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노태우, 친구 전두환이 끌어주고 밀어주다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 (42)] 제13대 대통령 노태우 ③

등록 2020.06.03 11:35수정 2020.06.04 09:50
0
원고료로 응원

노태우 생가 안채 ⓒ 박도

  
노태우는 자신이 직접 쓴 <노태우 회고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고향 집

나는 1932년 12월 4일,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용동(현 대구시 동구 신용동)에서 아버지 노병수, 어머니 김태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생가는 팔공산 자락으로 집 뒤로 낮은 야산들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아버지는 공산면 면서기로 지냈는데 음악을 매우 좋아했다. 아버지는 내가 여덟 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나는 여덟 살 때인 1939년에 마을에서 15리(6km)가 되는 공산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 즈음에는 먹을 게 귀해 배가 무척 고팠다. 여름철 등하굣길에는 머루, 다래, 돌배 등을 따먹거나 도라지 소나무 껍질 등을 벗겨 먹었고, 봄철에는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 꽃잎을 따먹곤 했다. 그런 가운데도 항상 싱글벙글 웃고 다녀 내 별명은 '스마일'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유품인 퉁소를 즐겨 불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많았지만 집안이 어려운 탓에 음악가의 길을 걷지 못했다. 공산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북중학교에 입학지원서를 냈으나 1차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다. 그리하여 대구공립공업학교(현 대구공고) 전기과에 입학했는데 전공보다 문학, 음악, 운동 쪽에 관심이 더 많았다. 대구공립공업학교에서 3학년(현 중3)까지 다닌 뒤 경북중학교(현 경북고)에 편입학하였다

 

노태우 생가 마당에 세워진 노태우 동상 ⓒ 박도

 
 

노태우 생가마을에서 바라본 팔공산 ⓒ 박도

 
육군사관학교 입교

경북중학교 6학년(경북고3) 때 6.25 전쟁이 발발했다. 나는 헌병학교에 입교하여 졸업 후 그 학교에 교수 요원으로 남게 되었다. 그 이듬해인 1951년 초가을, 육군사관학교 4년제 정규과정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여 합격했다. 나는 육사 재학 중 럭비부에서 백넘버 11번 레프트 윙 스리쿼터백으로 출전했다. 

 
육사생도 시절 학과가 끝나면 럭비연습을 하고 밤에는 독서를 즐겼다. 육사를 졸업한 뒤 전남 광주 상무대에서 초등군사반 교육을 받고 배치된 곳은 중동부 전선에 위치한 5사단이었다. 사단장은 박정희 장군이었다.

  

육사 생도 시절의 노태우(오른편)와 전두환 ⓒ 자료사진

 
박정희와 만남

박 사단장과 첫 대면이었다. 그분은 체구가 작으면서도 침착하고 야무져 보였다. 5사단 근무 중 어느 하루 사격장에서 중대별 사격시합을 시키고 있는데 사단장의 부름을 받고 대대본부로 갔다.

박 사단장은 "내가 자네와 점심을 같이 하고 싶어 불렀다"고 했다. 식사가 끝나자 오후에 오리 사냥을 같이하자고 했다. 나는 중대별 사격시합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사양하자 무척 서운해 하는 눈치였다. 헤어질 때 박 사단장은 곧 사단을 떠난다는 말을 했다.

나는 1959년 5월 31일 결혼했다. 신부는 육사 동기생 김복동 동생 김옥숙이었다. 결혼식 사회는 전두환 대위가 맡았다. 그는 기백이 넘치는 군대식 용어로 일관해 군행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우리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나는 그때 서울사대 ROTC 교관이었는데, 서울 문리대 ROTC 교관을 하고 있는 전두환 대위와 연락을 취했다. 그리하여 1961년 5월 18일 육사 생도 및 장교단의 혁명지지 시가행진을 이끌어냈다.

그 일을 성공리에 끝나자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장은 동기생 몇 사람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손영길, 전두환, 최성택, 나 등으로 전 대위는 최고희의 민정비서관, 최 대위는 총무비서관, 손 대위는 박 의장 부관, 나는 김재춘 방첩부대장 부관이 됐다.

1967년 중령으로 진급한 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파월 중 충무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1968년 귀국하여 육군대학을 수료하고 수도경비사단 대대장으로 1970년에는 대령으로 진급하여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장교가 됐다. 1974년에는 육군 준장으로 진급된 뒤 공수특전여단장이 됐다. (이상 <노태우 회고록> 축약)

  

1987년 6월 10일 대통령 후보 지명 후 노태우와 전두환 ⓒ 국가기록원

 
끌어주고 밀어준 친구, 전두환

1978년에 노태우는 육군 소장으로 진급한 뒤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이 됐다. 이는 동기이자 친구인 전두환이 이끌어준 덕분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군 내부 사조직 하나회의 핵심 요인이었다. 이들은 윤필용 사건으로 한때 위기에 처했지만 박정희의 배려로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1979년 1월에는 9사단장이 됐다. 그해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12월 12일 전두환과 함께 군사반란을 주도해 정승화 계엄사령관 및 육군참모총장을 제거했다.

그해 12월 수도경비사령관, 1980년 8월에는 중장으로 진급해 전두환의 뒤를 이어 보안사령관이 된 뒤 1981년 대장으로 진급한 예편해 제2정무장관, 그해 9월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위원, 1982년 4월에는 체육부 장관, 1982년에는 내무부장관, 1983년에는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1984년에는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했다. 이후 제12대 국회의원이 됐고,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에 올랐다. 이 모두가 전두환의 배려로 이뤄졌다.

그의 군 생활은 KTX와 같은 '초고속' 승진었다.
 

법정에 선 노태우와 전두환 ⓒ 자료사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AD

AD

인기기사

  1. 1 골목식당 나온 그 집 말고, 옆집을 가는 이유
  2. 2 "4대강사업 덕분에" 논란, MB 비밀문건에 담긴 진실
  3. 3 을지문덕은 왜 사라졌을까... 실종 전 행적 따져보니
  4. 4 상사와 연애해서 대기업 입사... 기안84 웹툰 중지 청원 5만 돌파
  5. 5 '임차인' 발언으로 뜬, 윤희숙 의원의 놀라운 극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