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물론이고 마작과 꽃가마까지... 도서관 맞나요

[신선을 만나고 미륵을 찾으러 가는 길 ⑦] 닝보 천일각

등록 2019.07.03 17:27수정 2019.07.0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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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흠에 대한 설명 ⓒ 이상기

 
닝보시 한복판에 있는 천일각

천일각은 닝보시 하이수구(海曙區)에 있다. 하이수구는 퐁화시에서 내려오는 퐁화강과 위야오(余姚)시에서 내려오는 위야오강이 합류하는 삼각지 안쪽 지역으로 과거 닝보의 구도심에 해당한다. 그 때문에 역사와 문화 그리고 종교유산들이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천봉탑(天封塔), 성황묘(城隍廟), 고루(鼓樓), 천녕사(天寧寺), 천일각, 월호(月湖)가 있다. 천일각은 명나라 중기에 만들어진 장서각이자 도서관이다. 2만6천㎡의 면적에 30여 채의 주요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천일각은 광장에서 차를 내린 다음 서대문을 통해 들어간다. 광장에 천일각과 월호를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월호는 북두하(北斗河)의 범람으로 인해 생겨난 자연호수다. 이곳에 고택, 누각, 정자 등 전통가옥과 정원 그리고 호수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천일각과 월호는 중점문물보호단위와 5A급 여유경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천일각은 북두하와 월호 사이에 위치한다. 천일각이 처음 지어진 것은 명나라 가정(嘉靖) 년간인 1561년부터 1566년까지다. 병부우시랑을 지낸 범흠(范欽)의 개인 장서루로 만들어졌다. 이 장서루의 이름은 동명초당(東明草堂)이었다. 범흠은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 살며 모은 책이 7만 권이 넘었다고 한다. 후손들에 의해 장서는 점점 늘어나게 되었고, 현재 천일각에는 경서, 사서, 시문집 등 30만 권이 넘는 고문서와 서적이 소장되어 있다.

동명초당에서 시작하다
 

동명초당 ⓒ 이상기

 
서대문을 지나면 천일각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대문에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글씨들이 있다. 편액과 주련이다. 문 위에 걸린 남국서성(南國西城)이라는 편액은 개성이 충만한 글씨다. 국화대사(國畵大師)로 불리는 판티엔쇼(潘天壽) 선생이 1962년 쓴 것이다. 여기서 국화대사는 동양화의 대가라는 뜻이다. 주련은 주랑의 바깥쪽과 안쪽 기둥에 걸려 있다.

바깥 주련은 상하이 도서관장을 지낸 구팅롱(顧廷龍)의 글씨다. 종정문(鐘鼎文)으로 천일각의 장구한 역사를 찬양했다. 여기서 종정문이란 갑골문자를 말한다. 원문은 천일유형원장수원(天一遺形源長垂遠) 남뢰심의장구유란(南雷深意藏久猶難)이다.
 
"천일각에 남겨진 자산은 그 연원이 길어 영원히 전해질 것이고, 남뢰 황종희(黃宗羲)의 깊은 뜻이 오랫동안 지켜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안쪽 주련은 1962년 궈모루(郭沫若)가 썼다. "좋은 일은 천년 향기가 나고(好事劉芳千古), 좋은 책은 온 세상에 전파된다(良書播惠九州)."

서대문을 들어가면 사방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이 나온다. 이곳에 범흠의 좌상과 부조벽화가 있다. 범흠은 천일각을 처음 만든 사람으로 호가 동명(東明)이다. 그 때문에 천일각이 처음에는 동명초당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좌상은 관(冠)을 쓰고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벽화에는 계산일마(溪山逸馬)라는 글자가 보인다.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곳에서 자유롭게 노는 말을 표현했다. 이제 우리는 천일각의 시초인 동명초당을 살펴본다.

동명초당은 서재 겸 장서각이다. 장서각의 옥호가 일오려(一吾廬)였던 것으로 보인다. 초당의 벽에는 어초경독(漁樵耕讀) 벽화가 해치(獬豸)가 표현되어 있다. 고기 잡고 나무하고 농사짓고 독서하는 산림거사 범흠의 일상을 표현한 것 같다. 해치는 용으로도 보이고 기린으로도 보이는 길상(吉祥)동물이다. 외적으로는 벽사(辟邪)를 내적으로는 정의의 구현을 상징한다. 동명초당은 1980년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되었다.


건물과 정원이 어우러진 천일각
 

천일각 정원 ⓒ 이상기

 
동명초당 북쪽으로는 북서고(北書庫)가, 동쪽으로는 천일각이 있다. 북서고는 말 그대로 북쪽에 있는 서고다. 이곳에는 오래된 서책들이 가득하다. 천일각은 천일각 경구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보서루(寶書樓)라고 불린다. 1566년 지어졌으며 증손자인 범광문(范光文)에 의해 1665년 정원이 들어서게 되었다. 정원에는 청나라 때 양식인 석가산과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이 때문에 천일각 원림이라 불리기도 한다. 천일각 원림은 풍수지리적으로 복(福)과 벼슬(祿) 그리고 장수(壽)를 추구했다.

1676년에는 범광섭(范光燮)이 대학자 황종희를 초빙해 장서를 서목(書目)에 따라 정리하고 <천일각장서기>를 쓰게 했다. 1773년 건륭제가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찬할 때 천일각의 장서가 저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천일각 안에는 범흠의 흉상이 있다. 그리고 벽에 천일각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천일각 뒤쪽으로는 존경각과 명주비림이 있다. 존경각은 3층 누각으로 1층에 공자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명주비림은 원나라 초부터 청나라 말까지 닝보부(寧波府)의 학교를 중수한 기록을 모아놓은 비석군이다.

천일각을 나오면 길은 자연스럽게 천진재(千晉齋), 백아정(白鵝亭), 응휘당(凝暉堂), 마장기원지(麻將起源地)로 이어진다. 천진재는 닝보 출신 학자 마렴(馬廉)이 수집한 천여 개의 진(晉)나라 벽돌조각을 보관 진열하는 공간이다. 백아정은 닝보 남쪽 조관산(祖關山)에 있던 제례용 정자로 1959년 이곳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백아정 앞에 있는 응휘당에는 장서와 함께 석판(石版)이 진열되어 있다.

중국 유일의 마작 전문전시관
 

마장기원지 진열관 ⓒ 이상기


마장기원지 진열관은 볼거리가 가장 많은 편이다. 그것은 서책이 아닌 마장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마작(麻雀)과 같은 말이다. 마장은 상아나 골패로 이루어진 136개 또는 144개의 패를 가지고 여러 모양의 짝을 만들어 승패를 결정 짓는 놀이다. 보통 네 사람이 놀이에 참여한다. 마작이 현재와 같은 놀이방식으로 굳어진 것은 청나라 때로 추정된다. 마작의 성립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는 청대 초기에 궁중의 학자들이 골패를 136개로 제정했다는 설이다. 136패는 자패(字牌: 28)와 서수패(序數牌: 108)로 이루어진다. 자패는 글자로, 서수패는 숫자로 표현된다.

다른 하나는 저장성 닝보 출신의 진사이자 풍류학자인 진정약(陳政鑰)이 마조(馬弔)를 중심으로 각종 골패놀이의 장점을 취해 144패의 놀이로 만들었다는 설이다. 북방의 136패에 화패(花牌) 8개를 더해 144패로 완성했다는 것이다. 화패는 춘하추동(春夏秋冬)과 매란국죽(梅蘭菊竹)으로 이루어진다. 현재는 두 번째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곳 마장진열관은 진정약(陳政鑰)의 종가집 사당인 덕화당(德和堂)과 평화당(平和堂)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진열관은 세 개 전시실로 나눠진다. 역사와 문화 전시관에는 중국식과 양식으로 나눠 마장의 발전과정이 소개되고 있다. 마장과 닝보 전시관에는 닝보가 중국 마장의 성지가 된 과정을 보여준다. 세계각지 마장패 전시관에는 유럽과 미국은 물론 일본과 월남의 마장패까지 전시되어 있다.

중국 사람들은 마장을 건전한 운동이자 취미이자 오락으로 생각하고 있다. 마장은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한가할 때 휴식을 취하며 즐기는 취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하면서 놀이를 하기 때문에 지적능력을 키워주는 훈련이라는 것이다. 마장은 바둑과 함께 중국의 국기(國技)로 여겨지고 있다. 중국사람들이 모이면 열에 아홉은 마작을 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다.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꽃가마와 사당 건물
 

닝보의 꽃가마 ⓒ 이상기

 
도서관 기능과는 약간 다른 건물이 화교청(花轎廳)과 진씨지사(秦氏支祠)다. 화교청은 꽃가마를 보관해 놓은 건물이다. 이곳의 꽃가마는 시집갈 때 타는 가마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것은 목재의 투조(透雕), 금박, 옷칠(朱漆), 화관장식 등이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화교는 닝보지역을 대표하는 꽃가마다. 높이 3m, 길이 1.5m, 폭 95㎝이다.

전설에 따르면 남송시대 소강왕(小康王) 조구(趙構)가 금(金)나라 군대에 쫓겨 닝보에 까지 오게 되었다. 다행히 닝보 처녀의 도움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소강왕은 이 처녀를 입궐시키게 되었고, 그때 타고 간 화려한 가마가 닝보 여인들이 시집갈 때 타는 꽃가마의 원형이 되었다고 한다. 가마는 크게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 앉는 부분이다. 중간이 허리부터 머리까지 감싸는 부분이다. 위가 화관을 덮는 부분이다. 외부의 화려한 장식과 그림 그리고 금박이 두드러진다.

진씨지사 역시 금박으로 장식한 화려한 건물이다. 목조각, 벽돌조각, 돌조각, 금박 등 전통공예기술이 집대성된 닝보건축의 백미다. 규모가 크고, 공예기술이 정교한데다 완벽하게 보존되어 건축물의 가치가 더욱 커졌다. 선조에게 제사지내는 용도로 지어졌으며, 조벽(照壁), 전청(前廳), 연극무대, 중청(中廳), 후루(後樓), 좌우상방(廂房), 화장(花墻), 배전(配殿)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부에서 볼 때 앞으로 드러난 2층 누각의 전청과 연극무대가 가장 두드러진다.
 

진씨지사의 화려한 궁륭 ⓒ 이상기

 
앞에 두 개의 편액이 있는데, 아래 것이 고명유구(高明悠久)고 위의 것이 허화실경(虛華實境)이다. 고명유구는 높고 밝으며 아득하고 오래됨을 말한다. <중용(中庸)>에 나오는 말로, 하늘과 땅의 도(天地之道)가 이에 해당한다. 해와 달 그리고 별은 높고 맑아야 하며, 만물은 유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삶도 이와 같아서 고명유구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 허화는 연극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고 실경은 실제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헛되고 화려해 보이는 연극의 세계가 실제의 세계라는 뜻이다.

연극무대 위로는 궁륭천정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다. 16개 나선이 굽이 돌며 천정을 향해 올라간다. 그리고 한 가운데 유리거울이 있다. 그리고 조벽과 화장에는 인물고사와 길상문양이 그려져 있다. 진씨지사가 완성된 것은 1925년이다. 당시 은전으로 20여만 위안이 들어갔다고 한다. 건축면적은 2000㎡나 된다.
#천일각 #범흠 #동명초당 #마장기원지 진열관 #진씨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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