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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효도한 만큼 포인트 적립하자는 이 엄마의 사연

어버이날 앞두고 읽은 책 '엄마는 죽을 때 무슨 색 옷을 입고 싶어?'

등록 2020.05.08 08:00수정 2020.05.0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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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고 전화해줘서 고마워."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할 때면 엄마는 항상 마지막에 이렇게 끝을 맺으신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자식들에게 예의를 지키시려는 모습이 거리감 있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렇게 자신의 품위를 놓지 않은 모습에 '이 모습을 오래 간직하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런 엄마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피하고 싶으실 테다. 조심스러운 마음에 한 번도 엄마 앞에서 감히 꺼내지 못한 단어. 간혹 당신 스스로 꺼내실 때면 마치 '남의 얘기'인 양 영혼 없는 말로 넘기곤 했다.

90대 치매 할머니를 간병한 70대 엄마, 그리고 40대 딸
 

90대 할머니, 70대 엄마, 40대 딸, 모녀 3대의 죽음 스토리 ⓒ 홍지인

 
<엄마는 죽을 때 무슨 색 옷을 입고 싶어?>라는 책은 그런 나의 상념을 무너뜨린 책이다. 삶과 같이 항상 우리 앞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깔깔댈 수 있는 수다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9년간 기계설계 분야에서 교수로 활동하던 중 '인간의 삶과 죽음의 설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는 것뿐만 아니라 죽는 것 또한 설계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죽음 설계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저자.

이 책은 '누군가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깊이 사랑하는 것임을 같이 나누고 한다'는 목표로 학문적, 사회적으로 웰다잉 분야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연구하던 중, 치매할머니를 간병하던 저자의 엄마가 3박 4일간 저자에게 휴가를 와서 나눈 대화를 책으로 쓴 것이다.
 
할머니의 치매를 간병하면서 죽음이라는 물음과 함께한 저자의 어머니는, 만약 자신이 의식이 없으면 단호하게 생명 연장술을 거부해 달라면서 저자에게 그 결정을 부탁한다. 그런 결정에는 가족 간에 의견이 많이 갈리고 너무 슬픈 결정이라 어렵다는 저자의 말에 엄마는 말한다.

 
 "뭐 나만 죽냐? 다 죽는 기제. 눈덩이같이 불어나는 병원비는 또 어찌할 끄나?... 나는 병원 브이아이피 (VIP)고객 되기는 싫다. 무슨 백화 점도 아니고요."
" 죽어도 못 보낸다고 하면 간단한 방법이 있시야. 반대하는 자식헌 티 앞으로 발생하는 병원비를 다 내라고 하명, 바로 생각이 바뀌어블걸? 허허허".

죽음에 대한 상쾌하고, 유머러스한 그들의 대화 속에서 죽음이라는 것이 단지 피하기만 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일상 속으로 죽음을 초대해 무거운 무게를 빼고 가벼움을 조금 가미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태어남을 선택할 수 없었다면 죽음만큼은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하겠다는 것은 대단한 철학이나 유별난 인생관이 아니다.
 
삶과 죽음이 자신의  의지보다는 의술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은 두렵기도 하고 피하고 싶기도 한 일이다. 그래서 인생은 '언제 죽지? 어떻게 죽지? 어디서 죽지?라는 질문을 답안지도 없이 끝없이 던지나 보다.

의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더 잘 죽기 위한 선택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윤리적 접근의 색깔이 강하다. 삶이 각자의 선택이듯이 죽음에 대한 선택 또한 각자의 삶에 대한 존중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할머니 덕분에 엄마가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하는지 들을 수있었던 건 정말 축복이었다. 들을 수 있을 때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이야기들이었다. 할머니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엄마는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을 준비하고 싶어 했다.

효도 분량 포인트제

이 책에는 요즈음 가장 어려운 치매환자의 간병에 대한 '효도 분량 포인트제'라는 신선한 아이디어도 소개한다. 이는 자식으로서 당연하게 해야 할 효도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는 만큼 그 문제로 자식들 간에 분쟁을 없애기 위해 저자의 어머니가 고안해낸 방법이다. 7남매들이 각자 효도한 만큼 포인트를 쌓게 하고, 그것을 마지막에 정산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정산을 하게 하는 거다. 즉, 살았을 때 자식들에게 '허벌나게 효도' 받게 하기 위한 아이디어다.


물론 이런 합의는 자식들이 많은 가족과 유산분배라는 전제에서나 가능한 문제일 수도 있다. 현실적인가를 떠나, 치매 간병이라는 큰 문제를 다툼이 아니라 가족 공동의 문제로 풀어가는 모습이 흐뭇함으로 다가왔다. '효'라는 문제도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죽음에 대한 수다를 엄마와 신나게 해 볼까?

나이가 드실수록 그 여유로움이 묻어 나와, 때로는 어린아이다운 순진함과 때로는 새색시 같은 애교스러움이 귀여우리만치 생활에서 흘러나오는 엄마다. 엄마의 나이듦과 내 노년을 오버랩해본다. 

엄마에게 죽음이란 어떤 것인지 용기있게 물어볼 참이다. 엄마와 죽음을 주제로 대화한 저자도 두렵고 당하는 것만 같던 죽음을 이제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었듯이, 나 또한 지나온 세월 속에 채색된 엄마의 죽음은 어떤 색인지 궁금해졌다.

엄마는 죽을 때 마지막으로 무엇을 드시고 싶으신지, 마지막 장소가 어디였으면 좋은지, 마지막 눈을 감으실 때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일 거 같은지. 이번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 대신에 갓 나온 절편에 꿀을 가미해 엄마 입에 넣어드리며, 죽음에 대한 수다를 한판 해봐야겠다. 그리고 용기있게 물어볼 참이다.

"엄마는 죽을 때 무슨 색 옷을 입고 싶어?"

엄마는 죽을 때 무슨 색 옷을 입고 싶어?

신소린 (지은이),
해의시간, 2020


#어버이날 #죽음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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