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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보수, '이명박·박근혜 신드롬' 때보다 심각하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보수 리더십의 문제점

등록 2020.05.11 20:45수정 2020.05.1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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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가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강당에 마련된 제21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지상파 3사(KBS·MBC·SBS)와 한국방송협회가 진행한 출구조사를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미래통합당의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주호영 신임 원내대표가 선출된 뒤에도 아직까지는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2022년 대선이 2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라, 통합당의 조급함은 한층 가중되고 있다.

통합당의 처지가 딱하다는 점은, 이 당을 대하는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당 대표직에 공식 도전할 의사가 없는 그는 몇 개월짜리가 아니라 장기간의 비상대책위원장 직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선출직 대표의 권한과 위상을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40대 경제전문가를 차기 대선후보로 만들어내겠다고 공언했다. 전두환이 노태우를 낙점하던 시절의 제왕적 총재관을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끔 하는 발언이다. 그냥 '40대 대선 후보'도 아니고 '경제전문가인 40대 대선 후보'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 표명은, 차기 대선까지가 아니라 그 후에도 '선출직 같은 비선출직 지도자'로 남고 싶어 하는 그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그런 마음을 품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그가 공식 대표에 출마할 생각도 없으면서 사실상 공당 지도자가 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그가 그런 생각을 마음에 담아두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입으로 거리낌 없이 표출할 수 있는 건 통합당의 리더십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같은 보수진영의 리더십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누적돼온 문제점이다. 1945년 이후로 보수진영은 '미국의 낙점'(이승만)이나 '쿠데타+미국 승인'(박정희·전두환)에 의해 부각된 인물을 지도자로 추대했다. 이런 구도 하에서 보수 지도자는 대중적 지지가 결여된 채로 국민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왕정국가도 아니고 민주국가에서 이는 중대한 약점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한계를 감안하지도 않은 채 이승만 정권은 국회에 의한 간선제로는 대선 승리가 힘들다는 판단 하에, 한국전쟁 중인 1952년 헌법개정(이른바 발췌개헌)을 통해 직선제에 뛰어드는 무리수를 감행했다. 대중적 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직선제 개헌을 해버린 그들은 부정선거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이는 그들이 1960년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무너지는 한 가지 원인이 됐다.

보수진영이 정상적 방법으로 직선제에서 승리하기 힘들다는 점은 박정희 역시 절감한 바였다. 그가 1972년 유신헌법을 통해 간선제로 회귀한 것은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익숙치 못한 보수진영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런 흐름을 볼 때, 1987년 6월항쟁 및 직선제 개헌 이후의 보수진영이 얼마나 많은 긴장감을 느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대쪽 법관' 이회창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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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전 국무총리 (자료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6월항쟁 이후의 '87체제' 하에서 보수진영의 최대 숙제는 직선제 대선에 맞는 지도자를 배출하는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배출된 인물이 이회창이다. 그는 87체제 하에서 '아무개 현상' 또는 '아무개 신드롬'이라 불릴 만한 과정을 거쳐 최초로 배출된 지도자였다.

87체제 출범 뒤에 노태우·김영삼이 연달아 대통령이 되긴 했지만, 이들은 6월항쟁 이전에 이미 대선후보급으로 성장한 지도자들이었다. 그래서 87체제 하에서 배출된 최초의 대선후보급 보수 지도자는 이회창이 처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이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며 법치가 아닌 인치를 한 것에 대한 반발로, 6월항쟁 이후에는 '제발 법대로만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이런 속에서 법치주의가 힘을 얻었다. 법원과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벗어나 독자 영역을 확보하게 된 것도 이 덕분이었다. 이런 속에서 '대쪽 법관' 이미지를 앞세워 신드롬을 일으키며 보수진영의 차기 주자로 급부상한 인물이 이회창이다.

보수진영 후보이기는 했지만, 이회창은 보수와 민주 양쪽을 어느 정도 만족시킬 만한 인물이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대쪽', '법대로'는 보수뿐 아니라 민주 진영에서도 선호되는 바였다.

1995년 2월 23일자 <동아일보> 기사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이회창 씨 영입 않기로'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김대중의 최측근인 권노갑 최고위원의 주도 하에 민주당이 이회창 영입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가 가진 법치주의 이미지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바가 있었기에 민주당도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냉전적 세계관과 아들 병역비리 혐의 등으로 인해 결국 힘을 잃기는 했지만, 이회창은 법치주의 열기 속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보여줬다. 이 점은 3차례 대선에서 나타난 그의 득표력이 잘 증명한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이회창은 993만 5718표(38.7%)를 얻어 1032만 6275표(40.3%)를 받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에게 39만 557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패했다. 2002년 16대 대선 때도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이회창(46.6%)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48.9%)에게 57만 980표 차이로 아깝게 졌다.

이회창의 득표력은 2007년 대선에서도 역설적 방식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이 이명박 후보를 내세운 상태에서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당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15.1%를 득표해 이명박(48.7%)과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26.1%)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보수정당 후보인 이명박이 48.7%를 득표한 상황에서 그가 별도로 15.1%나 얻어냈던 것이다. 독재자가 아닌 보수정당 후보가 이렇게 오랫동안 득표력을 유지한 사례는 이회창 외에는 없었다.

향수를 자극한 이명박과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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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자료사진) ⓒ 권우성


87체제 하에서 이회창에 뒤이어 부각된 지도자는 이명박과 박근혜다. 이들도 이회창처럼 이명박 신드롬 및 박근혜 신드롬으로 불릴 만한 대중적 지지 획득 과정을 거쳐 지도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회창과 달랐다. 이회창처럼 번번이 낙선하지 않고 대선 본선에서 한 번에 당선됐다는 점 말고, 이들과 이회창을 갈라놓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었다. 그것은 이회창과 달리 두 사람이 과거회귀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회창은 막판에 이미지가 구겨지기는 했지만, 대쪽 이미지만큼은 시대적 흐름인 법치주의에 부응했다. 그에 반해, 이명박·박근혜는 시대적 과제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들은 과거의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면서 지도자 지위에 올랐다. 이명박의 경우는 거기에 샐러리맨 신화가 추가되고, 박근혜 경우에는 소위 '공주' 이미지가 추가됐을 뿐이다. 두 사람 다 구시대 이미지를 갖고 대통령 지위에까지 올랐던 것이다.

이명박·박근혜가 과거회귀적 이미지를 갖고도 대통령이 된 것은 노무현 개혁의 실패 및 그의 죽음을 계기로 민주·진보 진영이 동력을 잃었던 당시 상황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요인도 함께 작동했다.

대단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거나 군사력·자금력이 압도적일 경우에는, 과거회귀적 이미지를 갖고도 일시적으로라도 지도자로 급부상하는 게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는 그렇지 않다. 그들의 신드롬이 안철수 신드롬을 넘어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카리스마나 역량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안정적으로 대선 후보에까지 오른 것은 보수진영의 지도자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시대 흐름에 어울리지 않은 지도자 후보를 걸러내지 못하고, 검증 작업도 부실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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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자료사진) ⓒ 청와대


그렇게 된 것은 무엇보다 당시 보수진영의 조급함에 크게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의 연이은 당선에 당황한 보수진영이 대선 득표력을 갖춘 후보를 물색하는 데만 급급했던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는 인물을 찾기 위한 노력을 그만큼 소홀히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보수의 조급함이 '대선 경쟁력은 갖췄지만 미래 비전이나 도덕성은 검증되지 않은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미래통합당을 포함해 지금의 보수진영이 느끼는 위기감은, 1997년 이전에 이회창 신드롬이 불 때보다 심각함은 물론이고, 2002년 이후에 이명박·박근혜 신드롬이 불 때보다도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위기감은 집중력 제고에 도움이 되지만, 거기에 조급함이 겹쳐지면 오히려 화를 부를 수도 있다. 2002년 이후의 조급한 분위기에서 배출된 두 지도자는 대선에서는 승리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보수를 망치는 주역이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은 이회창보다 못한 대선 후보였다고 볼 수 있다.

김종인이 선출직 당대표급 비대위원장을 요구하는 지금의 혼란 상황에서도, 통합당은 다음 대선에 맞는 지도자만을 고민하고 있다. 대선 경쟁력을 갖춘 지도자를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대적 요청에 대한 고민 없이 대선 경쟁력만을 우선시했을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는 이명박·박근혜 사례로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통합당에서 2022년 대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만 나오고 시대적 요청에 대한 고민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면, 통합당이 이회창보다 못함은 물론이고 이명박·박근혜보다도 못한 지도자를 또다시 배출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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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저서: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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