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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이니 집 떠나 혼자 살라구요?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④] '선한울타리' 설립자 입양가족 최상규씨

등록 2019.12.18 12:00수정 2020.01.0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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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조간신문을 보다가 보호종료 아동에 대한 기사를 읽는 최상규씨 2014년 1월, 최상규씨는 조간신문을 보다가 충격에 빠졌다. 평소 잘 보지 않던 작은 박스 기사가 그날따라 눈에 들어왔다. 18세가 되어 보육원을 떠나는 보호종료 아동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 정현주

 
'선한울타리'는 만 18세가 되면 보육원에서 퇴소하는 '보호종료아동'의 자립을 돕고자 설립된 비영리단체이다. 단체 설립자인 최상규씨가 이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5년 전이었다.

2014년 1월, 그는 조간신문을 보다가 충격에 빠졌다. 평소 잘 보지 않던 작은 박스 기사가 그날따라 눈에 들어왔다. 18세가 되어 보육원을 떠나는 보호종료 아동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 아이들이 18살이 되면 시설에서 나가야 하는구나. 왜 여태까지 이 사실을 몰랐지? 우리집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졸업했으니 나가서 혼자 알아서 살라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는 2008년부터 샘물교회에서 보육원 아동과 일대일 결연을 맺어 후원하고, 1년에 두 번 가정체험도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주 보육원에 방문하고 결연 맺은 아동을 집에 데려와 돌보기도 하면서도 그 아이들이 언젠가는 보육원을 떠나야 한다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최상규씨는 2005년과 2011년에 셋째 딸과 넷째 아들을 입양한 입양부모였다. 만약 그가 입양하지 않았다면, 딸과 아들도 열여덟에 혈혈단신으로 보육원을 떠났으리라 생각을 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선한울타리'의 씨앗은 그렇게 뿌려졌다.

죽음의 문턱에서 '조지 뮬러의 일기'를 읽고

청년시절 해외발령을 앞둔 26세의 최상규씨는 지리산에서 화재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경험을 했다. 8개월 반 동안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했고, 경미한 장애가 남았다. 힘들었던 입원 기간 그는 지인이 선물로 주고 간 <조지 뮬러의 일기>를 읽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조지 뮬러는 영국에서 애슐리다운 고아원을 창설하여 1만 명 이상의 고아들을 돌본 선교사이자 교육자였다. 그는 그때 자신과 약속을 했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났으니, 나도 조지 뮬러처럼 나중에 보육원을 설립하리라."

그는 퇴원 후 회사로 돌아갔다. 그러나 회사의 대우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결국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뒤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지만, 창업하자마자 아이엠에프를 맞았다. 그 사이에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둔 가장이 되어 있었고, 그래서 경제적 부담감이 컸다. 일에 쫓기며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당연히 보육원을 하겠다는 꿈은 잊어버렸다. 그럼에도 자신이 경미한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교회에서 아내와 함께 장애인 봉사를 열심히 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입양' 얘기를 꺼냈다. 그는 거부했다. 사업이 계속 잘 안돼서 경제적으로 어려웠기에 입양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규씨를 설득하다 지친 아내는 급기야 '결혼 전에 당신이 보육원을 설립하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느냐? 그 때문에 결혼을 결심했는데, 거짓말을 했던 것이냐?'며 화를 냈다.

이미 낳은 아이 둘이 있는데, 입양해서 그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결국 2004년 그들 부부는 입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입양홍보회(엠팩) 행사에도 참여하고 입양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보려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그는 너무나 두려웠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이미 낳은 아이 둘이 있는데, 입양을 했다가 감정이 다르고 사랑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부모님까지 모시고 살던 때고 사업도 잘 안되는데, 가장으로서 경제적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여전했다.

그들 부부는 임신 기간이 10달이니 입양 역시 1년 정도 준비기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런데 5,6개월 쯤 지나면서 경제사정이 자꾸만 더 나빠지니까, 거꾸로 이제는 아내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얘기를 꺼냈다. 그 말을 듣고 상규씨는 곰곰이 생각했다.

'만약 아내가 임신을 했다면, 배 속의 아기가 5, 6개월 정도 되었을 때인데, 사업이 잘 안되고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출산하지 않는다?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부부는 입양 신청을 했다. 11월생이었던 셋째 딸은 그렇게 생후 1개월 만인 12월에 최상규씨의 가족이 되었다. 지금의 입양법으로는 한 달 만에 입양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내기 전 친생(부)모는 필수적으로 입양숙려 기간이라는 것을 거치고, 또 까다로운 서류 심사, 재판 과정으로 적어도 6개월 많으면 2년 이상 걸린다.

그러나 그때는 입양 절차가 까다롭지 않았다. 그래서 셋째는 거의 태어나자마자 상규씨의 가족이 되었고, 덕분에 부모와의 애착형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기를 기르면서 입양 전의 두려움과 고민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입양은 과거 한 시점의 사건이었을 뿐 낳은 자녀와의 차이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세 자녀의 아빠로 생활할 때까지 그는 철저히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내 아이들은 잘 입양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자꾸 귀에 들어왔고, 그렇게 남자 아이인 넷째를 입양한 뒤에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입양한 아이를 내 가정에서 잘 기르는 것'만 중요했던 그의 눈에 점점 요보호 아동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네 아이의 아빠'에서 '부모 없는 모든 아이의 아빠'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 안에서 이루어졌다.
 

최상규씨 가족 최상규씨는 셋째 딸과 넷째 아들을 입양한 입양가족이다. 지금은 딸이 중학생, 아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밝고 예쁘게 자라고 있다.ⓒ최상규 제공 ⓒ 정현주

 

한국의 건강한 교회들이 딱 두 아이씩만 섬겨준다면…

2015년 최상규씨와 뜻을 같이하는 몇몇 샘물교회 신도들의 지원으로 시설 퇴소생들이 머물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었다. 후원하고 있던 보육원에서 퇴소한 두 명의 아이들이 '선한울타리'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시설 퇴소생들은 LH공사에서 제공하는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전세 임대를 지원받을 수 있는데, 대부분 그러한 정보조차 알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지원 신청을 하고 입주할 때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고 절차도 까다롭다. 그래서 퇴소한 아이들이 당장 머물 곳을 제공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샘물교회에서 시작된 '선한울타리'의 출발은 미미했다. 그러나 점점 지원받는 아이들 숫자도 늘어났고, 체계도 잡혀갔다.

그리고 2016년에 지구촌교회, 2018년 남서울은혜교회가 이 사역에 동참했다. 5년간 25명의 아이들이 '선한울타리'를 통해 자립을 지원받았다. 현재 보호종료 아동을 위한 종합적인 돌봄서비스를 하는 단체는 '선한울타리'뿐이다. 최씨는 '한국의 건강한 교회들이 딱 두 아이씩만 섬겨준다면'이라는 바람을 모토로 계속 이 사역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 했다.

시설에서 퇴소하는 아이들은 짜놓은 일정에 맞춰 단체생활만 해왔기에, 일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어떤 면에서 더 자립이 어렵다. '선한울타리'는 시설 퇴소생이 자립을 준비하는 동안 주거 공간을 제공하고, 일체의 임대료, 공과금, 생활비를 제공한다.

또 시설에서 관리만 받았지 일상생활을 익히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멘토가 되어준다. 장보기부터 요리, 청소, 은행을 이용하는 방법 등 세세한 생활의 기술까지 가르친다. 대학 입학을 원하는 아이들은 진학 지도, 원서 접수까지 돕는다. 취업이나 진로 상담과 안내도 한다. 한마디로 부모나 가족이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자 한다.

자발적 민간단체와 정부기관 협력 중요

그는 '전국입양가족연대'(이하 전가연)에서 활동 중이기도 하다. 전가연은 지금 국회에 계류중인 남인순 의원의 입양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현재 입양기관에서 하는 입양업무를 지방자치단체와 보건복지부가 하게 된다.

"선한울타리 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저는 이 법 개정에 반대하지 않았을 거예요."

시설에서 퇴소한 소년 소녀들이 기초생활비 지원을 받고자 동사무소를 찾아가면, '부모 관계 단절 사유서'를 쓰게 한다고 한다. 이 서류 작성 자체가 그들에게는 상처이다. 낳은 부모가 있으면서 학대나 방임으로 시설에서 자라게 된 경우가 많은데,  낳은 부모가 돈 만원이라도 줬던 통장 기록이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다. 정부기관에 의해 진행되는 복지 행정은 이런 식이기에, 당사자들은 심리적인 압박 속에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보호 종료 아동을 돕기 위해 관공서, 국회, 지방자치단체를 뛰어다니면서 최상규씨는 계속해서 좌절감과 답답함을 느꼈다. 공무원들은 몇 년마다 업무가 순환되고 다양한 업무를 동시에 맡고 있어서 세세한 제도를 다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행정 업무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 속에 있다보니 사람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지 못한다. 당연히 보육원 아동들이나 입양 대상 아동들의 구체적 삶보다는 서류 작업이 우선이었다. 또 서류 신청 후 시행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그 사이에 담당공무원이 연수나 병가를 가버려서 속수무책인 경험도 많이 했다. 어른이고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상규씨도 당혹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당사자들은 오죽할 것인가 하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입양법 개정안에 따르면 입양 부모는 입양을 원한다는 신청을 복지부에 하고, 미혼모는 지방자치단체에 하도록 되어 있다. 입양은 당사자들의 상황을 섬세하게 살펴야 하는 전문성을 요하는 일인데, 보내겠다는 신청과 하겠다는 신청을 분산시켜 버리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다.

또 미혼모가 입양보내기를 원해서 동사무소나 구청을 찾아가면, 안 보내고 키울 수 있는 길로 지원하겠다는 얘기부터 하고, 숙려기간을 주고 여러 번 재방문하도록 되어 있다. 동사무소라는 공간 자체가 미혼모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구미 여러 나라처럼 미혼모가 아기를 안고 학교에 다녀도 될 만큼 개방된 사회도 아닌데, 이 법이 시행되면 지금보다 더 신생아 유기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법안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는 강한 '혈연주의' 때문에 입양 자체가 어렵고 드물다. 기관이나 위탁모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36개월 동안 연락하지 않으면 친권을 박탈할 수 있는 법이 있지만, 이 법은 거의 사문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최상규씨가 후원하는 6살 아영이(가명)는 아기 때 생모가 남긴 편지 한 줄 때문에 입양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남인순 의원의 입양법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입양 자체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리라고 내다본다. 결국 전국 250여 개 보육원에서 자라는 1만여 명의 요보호 아동이나, 해마다 유기되는 200여 명의 영아들에게 가정을 찾아주는 일은 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어느 나라나 가정 밖의 아동은 존재해요. 프랑스는 국가가 민간단체와 협력해서 이 일을 해나가고 있어요. 주로 천주교회를 중심으로 한 민간단체죠. 우리나라도 교회와 같은 종교를 기반으로 한 단체들이 협력하면 이 일들을 잘할 수 있다고 봐요. '선한울타리'처럼요. 지금까지 얘기로 아셨겠지만, 단지 금전적 지원만으로는 안 되는 거거든요."
 

'선한울타리'는 보호종료 아동을 위한 종합적인 돌봄 서비스를 하는 단체이다. 2016년에 지구촌교회, 2018년 남서울은혜교회가 이 사역에 동참했다. 5년간 25명의 아이들이 ‘선한울타리’를 통해 자립을 지원받았다. 현재 보호종료 아동을 위한 종합적인 돌봄 서비스를 하는 단체는 ‘선한울타리’뿐이다. 최씨는 ‘한국의 건강한 교회들이 딱 두 아이씩만 섬겨준다면’ 이라는 바람을 모토로 계속 이 사역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 했다. ⓒ 선한울타리 제공

 
리가 고아들의 얼굴을 보기 전에는 못 본 척하는 것이 더 쉽다

"조금 반가운 것은 민주당 윤후덕 의원실이 7월에 자립대상 아동에 대한 특별법을 발의했다는 사실이에요. 보호 종료 아동의 자립 지원 기간을 더 확대하고, 맞춤형 복지 지원체계를 갖추도록 하는 내용이라 통과된다면 많은 도움이 되겠죠. 그렇다고 해서 국가기관에서 선한울타리가 하던 일을 다 할 수 있으리라고 보진 않지만요."

그는 궁극적으로는 가족이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이기에 돈과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캐나다의 작가 로릴리 크레이커의 말을 인용해서 들려줬다. 
우리가 고아들의 이름을 알기 전에는
그 아이들을 모른 척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안다.
고아들의 얼굴을 보기 전에는 못 본 척하는 것이 더 쉽다.
고아들을 두 팔에 안아보기 전에는
그들을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더 쉽다.
그러나 일단 그 아이들의 이름을 알거나, 얼굴을 보거나, 두 팔에 안고 나면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다.
 
로릴리 크레이커의 책, <빨간 머리 앤, 나의 딸, 그리고 나>에 나오는 말이라 했다. 저자는 고아였고, 그의 딸 피비도 입양아이다. 이 책은 '우리는 모두 한때 고아였거나 고아이다'라고 말한다. 살면서 누구나 숱한 상실을 겪을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실 앞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고, 인생이다.

두 아이를 입양하여 품에 안으면서, 최상규씨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선한울타리'는 영문도 모르고 인생의 출발점에서 상실을 겪은 아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이다. 물론 최상규씨는 '선한울타리'가 필요 없는 세상을 원한다. 단 한 명의 아동도 보육시설에서 자라지 않고, 모두 행복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는 사회, 입양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고, 미혼부모도 당당히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는 나라가 그를 포함한 모든 입양가족들의 꿈이다.

[기획 /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① "'고아'라는 건 내 자랑거리, 알아줘서 고맙습니다" http://omn.kr/1kmkv
② "이제는 우리도 해외에서 입양해오는 나라가 되어야" http://omn.kr/1ksyh
③ 그는 엄마가 2년마다 바뀌었지만 http://omn.kr/1ljy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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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노동 인권, 공교육, 미혼부모,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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