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구슬 찬 소방관들이 보여준 충격, 자괴감은 여전하다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4] 지방 소방조직 열악함, 예산 문제 아냐

등록 2019.05.20 16:04수정 2019.06.1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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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공무원 처우개선이 어떻게 해서 소방조직 국가직전환으로 이어졌을까? 그리고 그 방식은 지금 추진되고 있는 신분과 예산의 반쪽짜리 독립이 아닌 소방조직과 업무의 온전한 독립의 소방조직 국가직전환 주장으로 발전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이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119 거사 2007년 11월 9일 서울종합청사 앞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 고진영

 
2007년 11월 9일 45회 소방의 날 서울정부종합청사 앞에서 '119거사'라는 집회가 있었다. 두 명의 소방관이 발목에 쇠구슬을 차고 거드름을 피우며 앞서 걷는 사람을 뒤따르고 있다. 소방관들의 등에는 '현대판 노예'라 쓰여있었고 앞서 걷는 사람 등엔 '행정자치부'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랬다. 2007년 소방관들은 자신을 "현대판 노예"라고 불렀다. 그들의 주장은 과장됐을까. 2007년 당시 기준 한 해 평균 9.8명이 순직하고 공상자 302명 발생했다. 현장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개인장비는 자신들이 사서 써야 했다. 철물점에서 쉽게 사 쓸 수 있는 농업용 고무장갑을 낀 채 자신의 목숨을 걸고 화재 현장에 뛰어들었다. 

'나 홀로 소방관'이란 유행어를 낳기도 했던 소방관 혼자 근무하는 지역대는 전국 444개소나 되었다. 이로 인해 2008년 2월 26일에는 혼자 근무하다 화재진압에 나선 고 조동환 소방관이 순직했다. 소방관과 같은 제복근무자가 3교대를 실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방관들은 24시간 교대근무를 하고 있었고 휴일엔 각종 비번 활동으로 동원되어야 했다. 

이렇게 일했음에도 소방관들은 초과근무 수당조차 받지 못했다. 결국 2009년 소방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임용권자인 각 시·도지사를 상대로 전국 5000억 원이 넘게 지급되지 못한 수당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시작했다. 10년이 지난 2019년 지금도 이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진행 중이다. 자신을 스스로 "현대판 노예"라고 칭해야만 했던 소방관들의 자괴감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이자 생존권을 보장받고자 했다.

외면에 비하까지... 소방관들의 요구는 방치됐다

이러한 상황이 될 때까지 당사자인 소방관과 정부,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시·도지사는 무엇을 했을까. 우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소방관들이 나섰다. 노조는 물론 및 직장협의회조차 설립 운영하지 못하는 소방관들은 궁여지책으로 2006년 5월 '소방발전협의회'라는 동회를 만들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소방인력확충, 3교대 실시, 소방직장협의회 설립 허용, 국가 예산의 특별교부세 지원 등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방관들의 노력에 정부 기관과 시·도지사의 반응은 어땠을까. 한마디로 '소 귀에 경 읽기'였다. 특히 시·도지사의 모르쇠는 더욱더 심했다. 부족한 예산이기는 하지만 소방공무원의 인력을 충원하라고 국가에서 내려보낸 인건비 예산을 타 용도로 전용하는 시도가 허다했다.


부산시는 2007년 총액인건비 소방공무원 충원 명분으로 지방교부세 400억 원(소방공무원 2000명)을 받고도 단 한 명의 소방공무원도 채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부산시청 한 공무원은 "사람만 늘려 3교대로 만들어 죽치고 가만히 놔두면 딴짓만 한단 말이에요"라는 발언으로 소방관들을 분노케 했다. 급기야 서울 김종열 소방관이 부산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2004년 부산시 소방관 비하발언 1인 시위 2004년 10월 소방관 충원 요구한 소방 "3교대 시켜주면 놀고 먹는다"는 부산시 발언에 분노한 소방관이 부산시청 앞 1인 시위를 벌였다. ⓒ 소방발전협의회 제공

 
이는 부산시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시도가 관행적으로 소방예산을 전용했다. 2004년 6월 소방방재청이 개청하고 5개년 계획으로 2008년부터 소방공무원 3교대 및 인력충원 명목으로 인건비를 내려보냈지만, 계획한 인원의 50% 수준에 머물고 나머지 예산은 어디에 사용됐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소방공무원의 3교대는 전국 소방공무원이 시·도지사를 상대로 밀린 초과근무수당 소송을 하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인력을 충원해줬다. 부족한 인력에서 충원 없이 3교대를 실시한 시도는 2개 근무팀 인력을 쪼개 3조 근무팀을 시행해 소방인력 부족 현상을 더욱 부추겼다. 

정부와 시·도지사가 소방을 방치하는 사이 애꿎은 소방관과 국민만 재난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해야 했다.

소방문제 핵심은 재정지원 아닌 국가직화
 

정부와 시·도지사가 소방을 방치하는 사이 애꿎은 소방관과 국민만?재난 현장에서?유명을 달리해야 했다. ⓒ 이희훈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은 16일 소방국가직화 법안소위에 자유한국당이 불참한 것을 두고 비난이 높아지자 "소방문제 핵심은 국가직화 아닌 재정지원"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국가 예산을 통한 지원을 늘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구조적인 시스템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로 현실을 전혀 모르는 공허한 언변에 불과하다.

소방국가직화의 핵심적인 사안은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적든 많든 국가가 내려보낸 소방예산을 타 용도로 전용하는 관행이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그런 관행이 자리한 것은 지방예산이 열악한 이유도 있지만 시·도지사의 인색한 예산 배정 등 안전불감증과 안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재한 것이 더욱 큰 이유다.

시·도지사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도 있다. 소방공무직의 예산은 일반행정부서인 예산과에서 쥐고 있다. 소방 업무에 해박하지 못한 부처가 예산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예산을 많이 지원해봤자 상황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소방관 자신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한 투쟁이 국가직전환이라는 요구로 나온 것은, 바로 지방조직이 안고 있는 근본적 시스템 문제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의 문제는 비단 예산뿐 아니라 소방업무 전반에 걸쳐 모두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따라서 소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방업무의 독립성이다.

[관련 기사]
소방관 국가직 전환, 한국당은 이러면 안 됩니다 http://omn.kr/1iqpc
현직 소방관들 1인 시위, 이렇게 시작됐다 http://omn.kr/1iqpg
③ 현장 소방공무원은 '국가직 전환'을 요구한 적이 없다 http://omn.kr/1j8ol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서대문소방서(전 소방발전협의회 회장) 소방관입니다.
#소방국가직 #소방관 #현대판노예 #소방관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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