만 호 건설,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신도시 건설, 경부고속철도, 서해안고속도로, 영종도국제공항 등을 착공했다. 갑작스러운 건설 붐은 자재파동 등의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노태우의 회심작은 '북방외교'였다. 그 무렵 동서간 이념 대립으로 올림픽마저 반쪽짜리로 치러졌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이를 봉합해 정상화했다.

1990년 6월 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고르바초프의 한소정상회담이 있었다. 그해 12월 13일 고르바초프의 초청으로 노태우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 소련 모스크바를 방문해 크렘린궁에서 한소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를 계기로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하게 됐다. 노태우는 재임기간 동안 소련·중국을 포함한 공산권 45개국과 수교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 
 

중간평가 유보 특별담화를 발표하는 노태우 대통령 ⓒ 국가기록원

  
노태우의 고백
 
 나는 '돈''문제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 대통령 재임 중에 기업인들로부터 이른바 '통치자금'을 받은 일 때문이었다. 이것이 뇌물수수에 해당한다는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2년여 수감생활까지 해야 했다. ... 이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심정은 참담하다.

6.29 선언을 통해 민주화를 실천하고,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열어 역사상 가장 두터운 중산층을 형성하면서 북방정책을 추진해 한국을 세계의 중심국가 반열에 올려놓은 내가, 이 일로 인해 모든 것을 잃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내 시대의 업적을 억지로 인정받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비자금으로 파생된 일들로 인하여 함께 일한 사람들과 국민 여러분에게 걱정과 실망감을 안겨 준 데 대하여 자괴(自愧, 스스로 부끄러워함)할 따름이다.

앞으로 이런 일로 인하여 국가원수를 지낸 사람이 법정에 서는 일은 다시 없기를 기원하고 있다. 내가 마지막 사람이기를 진실로 바란다. - <노태우 회고록> 중에서

 
 

법정에 선 두 전직 대통령 ⓒ 자료사진

 
권력, 금력, 명예

하늘은 권력과 금력과 명예, 세 가지를 모두 한 인간에게 좀처럼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 평범한 진리를 몰랐던, 욕심 많고 어리석은 한 전직 대통령의 뼈 아픈 회고담이다. 그는 권력과 명예에 만족하지 못하고, 게다가 금력까지 욕심을 냈다. 그 탐욕이 만천하에 탄로나자 나락으로 떨어졌다.

무릇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깊이 새겨볼 한 전직 대통령의 뼈속에서 우러난 말이다.

"국가원수를 지낸 사람이 법정에 서는 일은 다시 없기를 기원하고 있다. 내가 마지막 사람이기를 진실로 바란다."

(* 다음 회부터는 김영삼 대통령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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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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