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는 실수했다'고 역사에 기록되길 희망한다

[주장] 위기를 기회로, 일본시민과 연대로

등록 2019.07.15 10:54수정 2019.07.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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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 pexels

 
1.

1996년 2월 도쿄에 도착한 날, 이상한 것을 봤다. 사람들이 작고 까만 뭔가 들고 다니며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저게 뭘까. 새로 온 유학생들을 맞이하는 파티에서 누가 안 왔다면서 그 작은 조각을 들고 안 온 이와 대화했다. 그게 휴대전화라는 사실을 조금 후에 알았다. 한국에서 '삐삐'를 사용했는데 일본에 오니 생전 본 적 없는 색색가지 작은 조각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당시 한국도 'SC-1000'이라는 게 있었지만, 이건 자가용에 놓는 선이 있는 전화였다. 이후에 나온 휴대전화도 모토로라에 밀려 상용화 되지 못하고 삐삐가 대세였다. 그것만 보고 나는 일본에 기가 질려 버렸다.

며칠 뒤 도쿄외대에 연구생으로 도서관에 들어갔는데 또 이상한 걸 봤다. 학생들이 책상에 텔레비전 같은 걸 놓고 보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소위 '노트북'이었다. 정말 신기하고 부러웠다. 당시 우리는 386 컴퓨터를 쓸 때였다. 곧 삼성에서 노트북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것을 써야 한다면서 시판되기 전인 전시품을 샀다. 벽독만큼 무겁고 두꺼운 제품이었다.

일본 삼성 노트북을 가져왔으나 전혀 호환되지 않았고, 이내 고장나 버렸다. 도쿄에 있는 '재팬 삼성' 본사에 삼성 노트북을 들고 갔는데, 아무도 고칠 수 없다고 했다. 재팬 삼성 직원들은 모두 일제 노트북을 쓰고 있었고, 자기들도 쓰지 않는 삼성 노트북을 그 더운 날 들고 온 유학생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캠코더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어깨에 올려 놓는 영화 촬영용 같은 캠코더를 쓰는데 일본은 손바닥만한 캠코더를 쓰고 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우리는 언제 핸드폰이나 저런 가벼운 노트북이나, 여권만한 캠코더를 만들 수 있을까요?"


과장일까, 중간 직급 이상으로 보이는 삼성 직원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때 재팬 삼성 본사에서 나는 평생 못 잊을 말을 들었다. 

"50년이나 70년 걸려도 따라잡지 못할 겁니다."

그는 지금 도는 얘기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부품이 모두 일제라서 우리는 못 만듭니다."

그 말이 너무도 가슴 아파, 집까지 그 먼 거리를 거의 종일 걸어서 왔던 기억이다. IMF로 나라는 거덜났고, 벽돌처럼 무거운 천덕꾸러기 삼성 노트북과 함께 내 설움도 방구석에 쳐박아뒀던 1997년, 비루한 시절이었다.

기적도 아닌 기적이 몇 년 안 돼 일어났다. 김대중 정부 때 국민들은 금 모으기로 IMF를 극복하고, 1998년 영화 <쉬리>가 일본에 들어와 한국 인식이 바뀌더니, 2002년 <후유노 소나타>(冬のソナタ, 겨울연가, 일본에서는 줄여 '후유소나'라고 한다)가 그야말로 '욘사마'라는 사건으로 터졌다. 2003년께 독도 문제가 생겼을 때 고이즈미 정권을 향해 노무현은 붙을려면 한번 붙어보자는 발언까지 했다. 정확히 10년이 지난 2006년께부터 재팬 삼성 과장의 예언이 헛것이라는 기운이 보이기 시작했다.

LG 텔레비전이 세계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에니콜을 사와 한국제가 좋다며 자랑하는 일본인을 가끔 보기 시작한 때도 이 무렵이다. 이제는 '조지루시'(코끼리표 밥솥)를 사달라는 이상한 한국인들은 사라졌다. 한국인 여행 코스에서 이케부크로 전자상가는 개별코스로 제외되기 시작했다. 일본과 한국의 국가 경제 차이는 급격히 줄었다. 1960년대 30배 차이에서 최근에 10배 이내로 그 차이는 줄어들었다. 심지어 일본이 자랑했던 반도체 기술을 한국이 넘어섰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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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원 선거 첫 유세 나선 아베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사진은 지난 4일 참의원 선거가 고시된 가운데 후쿠시마(福島)현 후쿠시마시에서 첫 유세에 나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 교도 제공

 
2019년 며칠 전, 아베의 보복을 보고, 며칠간 속이 좋지 않았다. 일본에 가서 한국문학을 알리고, 한국에서는 일본 문화와 문학을 알려온 내 말문이 닫혔다.

내 나라와 우리 이웃 일본인을 나는 사랑한다.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 수업을 들었던 일본인 학생들과 일본인 지인들이 떠오른다. 식민지 시절에도 그랬지만 너무도 착한 일본인들이 피해자다.

아쉽지만 일본 문학 강연을 중단 혹은 취소하고, 40여 명이 가려했던 일본 문학기행 계획도 취소하겠다고 연락했다. 이틀이 지나도 편치 않다. 어찌 이리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지, 어리석은 아베 탓에 일본 이미지며 일본인들이 피해를 입는다. 

일제식민지가 끝난 듯 하지만, 이승만 정권 이후 친일 권력들이 계속 빌붙어 끊임없이 아베식의 부패한 일본 정권과 손을 잡고 식민지 유제를 온존시켜 왔다. 박근혜 정권이 해온 위안부 협정 같은 일들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 떠올리게 하는 더러운 협착이다.

아베의 보복은 방법이 옳았을까.

이상한 보복이다. 한국 물건을 안 사는 보복이 아니라, 내(일본)가 갖고 있는 것을 팔지 않겠다고 한다. 황당한 보복이다. 그러면 팔지 못하는 일본 회사들, 공장 가동을 멈춘다. 그러면 코스트(비용)가 엄청 올라간다. 일본 기업의 피해를 아베가 감당할 것인가(관련 기사 : <중앙일보> "한국 반도체 넉 달은 버티지만, 더 끌면 일본도 치명상").

한국 반도체 넉 달은 버티지만, 일본 공급 회사들도 어려움을 겪는단다. 다만 치명상은 아니라고 한다. 마치 가미카제 특공대가 자기 몸을 죽여 적을 해하려 했던 방법이랄까(관련 기사 : <머니투데이> 일본 '반도체 가미카제' 도발... 한국 피해 270배 "급소 맞았다"). 일본 측의 피해를 예상하고 한국에 치명상을 입히려는 전략이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적 차이는 줄고 있다. 남북이 가까와지는 것을 축하할 수 없는 아베다. <아사히신문>도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가 소재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탈일본화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이니치신문>도 "한국이 단기적으로는 다른 곳에서 소재를 조달하려 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국산화를 통해 탈일본화에 나설 것이고, 결국 일본의 기술적 우위가 무너질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자원이라면 모르나 '소재'이기에 더 문제다. 석유나 광물질 같은 자원은 안 주고 땅 속에 묻혀두면 그만이지만, 소재는 안 주고 두면 낡기 시작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국에서 이미 대체소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리 산업의 고질적인 약점인 토대를 보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건 시간 싸움이다. 일본쪽은 한국 외에도 판로가 있다. 우리는 구입처가 일본으로 한정돼 있다. 일본 의존도가 90%에 가까운 한국 반도체 산업이 대체 소재를 마련할 수 있을까. 

<아사히신문>이 말한 한국 기업의 탈일본화, <마이니치신문>가 말한 일본의 기술적 우위 붕괴는 정확한 판단이다. 두 신문은 진보나 중도적 신문 같지만, 정말 일본을 사랑하는 애국신문이다. 이 신문의 지적이 맞다. <아사히> <교토> <니혼케이자이 신문> <지지통신> 등 무시할 수 없는 신문들 사설에서 아베의 조치를 철회하라고 했다. 

이번에 한국 기업은 일본을 협력자가 아닌 리스크로 처음 체험했다. 현재 판국은 아베가 한국에 보호무역을 보장해준 꼴이다. 한국은 미국·북한·중국 그리고 베트남 등 남방과 더욱 활발한 무역 개척을 할 것이다. 남북이 통일이라도 된다면, 아베의 내면은 무너질지 모른다. 게다가 러시아가 소재를 공급하겠다고 나섰다(관련 기사 : <한겨레> [단독] "러시아, 일 규제 불화수소 한국에 공급 제안").

경제 보복을 했지만 아베 정권 지지율은 2%P 떨어졌다. 5%P 떨어져도 아베는 눈깜짝 하지 않을만치 자민당의 성곽은 거뜬하다. 언론도 장악한 아베 정권의 일본은 취업률 100%의 '멋진 신세계'다.

이번 참의원 선거는 아베 정권과 부실한 민주세력의 일본말로 진검승부가 되겠다. 일본 측 손해가 적다 하더라도, 한일 모두 상처를 입으면, 가장 좋은 것은 중국뿐이다. 아베의 헛된 욕망으로 일본은 소재-한국은 생산으로 협동해온 '한일 반도체 트러스트'는 무너지고, 중국만 이익을 챙긴다(관련 기사 : <머니투데이> 일본 교수 조언 "한·일 반도체갈등, 승자는 중국인 이유는…"). 아베는 단순히 참의원 선거 승리를 넘어, 미국 중국에 이어 한국에 밀릴 것도 불안한 상황이다. 그 큰 구도에서 이번 일이 생겼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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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반도체 핵심소재 등의 수출을 규제하는 사실상의 경제보복 조치를 내리자 국내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일 서울 한 마트에서 직원이 일본 맥주, 담배, 식품들을 진열대에서 빼내 반품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우리는 내년 총선까지 1년은 다시 허리끈을 조여야 할 시기다.

안으로는 친일구조를 온존시켜온 적폐세력을 제거하고, 밖으로는 우리 경제를 식민구조에서 독립시켜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20여 년 전 재팬 삼성 과장이라면 '헛된 공상'이라 할 수도 있겠다. 예전에 한국 기업들이 불가능하다던 일을 10년 만에 극복했듯이, 이번에도 통쾌하게 극복하리라 응원하고 기대한다.  

나 같은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뻔하다고 외면받을 두 가지 기본 자세다.

첫째는 금 모으기 기적을 일으켰던 우리 국민이 힘을 모으리라 기대한다. 그저 집중해서 우리 옷, 우리 상품, 우리 자동차를 구매하자. 일본에 살 때 아는 분들이 빌려줘서 닛산도 도요타도 고급 벤즈도 몰아봤다. 전문가가 아니라 그런지, 우리차가 일제차나 외제차에 비교해 떨어진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오사카에서  큐슈까지 도요타를 몬 적이 있다. 차 주인이 도요타가 세계 최고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시승감이 우리차와 별 차이 없었다. '한국차도 좋아요'라고 하려다 싱거운 대답을 그냥 삼켰다. 일본에서 살면 일본차가, 한국에서는 한국차가 최고다. 우리 차를 몰면 컴퓨터에 모든 기록이 남아 전국 어디서든 똑같이 점검 받을 수 있다.  

둘째는 일본의 민주시민들과 연대하고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 "윤동주 시인의 저항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에서는 현재의 문제입니다"라고 했던 일본 시인의 말을 잊을 수 없다.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시민들과 더 자주 대화해야 한다. 아베 지지율을 낮출 수 있는 일본 평화시민들과 연대해야 한다. 일본인들과 대화를 외면하지 말고 오히려 기회로 삼아야 한다. 

아베가 원하는 길을 가든 말든, 우리는 당연히 우리 길을 가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지혜를 발휘하고 다시 한번 지난 20여 년의 기적을 일으키기를, 진정한 경제 독립까지 이루기를, 불가능에서 가능을 만들길 기도한다.

우리는 또 한 번 도약할 기회를 잡았다. 아베의 선택이 실수로, 아베가 한국에 기회를 줬다고 역사가가 기록하기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글쓴이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을 수정·보완해 <오마이뉴스>에 보내온 것임을 밝힙니다.
#아베 #반도체 #일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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