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 사회... 인권도 거기에 휘둘려 진영논리"

[인터뷰]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 펴낸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등록 2019.05.20 09:42수정 2019.05.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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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우 성균관대 교수. 지난 3일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를 출간했다. ⓒ JWK

 
표현의 자유, 버스 파업, 국가안보와 양심적 병역 거부, 난민과 이주노동자 문제, 미투 운동과 여성인권, 범죄자 신상 공개, 직장 내 갑질 등 최근 우리 사회의 첨예한 이슈는 모두 '인권' 문제로 수렴된다. 모두들 인권을 말하고, 자기의 인권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에 대해 제대로 알고 말하는 이는 드물다. 자신의 권리를 소리높여 외치면서 타인과 갈등을 일으키거나 피해를 주는 경우도 흔하다. 

우리는 보통 인권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배타적인' 권리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자신의 인권을 주장하는 것에 스스럼이 없다. 학교에서 배운 이상적인 인권과 현실 사이의 괴리도 크다. 나의 존엄성이 존중받아야 하는 만큼 타인의 존엄성도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치·사회·문화 각 분야에서 날로 이전투구의 장이 돼 간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가 최근 펴낸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북스톤·320쪽)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이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성대 교수연구실에서 지난 10일 만난 구 교수는 "인권을 높이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이 중요하고, 내가 겪지 않은 상황에 대한 상상력이 중요하다"면서 "법이나 인권지식을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상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인권을 지키고 차별하는 행동이나 발언을 최대한 자제하는 등 일상 속에 '체화'가 돼야 하는데 그것까진 아직 안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지난 10여 년간 연구한 '인권사회학' 관련 주제들을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 속에 담아냈다. 그에 따르면, 책 속에서 '이기적' 인권과 '공존하는' 인권을 대비해 얘기하고자 했다.  

구 교수는 "인권을 둘러싼 다양한 입장들 이를테면 국민의 권리와 난민 권리, 채용과정에서 정당한 차별, 여성인권과 남성인권 등의 입장이 갈리고 있다"면서 "내 인권이 안녕하다고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자연스럽게 최신의 연구성과들, 엄정하게 실시된 여론조사 등을 통해 억지스럽지 않게 근거를 제시하면서 독자들이 다 안다고 생각했던 각 인권 이슈의 찬반을 스스로 판사가 돼서 판단하게끔 하고 싶었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이런 걸 보여줬을 때도 여전히 (이기적인) 인권을 옹호할 수 있는지 그런 문제 제기,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구 교수는 성균관대 인권과개발센터 소장과 SSK(한국연구재단)인권포럼 부단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2015~2016년 하버드대 교환교수를 지냈다. 2015년에 그가 만든 '인권감수성 테스트'(바로가기☞ http://humanrightstest.kr/)는 공개 일주일 만에 2만 명이, 2019년 현재까지 약 6만 명이 참여하는 등 관심이 높다. 테스트 결과를 수치화(100점 만점)해서 보여주고, 국가인권지수에 근거해 참가자의 인권의식에 맞는 나라를 함께 제시해주기 때문에 흥미롭다는 반응이 많다.       


구 교수는 소크라테스식 문답 수업으로 2017년 성균관대 SKKU 강의상을 수상했으며, 2018년엔 미국사회학회(ASA) 글로벌분과 운영위원으로 선출되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연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5월 초 출간된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는 인권감수성(인간의 권리를 존귀하게 여기는 감각)을 높이는 방안, 난민 문제, 범죄자 인권, 양심적 병역거부, 젠더 이슈와 여성인권, 소수자 인권, 표현의 자유, 장애인 인권, 소수인종 우대정책, 노동권, 직장 내 민주주의 등 시의성 높은 인권 현안을 폭넓게 다뤘다. 

그는 "우리 사회가 어느 때부턴가 경제적 양극화뿐 아니라 정치·사회·양성 이슈 등에서 인권을 수단 삼아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면서 서로 자기 입장만 내세워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면서 "완충지대가 필요하다는 걸 가장 강조하고 싶었다. 인권을 이념적으로 보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쪽으로 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책의 출간 목적은? 주 독자층은 누구로 잡았는가?
"2016년에 실시한 국민인권의식조사를 보면 80%가 인권에 대해 안다, 들어봤다고 답했다. 한국처럼 인권이란 단어가 자주 쓰이고 논쟁적으로 쓰이는 나라가 없다. 인권이라는 용어가 확산돼 있지만 자기 입장에서 인권이란 걸 쓰는 사람이 많다. 

책에서 예를 많이 든 게 젠더 문제다. 젠더 권력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성인권만 말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반대로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가부장제에 두고 여성운동에 남자들은 참여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이기적인 인권이다. 작년에 예멘 난민 문제 같은 경우도 그렇다. 그런 여러 사례가 있다. 다른 이들한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불편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생각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인권을 사용하는 적절치 못한 용례다. 

이렇게 이기적 인권과 공존하는 인권을 대비해서 얘기하고자 했다. 인권과 인권이 충돌하기도 하는데, 어떤 게 올바른 인권인가, 타인을 불편하게 하거나 차별을 일으키지 않나 (살펴보고자 했다). 또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인권을 안다, 옹호하고 지키려고 하고, 지식도 있는 분들이 읽길 바라며 썼다. 인권이 대학생들의 기본 윤리이자 규범, 생활의 원리다. 고등학생들도 책을 보면서 자기 입장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말을 쉽게 풀었기 때문에 고등학생들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책이다."  

-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단시간 내에 발전시켜왔지만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인권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특히 약자·소수자 인권과 관련해 그렇다. 인권감수성을 높이는 방법을 말해달라.  
"일상에서 상호작용을 할 때 말과 행동을 통해 '편견'이 전파된다. 법이나 인권지식을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서로 상호작용 가운데서 인권을 지키고 차별하는 행동이나 발언을 최대한 자제하는 등 일상 속에 '체화'가 돼야 하는데 그것까진 아직 안되는 것 같다. 인권을 일상에 뿌리내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인권감수성'이다. 

최근에 '성인지 감수성' 얘기가 많이 나온다. 양자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또 다른 것이 무조건 침해받는 사람 입장에서만 판단하는 게 인권감수성은 아니다. 노조에 참여할 권리와 경영자의 경영권이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병역 거부와 국가 안보가 부딪힌다. 국가 안보라는 이유로 어느 정도 기본권을 제한한 거다.

인권감수성이란 인권가치와 살아가는 데 중요한 가치를 편견없이 함께 고려하는 태도다. 내 인권도 중요하지만 타자의 인권도 중요하다고 하는 거다. 하나 더 덧붙이면 이성적 판단도 중요하다. 안보나 경제성장 가치와 대비시켜 놔도 그럼에도 인권이 정말로 중요한가, 그렇다, 그런 판단에 이를 수 있는 능력, 그것을 인권감수성이라고 말한다.

인권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첫 번째는 이성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 두 번째는 공감이다. 인권감수성이 이성적 활동과 유리돼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따뜻하다고 해서 인권이 좋아지는 게 아니다. 왜 내가 난민·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지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왜 이렇게 난민을 싫어하고, 자녀가 성소수자와 어울릴 걸 두려워하고 그 와중에도 그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지 누가 말해줘서 아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판단해서 중요하다고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양한 입장을 고려해서 성숙한 태도로 인권 존중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고, 한쪽으로 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균형과 완충지대를 만드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적 근거 마비시키는 이기적 인권이 있었던 것 같다"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나는 괜찮다고 여겼던 당신을 위한 인권사회학>. 인권사회학의 폭넓은 테마들을 관련 연구와 해외 사례, 여론조사 등을 통해 알기 쉽게 풀어냈다. ⓒ 북스톤

       
- 4년가량 직접 개발한 '인권감수성 테스트'를 운용해 보고 느낀 점이 있다면?
"젊은 세대가 인권에 관심이 많고, 네티즌이 열심히 참여했다. 처음 (공개했을 때) 일주일 만에 2만 명이 참가했다. 이후부터 일주일 평균 100명씩 참여했다. 최근 몇 년간은 일선 교사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첫째는 갑질 문제에 노출된 젊은층 사이에서 노동권 이슈가 부상하고 있고, 일자리 문제로 인해 인권에 관심이 높은 걸 느꼈다. 둘째는 여성들이 관심이 많더라. 여성들의 인권감수성이 남성과 비교해 10%가량 더 높다. 오프라인 조사를 해보면 남성이 더 높은데, 온라인에서 조사하면 여성이 더 높다. 그만큼 차별에 노출돼 있고 우리 사회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층이 온라인에서 활동을 많이 한다. 

내 '국제인권' 수업 듣는 학생들의 80%가 난민수용을 반대하더라. 왜 그럴까. 미디어를 통해 전해진 이슬람 남성들이 진짜 난민이냐에 대한 의구심을 비롯해 '여성 차별적 문화에 익숙하다', '내국인과 결혼하면 우리 사회의 문화적 근간을 흔들 수 있다'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양성평등 목표를 추구하는데 미투운동하면서 여성인권이 잘되고 그럴 때 갑자기 예멘 난민이 들어왔다. 이게 정말 인권감수성이 필요한 문제다. 

난민 수용과 관련해 여성들이 안전 문제를 많이 제기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됐다. 여성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는 게 옳다고 곱씹어 봐야 할까. 신념이 믿음으로 굳어지면 판단 근거를 점검해 봐야 한다. 이성적 근거를 마비시키는 이기적인 인권이 있었던 것 같다."      

- 개인적으론 적절한 실증적인 정보를 제공해도 인권 문제에서도 개인의 경험이 더 우선하는 것 같다.   
"실존적 경험, 경제적 배경, 실제 차별 경험 여부가 굉장히 중요하다. 2016년에 연구책임자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원을 받아서 국민인권의식조사와 2018년에 한국종합사회조사(KGSS)를 수행해보니까 두 가지가 보였다. 

당시 차별 경험 여부에 응답한 사람이 30%가 됐다. 외모·경제·학력·나이 차별 등이다. 통계분석을 해봤더니 차별 경험을 해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인권 지식이 많고, 인권에 대한 강한 주장을 한다. 사형제 반대, 체벌금지법 및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적이다. 연구 결과, 이성적 판단을 넘어서 실존적 경험이 중요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다른 한편에선 오히려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 대졸자·도시 거주자·스스로를 세계시민이라고 여기는 사람 등이 인권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맑스주의로 보면 노동자·여성·취약계층이 인권개혁을 주도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진 않다. 어느 정도 교육 수준이 있고, 글로벌한 경험도 있고, 해외 거주 경험자가 또 인권을 지지하는 층이다. 그런 면에서 두 가지를 다 봐야 한다."

- 한국 현대사에서 인권 유린 사례가 매우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권 향상에 둔감하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일례로 일본은 납북 피해자 12명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는 반면, 한국은 6.25 이래로 현재까지 수만 명(추정)의 납북자가 있는데 관심이 매우 낮다. 민족주의가 인권에 우선한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인권 관련 보도 10만 건을 분석한 적이 있다. 들여다보면 진보 신문 계열이 진보 정치세력을 지지하면서 인권문제는 남북평화의 대의를 위해서 지금은 덮어둬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국제회의 가서 북한인권에 기권하는 패턴이 있었다. 굴락(Gulag, 정치범수용소. 특별히 소련식 수용소를 의미), 노동교화소 문제 제기 전혀 안한다. 납북자들에 대해 말 안 한다.

결국 북한과 우리가 평화 무드, 협력 분위기로 가면 그때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건데, 이건 오류다. 이기적인 인권에 해당한다. 경제성장만 하면 복지와 정치적 민주화가 다 따라온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평화라는 면에서 진전이 다소 안 된다손 치더라도 '보편적인' 인권문제는 꾸준히 제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한국은 진영논리가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데 외국도 그런가. 
"외국은 진영 논리가 심하지 않다. 인권 관련해선 진영논리로 볼 게 아니다. 치킨게임으로 사회가 흘러가고 있다. 모든 분야가 다 중간지대가 없다. 극단적인 갈등으로 가고 아무도 중재하려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정당조차도 그렇다. 그러다 보니 인권도 거기에 휘둘려서 진영논리로 간다. 노동권이 굉장히 중요하고, 여성권도 중요하고, 젠더 권력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 최근에 많은 연구가 있다. 일상의 편견이 젠더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 거다. 많은 양심적 연구자가 젠더 권력이 실재한다고 밝힌 거다."   

- 국민 대부분이 급여 생활자이지만, 노조 조직률은 10% 남짓으로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인권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민주주의를 짧은 시간에 성취했다는 자부심 뒤에 노동권은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했는데, 개인적으론 중고등학교에서 노동법을 가르치고, 노동교육을 시행하는 게 좋다고 본다. 책에서도 그런 걸 제시한 것 같다.
"4차혁명이 심화되면 노동권과 노조권이 점점 더 중요해질 거다. 그런 방향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노동권이 인권상자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미래 5~10년 새 가장 중요한 이슈로 주저 없이 노동권을 꼽고 싶다. 노조와 경영방어권이 다 중요하다. 노조 파업에 시민 지지가 과거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얻는 게 굉장히 중요한 시대가 됐다. 기본적으로 노조가 변해야 한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대한항공 노조의 경우다. 가면 쓰고 정당한 주장을 하면서 호응을 얻었다. 그때 노조가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국민들이 알게 됐다. 

인권감수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노동교육을 초·중·고부터 해야 한다. 노동교육이 현행 교과서에 1%밖에 안 된다. 노동교육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지금 직업교육으로 한정하는데, 갑질, 노동자 존엄성을 잘 다루는 노동교육이 있어야 한다. 워라밸이 중요해지고 있는데, 이런 변화가 노동교육의 중요성을 더 일깨우는 것 같다."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 - ‘나는 괜찮다’고 여겼던 당신을 위한 인권사회학

구정우 지음,
북스톤, 2019


#인권 #구정우 #인권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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