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독일이 탈원전 후회? 조선일보의 의도된 왜곡

'부진한 독일 에너지 전환' 지적한 <슈피겔> 기사가 한국에선 '탈원전 비판'으로 둔갑

등록 2019.05.20 18:36수정 2019.05.2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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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력 시사주간지인 ‘슈피겔’은 지난 5월 4일 ‘독일의 대실수(Murks In Germany)’란 표제 기사에서 독일 메르켈 총리의 ‘에너지전환(Energiewende)’ 정책이 실패할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 슈피겔


외신 인용 기사는 원문까지 찾아봐야 하는 시대다. 독일 시사 주간지인 <슈피겔>이 독일 정부를 향해 '탈원전' 위해 에너지전환 정책을 제대로 펼치라고 주문했는데도, <조선> 등 국내 일부 언론은 정반대로 <슈피겔>이 '탈원전'을 비판했다고 보도해 왜곡 논란이 일고 있어서다. 

독일이 탈원전 후회? <조선>에 가려진 슈피겔 보도의 '반전'

<슈피겔>은 지난 5월 4일자 '독일의 실패작(Murks In Germany)'이라는 표제 기사에서 독일 메르켈 총리의 '에너지전환(Energiewende)' 정책이 실패할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녹색 정전(Grüner Blackout)' 기사 도입부만 보면, 메르켈 총리가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재생 가능한 미래를 만들겠다며 오는 2022년까지 원전을 모두 없애겠다고 선언했지만 수십억 유로를 낭비했고 국민들 저항만 부르고 있다고 읽힌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행보에 비판적이었던 국내 보수 언론들은 이 대목에 주목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한국경제> <매일경제> <서울경제> 등 주요 경제지들이 <슈피겔>을 앞다퉈 인용하면서, 독일 '탈원전' 정책이 실패했다거나 비판을 받고 있고 심지어 탈원전을 '후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가운데 사설과 칼럼을 포함해 가장 많은 기사 4건을 쓴 <조선>은 지난 5월 9일자 사설 '한국이 따라가던 탈원전 독일, 스스로 '실패' 판정'에서, "전통의 독일 유력지 슈피겔이 자국의 탈원전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면서 "그런데도 국내 환경론자들은 독일 에너지 전환을 격찬하면서 본받아야 한다고 해왔다"고 우리나라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겨냥했다.

[<슈피겔> 인용해 '탈원전' 비판한 언론 보도]
- "탈원전은 값비싼 실패"..독일서도 '밑빠진 독' 비판(<조선일보> 5월 7일)
- "200조원 쓴 탈원전, 값비싼 실패" 독일의 후회(<조선일보> 5월 8일)
- 한국이 따라가던 탈원전 독일, 스스로 '실패' 판정 (<조선일보> 5월 9일 사설)
- [태평로] 슈피겔이 전한 독일의 '탈원전 반면교사'(<조선일보> 5월 15일 칼럼)
- "탈원전은 값비싼 실패"..독일서도 비판 목소리(<한국경제> 5월 7일)
- 獨 슈피겔 "탈원전은 실패 위기에 처했다" 경고(<서울경제> 5월 7일)
- 독일조차 "탈원전은 값비싼 실패"라는데(<매일경제> 5월 9일 사설)


반면 환경단체와 <한겨레>, <미디어오늘> 등은 보수 언론이 <슈피겔> 보도를 '탈원전 비판'으로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지난 9일 "에너지전환을 위한 과제를 제시한 <슈피겔> 보도 내용이 한국의 에너지전환을 발목 잡는 기사로 둔갑했다"고 비판했다. 에너지정책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 15일 "<슈피겔> 기사의 주요 내용은 독일 에너지전환의 과제와 성공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왜곡 보도 비판한 기사]
- '탈원전' 눈먼 조선일보, 독일 슈피겔 기사도 왜곡(<미디어오늘> 5월 9일)
- 독일이 '탈원전' 후회? 보수언론의 '슈피겔 보도' 왜곡 이유는?(<한겨레> 5월 17일)


[환경단체와 산업통상자원부 보도자료]
- 에너지전환포럼, '재생에너지 확대 과제 제시한 슈피겔지 보도, 한국의 에너지전환 발목잡는 기사로 둔갑(5월 9일)
- 에너지전환포럼, '에너지전환 강조한 슈피겔지 보도 이번엔 탈원전 비판용으로 오독'(5월 16일)
- 산업통상자원부 보도설명자료 '슈피겔 기사의 주요 내용은 독일 에너지전환의 과제와 성공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5월 15일)

과연 어느 쪽 말이 사실일까? 앞서 <슈피겔> 기사 제목과 도입부 내용만 보면 독일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다는 보수언론 보도가 맞는 듯하지만, 전체적인 기사 내용은 달랐다.

<슈피겔> 기사 전문은 슈피겔 인터내셔널판 영문 기사 원문('German Failure on the Road to a Renewable Future')과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에서 한국어로 번역한 독일어 기사 원문(Grüner Blackout)을 참고했다.

[사실검증①] <슈피겔>이 독일 '탈원전' 비판?

<슈피겔> 보도는 크게 독일 에너지전환 정책 실태를 진단한 전반부와 에너지전환 성공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에서는 최근 독일 정치인들이 국민 눈치를 보면서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소와 송전망 확대가 부진해, 메르켈 총리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실패할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슈피겔>은 메르켈 정부가 원전을 줄이기로 하면서 정작 탈석탄 정책을 제대로 실행하지 않아 이산화탄소 배출량 축소 압박에 직면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EU 최대 가스 공급원이었던 네덜란드를 비롯해 탄소세를 도입한 스웨덴과 노르웨이, 심지어 미국조차도 석탄 대신 천연가스를 사용하면서, 에너지전환에서 독일보다 앞서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후반부에서 <슈피겔>은 풍력, 태양광, 수력 등 친환경 전력 생산뿐 아니라 건물, 교통, 산업 영역까지 포괄하는 '에너지전환 2.0'으로 한발 더 나아가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탄소세 도입이 필요하며, 독일 국민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희생'도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슈피겔>은 현재 독일 정부의 탈원전을 위한 에너지전환 정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서, 제대로 하라고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같은 <슈피겔> 보도를 근거로 한국 정부에 탈원전 정책을 포기하라고 정반대로 종용하기까지 했다.

"원전을 절대악으로 여기는 탈원전 교조주의를 버려야 답이 보인다. 슈피겔은 '거울'이란 뜻이다. 그 거울에 비친 독일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조선> 5월 15일)

[사실검증②] 탈원전으로 독일 전력 부족?

더구나 일부 언론은 <슈피겔> 보도에 실제 포함되지 않은 내용까지 동원해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탈원전으로 독일 전력이 부족하다는 내용과 전기요금이 많이 올라 탈원전 정책이 실패했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독일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했지만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원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조선> 5월 7일)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지난 5년간 1600억 유로(약 209조원) 이상을 에너지 전환에 쏟아부었지만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일정치 않아 독일에는 전력 부족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조선> 5월 8일)


<슈피겔> 기사에는 독일이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원을 확보하지 못했다거나 현재 전력이 부족하다는 내용은 없다. <슈피겔>은 독일 전력의 35%를 재생에너지에서 얻고 있고, 이미 석탄화력발전을 따라잡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앞으로 원전 등 화석연료 발전 중단시 전력 부족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4년 후에는 독일의 마지막 원전과 최초의 석탄화력발전소도 멈추고 독일의 에너지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가 빨리 확대되지 않으면 전력공급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다. 2023년에 햇볕도 바람도 없는 '어두운 무풍지대'가 며칠 동안 계속되면 전력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할 수도 있다."(<슈피겔>)

에너지전환포럼도 "2018년 독일 순전력 수출량은 44.4TWh(1테라와트시=10억KWh)로 오히려 전력을 수출하는 나라"라면서 "<슈피겔>이 '어두운 무풍지대' 지속시 시스템 한계 우려를 지적한 것은 전력기술 개발과 확보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기사 후반부에는 전력부족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탄소세 도입과 주택과 공장, 교통에서의 에너지 효율 개선 노력과 더불어 수소연료를 비롯한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 사례가 뒤따른다.

"독일은 필요한 전력의 35%를 풍력, 태양력, 바이오매스, 수력 발전에서 얻고 있다. 지난해 재생에너지가 독일의 가장 중요한 전력 공급원이었던 석탄을 따라잡았다. 전력 생산의 진보는 인상적이지만, 건물, 산업, 교통 등도 '에너지전환'에 통합돼야 한다.(중략) 더 많은 녹색(친환경) 전기를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저탄소 미래의 꿈을 이룰 수 없다. '에너지전환 2.0'은 모든 분야와 기술, 시장을 통합하는 훨씬 포괄적인 버전이다. 단순히 풍력, 태양력, 수력으로 생성된 전기를 분배하는 거대한 기계를 뛰어넘어 수준 높은 망으로 연결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슈피겔>)

[사실검증③] 탈원전 실패 원인은 전기요금 상승 때문?

"독일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이유는 전기요금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25%가량 상승했다."(<조선> 5월 7일)

"슈피겔은 하지만 풍력, 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의 비효율로 인해 전력 부족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기요금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이로 인해 독일 국민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슈피겔은 '에너지원 전환 사업은 독일 통일만큼이나 값비싼 프로젝트가 돼가고 있다'고 진단했다."(<한경> 5월 7일)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이 EU 국가들 가운데 최상위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슈피겔> 기사에서 전기요금 상승 때문에 탈원전 정책이 실패했다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2019년 5월 현재 유럽연합 통계국(Eurostat)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독일 가정용 전기요금은 1KWh(킬로와트시)당 0.295유로로, 덴마크(0.313유로)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2010년 KWh(킬로와트시)당 0.23유로(23유로센트) 수준이던 독일 가정용 전기요금은 2013년 0.29유로대로 25%가량 올랐지만, 그 이후엔 큰 변동이 없었다.(참고: 데이터분석업체 스태티스타 독일 가정용 전기요금 통계 자료
 

2010~2018년 상반기까지 반기별 독일 가정용 전기요금 추이. 2010년 23유로센트(0.23유로)에서 2013년 29유로센트로 25% 가량 상승했다. (출처: EU 통계국 Eurostat 자료를 바탕으로 데이터분석업체 스태티스타에서 작성) ⓒ statista

에너지전환포럼은 "독일 에너지전환 정책 초기에는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높아 정부 보조금이 필수였지만, 지금은 재생에너지 산업 성장으로 발전 단가가 급격히 하락해 에너지전환에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오히려 <슈피겔>은 전기요금 인상이나 시민들의 저항을 우려하기보다 탄소세를 도입해 기후변화를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마지막 대목에서 에너지전환 두 번째 단계에 독일 통일 못지않은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화석연료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그만한 희생이 따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이 대목을 에너지전환 고비용 문제를 비판한 것으로 활용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탄소세 수입 대부분을 납부한 시민이나 기업에 돌려주는 스위스와 같은 모델을 선호한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는 행동이 값비싸고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에 대한 보상이다.(중략) 유권자들은 에너지 전환을 위해 그들의 행동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희생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슈피겔>)

"독일 같은 하이테크 사회에서 기술적으로 2050년까지는 화석연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연구, 전략, 설비 등 모든 게 준비돼 있다. 학술단체인 ESYS는 독일이 태양력과 풍력 발전용량을 5~7배 늘려야 하고, 합성 연료를 에너지 시스템의 한 축으로 삼고, 모든 부문에서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매년 GDP 2%인 700억 유로의 비용이 발생한다. 2050년까지 20억에서 30, 40억 유로가 되고, 에너지전환 두 번째 부분은 독일 통일 만큼이나 비용이 많이 들고 힘든 프로젝트다."(<슈피겔>)


[검증 결과] "슈피겔이 탈원전 비판했다"는 국내 언론 보도는 '대체로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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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피겔>이 지금까지 독일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실패할 위기에 처했다고 비판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국민과 기업의 반발을 우려해 탈석탄을 주저하고 재생에너지 발전과 송전선 확대에 소극적인 독일 정부와 정치권을 비판한 것이다.

오히려 <슈피겔>은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미국 등 다른 나라 사례를 들어 독일도 탄소세를 도입하는 한편 전력 생산뿐 아니라 건물, 산업, 교통 등 사회 전 분야로 에너지전환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더구나 국내 언론 보도와 달리 탈원전 정책 때문에 독일의 전력이 부족하다거나 전기요금 인상 때문에 탈원전 정책이 실패했다는 내용도 <슈피겔> 보도에선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선> 등 국내 일부 언론은 마치 <슈피겔>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원전을 없애기로 한 독일의 '탈원전' 방향 자체를 비판한 것처럼 왜곡했다. 따라서 "<슈피겔>이 탈원전을 비판했다"는 국내 언론 보도는 <슈피겔>이 보도한 일부 사실을 포함하고 있지만, <슈피겔>이 탈원전 방향 자체를 비판한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에너지전환 정책을 주문했다는 중요한 사실을 빠뜨렸기 때문에 '대체로 거짓'(대체로 사실 아님)으로 판정했다.

이들 언론은 그동안 탈원전을 향한 한국 정부의 에너지전환 행보에 비판적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앞서 <슈피겔>에 빗대 탈원전을 비판했던 <조선일보> 칼럼 마지막 대목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

"원전을 '절대선'으로 여기는 '친원전' 교조주의를 버려야 답이 보인다. 슈피겔은 '거울'이란 뜻이다. 그 거울에 비친 독일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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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피겔 #탈원전 #조선일보 #에너지전환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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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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