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5일 검찰의 추가 기소를 끝으로 사법농단에 가담한 법관 14명이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이 공판 준비를 거쳐 5월 29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는 '외관상 공정성' 확보와 공정한 재판을 위해 특별재판부 설치를 주장해왔지만, 국회에서 논의가 제대로 되지 못한 채 사법농단 가담자들의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민변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TF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두눈부릅 사법농단재판 시민방청단'(애칭 부릅단)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 1심 동안 운영합니다. 시민방청단은 함께 근무했던 법관이 전·현직 법관을 재판해야 하는 상황에서 '셀프재판' '제 식구 감싸기 재판'이 되지 않도록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입니다.
시민방청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전·현직 법관들에 대한 재판을 현직 법관들이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모든 재판을 방청하기 어렵더라도 증인신문이 있거나 중요한 사안에 대한 실체규명이 이뤄질 때 월 1~2회 출동합니다. 그리고 재판장의 모습을 시민의 눈으로 기록하고 소회를 나누고자 합니다. 6월 21일 두번째 부릅단 활동은 부릅단 유효송씨가 소개합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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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농단' 첫 재판 출석하는 양승태, 박병대, 고영한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 개입 등 '사법농단' 피고인 (왼쪽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이 5월 29일 오전 첫 재판을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논의하다 보면 새로운 요소가 있을 수 있으니 하루만 늦춰주시면..."
6월 21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311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농단의 핵심 인사들이 모두 모인 법정에서 재판은 관록 있어 보이는 변호인의 호소로 시작됐다. 변호인석 뒤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 자리했다. 방청석에는 사법 농단 재판을 시민의 눈으로 감시하겠다고 모인 '두눈부릅 사법농단재판 시민방청단'도 있었다. 20대 청년부터 평범해 보이는 중년의 시민들과 주름이 깊게 자리 잡은 노인들까지. 모두가 재판을 직접 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법정에 모였다.
이날도 역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SB 증거능력을 확인하는 공방이 이어졌다.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출력물과 문건들의 파일이 같은지를 놓고 지난한 검증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USB 압수가 적법한지에 대한 의견서 제출 일자를 미뤄달라 요청했다.
증거의 '동일성과 무결성'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 오전 내내 이어졌다. 검찰은 4차례 기일 동안 증거의 5%를 검증하는데 그쳤다며 모든 문서를 다 검증하려면 80차례, 40주가 소모될 것이라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문건의 폰트나 페이지 숫자 등을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이 몇 회 동안 반복됐기 때문이다.
서증설명서도 문제였다. 설명서에 변호인측이 동의하지 않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자 검찰도 곧바로 반박했다. 1000여 개의 파일을 대조해 확인하는 검증절차를 반복하다 재판부는 점심 식사를 위해 휴정했다.
일반 시민의 눈으로 지켜본 양승태 사법 농단 재판은 시민과 권력자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깨닫게 해줬다. 재판 내내 양 전 대법원장은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로 의자를 뒤로 젖힌 상태였다. 검찰과 재판부가 간간이 시민 방청단을 쳐다보는 것과 달리 2시간 동안 이어진 오전 재판 동안 한 번도 방청객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방청석과 재판장 사이를 가로막은 작은 문이 절대 넘을 수 없는 금기의 선처럼 느껴졌다. 전직 대법원장의 위력이 유효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심정은 처참했다. 엄중한 재판 과정에서 누가 양 전 대법원장과 같은 자세를 할 수 있겠는지 의구심마저 들었다.
형사소송의 원칙상 피고인의 방어권과 증거의 효력을 입증하는 과정은 인정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일반 시민의 감정과 괴리 됐을 때가 문제다. 양승태의 구속 기간 만료인 8월을 앞두고 고의로 재판을 지연시키는 것 아니냐는 시민들의 비판이 거센 상황이다.
검찰을 향해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반박하고 상상력과 창의력이라는 그의 말이 과연 힘없는 일반 시민의 입에서도 나올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역시 씁쓸하다. 재판을 방청하러 온 사람 중 한 할머니는 자신을 암 환자라 소개했다.
"나는 법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냥 보고 싶어서. 내 아들 딸들, 그리고 미래를 위해 여기 나왔어요."
법률 용어와 재판 절차도 모르는 시민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맞서기 위해 힘든 몸을 이끌고 모였다. 오전 재판이 끝난 후 양승태는 분노하는 시민들과 상반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법정을 떠났다.
한 손에 칼을,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 '디케'는 법원이 정의로움과 엄정함을 지켜야만 한다는 숙명을 드러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스스로 눈을 가린 디케의 안대를 벗어 던진 결과로 재판을 받게 됐다. 그러나 평범한 다수의 국민이 느끼기에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는 점이다.
선출되지 않는 권력인 법원은 시민의 힘을 느끼기엔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참여연대와 민변이 진행하는 두눈부릅 방청단의 목적은 깨어있는 국민의 시선을 재판부와 검찰, 양승태를 비롯한 피고인과 변호인단이 느끼도록 하는 데 있다.
이미 깨져버린 사법부의 신뢰는 국민의 참여를 통해 되돌릴 수 있다. 재판부가 스스로 눈을 가리지 못할 때 시민의 힘으로 감시할 방법은 오로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것뿐이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법치사회의 대전제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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