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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애송이' 대통령 지진희, 그래도 기대하게 되는 이유

[리뷰] tvN 드라마 < 60일, 지정생존자 > 권력욕 없는 사람에게 권력을 준다면

19.07.03 18:53최종업데이트19.07.03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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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지정생존자>는 상당한 마니아층을 확보한, 유명한 작품이다. '지정생존자'(Desinated surviver)란 미국 대통령, 부통령, 정부 각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취임식,국정연설 등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비상 사태에 대비해 안전시설 내에 대기하고 있는 미국 대통령 계승순위 내 지정된 한 명을 뜻한다. 지정생존자는 자연 재해, 테러, 핵 공격 등으로 대통령 및 대통령 계승자가 사망하는 비상 사태 때 대통령직을 계승해 정부를 유지하도록 하는 안전 장치인 셈이다.

원작 <지정생존자>에서는 좌천 당해 텔레비전으로 신년 국정연설을 보고 있었던, 대통령 계승 가능자 18명 중 13위인 주택도시 개발부 장관 톰 커크먼(키퍼 서덜랜드)이 주인공이다. 미국 의회의사당에 폭탄 테러가 발생해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관료 대부분이 사망하면서 그는 대통령이 된다.

그렇다면 한국판 <지정생존자>는 어떨까. 미국 드라마 원작과는 달리, 앞에 60일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는 미국 헌법과 달리, 우리 헌법은 대통령 유고시 60일 이내에 새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택도시 개발부 장관은 우리나라에서 환경부 장관이 됐다.

'이상주의자' 박무진 대통령 권한대행
 

tvN 드라마 < 60일, 지정생존자 > 포스터 ⓒ tvN


지난 1일 첫 방송된 tvN 새 월화 드라마 < 60일, 지정생존자 >에서는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 출신의 박무진(지진희) 환경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르는 모습이 그려졌다.

환경과학회 미세먼지 분과에 소속된 그는 학자 출신 환경부 장관으로서 대기오염 문제 해결에 대한 사명감으로 입각했다. 그러나 그의 소신은 '정치' 앞에서 무력했다. 미국과의 자동차 협상에 임한 박무진은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면 몇백 대가 아니라 몇백만 대를 허용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하며 "우리 대기에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유로 협상을 반대한다. 그러나 "못 이기는 척 봐 주라"는 대통령 앞에 결국 사직서를 내밀게 된다.

그는 임명식에서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던 불편한 구두를 벗어놓은 채 홀가분하게 자신이 몸 담았던 대학이름이 쓰인 후드 티셔츠에 편한 스니커즈를 신고 아들 딸을 데리러 간다. 그리고 그 길에서 국회의사당의 폭발 사고를 목격한다. 국회로 견학 간 딸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던 그는 자신을 데리러 온 의문의 사내들에게 청와대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자신이 60일 시한부 대통령 권한대행에 올랐음을 알게 된다.

시한이 정해진 대통령 권한대행, 하지만 원작과 다른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자국 내 정치세력간 다툼에 끼인, 힘 없는 대통령이라는 설정으로 갈등을 증폭시킨다. 반면 한국판에서는 강대국이자 '우방' 미국과 남북 관계라는, 우리나라만의 고민을 이용해 갈등을 만들어낸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역학 관계에 의거한 갈등 구도 
 

tvN 드라마 < 60일, 지정생존자 > 포스터 ⓒ tvN

 
앞서 국회의사당에서 사망한 양진만(김갑수) 대통령은 북한과의 평화협정을 목전에 둔 채 사고를 당한다. 그러나 평화협정을 추진했던 대통령이 사라진 상황, 한주승(허준호) 비서실장 등 측근들은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고 싶어한다. 설상가상 북한잠수함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군부와 국정원 실세들은 '북한 위협론'을 내세우며 선제 공격을 주장하고 위기를 증폭시키려 한다. 무엇보다 '데프콘'(방위준비태세)을 강요하며 전시 작전권을 들고 나선 미국의 존재는 강력하다. 

박무진은 국가안전보장 회의의 긴박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채 화장실로 뛰쳐나와 구토를 한다. 그는 스스로 자격이 없다며 사퇴를 하겠다고 하지만, 한주승 비서실장은 "모든 일은 나를 비롯한 기존의 비서실팀이 할 테니", "위기 상황에서 정부 붕괴를 막는 시민의 자격으로 권한 대행 자리를 지키라"고 말한다. 결국 그를 정치 경험 6개월짜리 애송이로 취급하는 것은 미국이나 우리나라 군부나 죽은 대통령의 수족이나 모두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하지만 '선무당' 박무진은 앞서 미국 협상단에게 미세먼지 패트병을 뒤집어 씌워 국민들의 속을 뚫어줬던 그 '방식'으로 북한 잠수함 해프닝을 해결한다. 정치적인 요구에 사직서를 내밀만큼 원칙을 중요시했던 환경학자는, 각자의 정치적 입장만 내세우는 북한 잠수함 사건에 대해서도 원칙을 놓지 않는다. 그는 '데이터'에 의거한 추적으로 잠수함의 침몰을 예견하고 딸의 생사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북한을 설득한다.

즉 < 60일, 지정생존자 >는 격돌하는 청와대, 군부, 미국 등 여러 정치 세력들 사이에서 박무진이 그의 학자적 양심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한주승이 말한 시민의 입장을 모두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과정을 그린다.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원칙을 지키는 인물,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는 캐릭터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돼 풀어가는 원칙의 정치다. 또한 권력욕이 없는 사람이 풀어가는 권력의 이야기이자, 가장 기본이지만 막상 현실로 오면 늘 가장 먼저 배제되는 그 '원칙'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첫 회 시청률 3.4%(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 이튿날 4.2%를 기록한 < 60일, 지정생존자 >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첫 방송에서 CG를 활용한 국회의사당 폭발 사고로 시선몰이가 약했던 것일까? 그도 아니면 박무진 캐릭터 혹은 양진만 대통령의 처지가 시청자들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는 이미 선점한 <검법남녀> 등 경쟁 드라마의 분전 때문일까.

하지만 예단은 이르다. 박무진이 청와대에 입성하기까지는 다소 이야기가 늘어진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2회에서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어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다리에 쥐가 나도록 북한 잠수함 사건을 해결하는 등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로 집중도를 높였다. 과연 '애송이' 권한대행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을지. 또 < 60일, 지정생존자 >도 최근 지지부진한 tvN 드라마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60일, 지정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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