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구름다리 위에서 공연을

[신선을 만나고 미륵을 찾으러 가는 길 ⑧] 못 다한 이야기

등록 2019.07.06 16:24수정 2019.07.0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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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교 구름다리에서 펼쳐진 선녀들의 춤사위
 

남천교 구름다리 ⓒ 이상기

  
신선거 산행에서 연하협을 올라 인연도를 따라가면 남천교에 이르게 된다. 남천교는 신선거의 북쪽과 남쪽을 연결하는 길이 120m 높이 100m의 구름다리다. 그런데 이곳에서 한국과 중국의 전통공연팀이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그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왔기 때문에 일반 등산객보다 훨씬 빨리 남천교에 도착한 것이다. 중국팀은 다리 북쪽에서 긴소매를 활용한 전통춤을 보여준다. 한국팀은 남쪽에서 전통북춤을 보여준다.

높고 깊은 산속에서 울려 퍼지는 북소리와 몸놀림이 마치 선녀들이 노니는 것 같다. 그동안 등산객들은 다리 양옆에서 이들의 공연을 관람한다. 다리 양쪽에는 찻집도 있어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공연을 보는 사람들도 있다. 구름다리는 요즘식의 철제다리가 아니다. 나무로 판을 만들고, 밧줄로 양쪽을 연결한 진정한 구름다리다. 그러므로 건널 때 약간의 흔들림이 있다.
 

관음봉(천주암) ⓒ 이상기

  
구름다리를 건너며 눈에 들어오는 우뚝 솟은 암봉이 있다. 관음봉이다. 남해관음이 두 손을 합장하고 염불을 하며 망망대해에서 중생을 이끌고 가는 모습이라고 한다. 높이가 919m 정도지만 운해 가운데 뾰족하게 솟아 더 높은 느낌을 준다. '하나의 기둥이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一柱擎天)' 것 같다고 해서 천주암(天柱巖)이라 불리기도 한다. 남천교 남쪽에는 무위도(無爲道)와 비응도(飛鷹道)가 있어 이 길을 잠시 돌아볼 수도 있다.


그리고는 걸어서 또는 케이블카를 타고 신선거경구 남쪽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다. 우리는 올라갈 때 걸어갔으니 내려갈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가기로 한다. 10분도 안 되어 남천케이블카 정거장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다시 걸어 신선거경구 남쪽입구로 내려가야 한다. 목적지에 거의 이르러 '이태백이 꿈에 보았던 장소(太白夢游處)'를 보게 된다. 실제라기보다는 후대에 설정해 놓은 곳이다. 입구에 도착하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백정도 회개하면 성불할 수 있다
 

선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백정 ⓒ 이상기

  
설두산 천장암 폭포는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나서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 그것은 궤도열차와 케이블카를 이용해 폭포 위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천장암 폭포 위에는 '방하도도입지성불(放下屠刀立地成佛)'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도살용 칼을 버리면 그 자리에서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옆에는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 동상을 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사연이 설두산의 미천한 중(小僧) 때문이라고 한다.

옛날 설두사에 게으른 스님이 하나 있었다. 그는 아침 일찍 잠을 깨우는 지렁이 울음소리가 싫어 뜨거운 물로 그를 죽였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방장스님은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계율을 어긴 스님을 절벽 위에서 그 아래 깊은 못으로 뛰어내리도록 했다. 스님은 겁을 먹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때 그곳을 지나던 백정이 이 광경을 보고는 사연을 물었다. 얘기를 듣고 난 백정은 자신이 수만 배나 더 많이 도살한 사실을 뉘우치고 대신 뛰어내릴 것을 자청한다.

백정은 도살용 칼을 버리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다. 선계의 학이 이 광경을 보고는 오색구름 가마를 타고 내려와 그를 하늘나라로 데리고 올라간다. 그곳에서 백정은 바로 부처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연 때문에 '도살용 칼을 버리는 순간 성불할 수 있다'는 말이 생겼다는 것이다. 요즘에 많이 쓰이는 말로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다.

서화관에서 최고의 글씨와 그림을 만나다
 

천일각 안내도: 왼쪽 아래 서화관이 있다. ⓒ 이상기

  
천일각 서화관은 남대문 쪽에 위치한다. 천일각 전체로 보면 서남쪽에 6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중심 되는 건물이 운재루(雲在樓)와 장원청(壯元廳)이다. 운재루는 명나라 때 강남가옥의 전형을 보여준다. 청나라 초 진조보(陳朝輔)의 장서루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건물 정면에 운재입묘(雲在入妙)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구름을 통해 신묘한 경지에 들어감을 표현했다.


산중에 구름 생기면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고 山中雲在意入妙
강위에 바람 불면 물결 일어 퇴적이 생긴다.  江上風生浪作堆


이곳 운재루에는 명청시대 석각과 금석문이 전시되어 있다. 천자문 석각이 눈에 띈다. 묘지명도 보인다. 명나라 풍방(豊坊)이 쓴 초서체 석판도 있다. 이곳에서는 또한 금석전각(金石篆刻)도 전시되었다고 한다. 2018년 발행된 금석전각 도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석각을 통해 글씨를 판화처럼 찍어내는 금석전각도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이다.
 

서화관의 인쇄문화 전시 ⓒ 이상기

  
장원청은 청나라 함풍 2년(1852) 장원을 한 장윤(章鋆: 1820-1875)의 집무실로 1861년 지어졌다. 1996년 이곳으로 이건되어 서화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특별전시로 '천일서연(天一書緣)'이 열리고 있다. '천일각이 보여주는 글과의 인연'이라는 주제로, 옛날 방식의 종이 만들기, 활자 인쇄, 훼손된 서적의 복구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 인쇄부분이 가장 볼거리가 많다. 그것은 목판과 석판으로 만들어진 책이 함께 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목판은 개개의 글자를 조판해 찍는 방식을 취한다. 제목이나 표제는 커다란 판에 여러 글자를 새기는 방식으로 만든다. 또 글자와 그림이 함께 들어가는 경우는 하나의 판에 그림과 글자를 새겨 넣는다. 목판 인쇄의 경우 먹이 사용되기 때문에 글씨나 그림이 검게 나타난다. 그러나 표지의 경우는 종이에 색을 넣는 경우도 있다. 또 글씨나 그림에 색을 넣어 인쇄할 수도 있다.

가이드는 표만 끊어주고 길만 안내하면 되나?
 

천일각 월호 경구 표지석 ⓒ 이상기

  
패키지여행을 하며 만나게 되는 가장 큰 불만이 자료집이 없다는 사실이다. 계획서만 있지 소책자나 자료집을 제공하는 여행사를 거의 보지 못했다. 이번 신선거 설두산 여행도 마찬가지다. 자료집을 제공하면 여행지의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에 대해 훨씬 더 많은 내용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너무 많이 알면 질문과 요구사항이 많아서 그런 걸까? 어떤 여행지에서 꼭 봐야할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이야기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현장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입장권을 개인에게 나눠주면 좋겠고, 지도나 팸플릿 또는 리플렛 정도는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료는 관광안내센터나 매표소에서 얼마든지 구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료가 없으니 현지 가이드만 따라다니는 안타까움이 있다. 차라리 만나는 시간을 얘기하고, 자료를 주어 자유여행 하는 방식도 괜찮을 듯하다.

천일각 여행에서는 정말 불만이 많았다. 현지 가이드가 중국전문 작가에게 설명을 일임하고, 개별적으로 천일각을 둘러보는 것을 꺼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사람이 천일각 입구 주변만을 맴돌고, 천일각 전체를 둘러본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왜 관광지의 백미를 보여주지 못하는가? 천일각은 동명초당과 북서고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 천일각까지 왔으면 옆의 월호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근처에도 가질 않았다. 산에 가서 신선을 만나고 절에 가서 미륵만 만나면 뭘 하나? 월호에서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호수, 정자, 누각, 물길과 언덕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옛날 사람들은 어떤 삶을 영위했을까? 현장을 봐야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 넓은 월호의 원림을 보기 위해서라도 한 번 더 와야겠다.
#남천교 #케이블카 #성불한 백정 #천일각 서화관 #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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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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