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림새는 거지같이, 먹는 것은 귀족같이'

'농부에게 길을 묻다'를 읽고

등록 2019.06.04 08:29수정 2019.06.0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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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에게 길을 묻다>는 사회적협동조합 파머스쿱(Farmer's Coop) 생산자들의 농사짓는 이야기입니다.

아이쿱, 한살림, 두레 등이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라면 파머스쿱은 농부들의 생산자협동조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친환경 유기농식품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먹어 왔고 또 먹이며 살아오고 있지만, 농부들의 농사법에 큰 관심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믿는다고나 할까요? 평소 티비 광고를 보며 아이들의 장난감에 유해성분이 검출되지 않은 안전한 제품이라고 하면 그런가보다 하며, 식품 광고에서 몸에 좋은 것만 담았다고 하면 그러가보다 하며 믿어 왔습니다. 꼼꼼히 따져보지는 않던 나이기에 친환경 유기농 식품이라고 하면 그냥 그렇게 믿었습니다.

결혼 전부터 우유와 계란만은 좋은 걸 먹어야 한단 생각에, 친정엄마와 경쟁적으로 장을 봐 왔습니다. 엄마는 시장 혹은 슈퍼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저렴하고, 그 당시 신선한 계란의 기준이었던 닭똥과 흙이 잔뜩 묻은 계란(사람의 손이 많이 닿은 계란은 맨들맨들하게 깨끗해진 것이고, 흙과 닭똥이 잔뜩 묻은 계란이 신선한 계란이라고 이야기 할 때였다)을 사셨습니다. 반면 나는 유기농 매장에서 비싼 돈을 주고 유정란을 사와서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엄마는 기가 차다는 식으로 보아 넘기셨지만 다행히 우유에 대한 기준은 비슷했는지 좋은 우유를 마시고 자랐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뱃속에 아이가 생기자 오로지 나와 아이를 위한 유정란, 유기농 우유를 꼬박꼬박 먹어왔지요. 그렇다고 다른 음식 혹은 식재료에 특별한 관심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계란과 우유만 유난히 그랬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젠 먹을거리는 물론이고 생활 전반의 거의 모든 것들을 유기농 매장에서 장을 보고, 공정무역 물품을 이용합니다. 여러가지 화학물질로부터 안정성이 검증된 생활용품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농부에게 길을 묻다 - 파머스쿱이 가꾸는 유기농의 사계절. ⓒ 아이들은자연이다

 
그 가운데 읽게 된 <농부에게 길을 묻다>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계절별로 생산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직파(씨를 바로 뿌림)의 문제점을 보완한 육묘(모판에 씨를 심어 어린 모종을 키움)부터 친환경 유기농을 고집하기 위한 자가육묘,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파머스쿱에서 직접 관리하는 구례의 친환경 육묘장 이야기, 생산자들이 농약,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해충으로부터 안전한 친환경 유기농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천적농법, 리그닌이 풍부한 목질퇴비, 풀이 함께 자라는 초생재배 이야기 그리고 유기농법의 가장 기본이 되는 땅, 땅을 살리는 이야기가 여러 생산자들의 입을 빌려 반복됩니다.
 

잡초와 함께 자라는 생산자의 배 밭 제초제 대신 초생재배를 선택한 생산자들. ⓒ 손경은

  

참외밭에는 참외밭에는 진딧물을 잡기 위해 보리가 자라고 있고, 참외 잎에는 천적인 애꽃노린재와 메밀을 두어 응애나 온실가루이를 잡는다. ⓒ 손경은

 
한참 읽다보니 자꾸만 반복되는 리그닌, 리그닌이 정말 중요한 것 같은데... 저것만 있음 다 될 것 같은데... 저걸 어떻게 내가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웃으며 해보았습니다. 리그닌은 섬유질의 일종으로 식물체의 잎, 가지, 뿌리 등에 함유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물질이 오랜 기간 자연의 순환과정을 통해 땅속에 묻히면서 흙은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유기물이 풍부한 땅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결국 리그닌이 풍부한 땅에서 자란 작물을 제가 먹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생산자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감동스럽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농사 짓던 땅을 물려받아 여유가 있어 보이는 생산자가 있는 반면, 어렵게 시작해 여러 고비를 넘기며 자리를 잡아가는 생산자도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열거하는 것보단 직접 읽어보길 권합니다.

그 가운데 꼭 함께 나누고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충청남도 천안의 선림농원에서 유기농 배를 키우는 김근호 생산자의 이야기 중 일부입니다.
 
김근호 생산자는 늘 체크무늬 셔츠에 등산화 차림입니다. 언제라도 가장 좋아하는 나무들이 있는 과수원에서 일할 수 있는 복장입니다. '차림새는 거지같이! 먹는 것은 귀족같이'라는 인생철학을 가질 정도로 겉모습보다는 내 몸을 만들 음식을 중히 여깁니다. 흙 묻은 발로 청와대며, 관공서며 어디든지 누빕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시선보다는 자신의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지왕자'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누추한 차림새라고 할지라도 남에게 해가 되지 않을 행동만 하면 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먹는 것만은 다릅니다. 어릴 적 수입 밀가루 음식에 혼이 난 후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수입 밀가루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지금도 김근호 생산자의 식탁에는 일년 내내 김치 몇 쪽, 몇 년 묵은 된장 한 숟갈, 쫑쫑 썰어 놓은 달래, 이런 음식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귀족도 먹어보기 힘든 특별한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은 밤 책을 읽으며, '차림새는 거지같이! 먹는 것은 귀족같이' 이 문구만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떠오르는 표현이 있어 검색을 해보니 책 제목이었습니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 아직 읽어보지도 못한 책이지만요. 

내가 그렇습니다. 비록 차림새는 거지 같을지언정, 먹는 것은 귀족 같이 먹어왔습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나가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 아니 나는 이미 너무 눈에 보이는 것만에 집착하고 보이기 위해 살아왔고, 보이는 것만으로 상대방을 판단해 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비싼 옷, 명품 가방으로 나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지구를 살리는 건강한 먹을거리로 건강하게 자라는 나 그리고 내 아이. 이들의 의식을 채우고 있는 환경을 생각하며 실천하는 생활습관, 미세먼지를 피하기 위해 비싼 공기청정기를 구입하는 것이 아닌 일회용품을 줄이고, 쓰레기를 줄이는 생활습관. 당장의 내 입에 착 감기는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음식을 먹는 것이 진짜 '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려 노력하고, 음식은 절대 남기지 말아야 하며,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돈이 많다고 해서 네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누가 내 옷차림을 보고 거지같다고 한들, 그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게, 나를 귀족으로 만드는 것은 내가 먹는 것이라고 나에게 이야기합니다.

좋은 차, 비싼 옷, 명품가방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내 아이에게 물려줄 돈도 없습니다. 내 아이에게 물려줄 돈이 없기에 더욱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돈보다 건강한 몸, 건강한 마음, 맑은 하늘, 깨끗한 공기, 올바른 생활습관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시작부터가, 내가 명품으로 내 몸을 휘감지 못하기에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하게 된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책을 읽고, “참 좋다. 정말 좋다..”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책을 누구에게 쥐어준들 읽기는 할까? 읽은들 노력하는 생산자들의 수고를 과연 얼마나 이해할까? 생산자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괜한 걱정에, 단 한명이라도 더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부족하지만 후기를 적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농부에게 길을 묻다 - 파머스쿱이 가꾸는 유기농의 사계절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지은이), 사회적협동조합 파머스쿱 (기획),
아자(아이들은자연이다), 2018


#농부에게 길을 묻다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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