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도, 광주에도 있었던 '익명의 여인'

[서평] 1945 베를린, 전시 성폭력의 기록 '함락된 도시의 여자'

등록 2019.05.24 08:27수정 2019.05.2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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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매개하지 않은 전쟁은 없다. 분쟁이 있는 곳 어디든, 여성의 몸은 언제든 침범되고 속박될 수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안시성>에서 함락을 앞 둔 안시성을 바라보며 당태종이 병사들의 사기를 독려하고자 "저 안의 여자들은 다 너희들 것이다"라고 외쳤을 때, 나는 영화관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마치 당장 저 수많은 병사들이 나를 덮칠 것만 같은 공포 때문이었는데, 내 옆에 있던 남편과 다른 남성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감정일 것이다. 저 성 안의 여자가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어찌 남성들이 할 수 있겠는가?


수백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채 패전한 독일은 국제사회에서 그들의 만행을 용서받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기에, 당시 독일 여성들이 당한 전시 성폭력의 피해를 들추어내려 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은폐한다고, 피해가 피해가 되지 않겠는가? 피해의 고통 속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이 있었고, 그 피해를 증언한 여성들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국가가 숨기려 한다고 개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억을 지울 수는 없다.

함락된 도시 베를린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독일의 패배가 목전에 있었던 1945년 4월, 베를린은 이미 남성은 거의 부재한 '여성만 남은 도시'였다. 시민들은 시도 때도 없는 폭격에 가진 것을 모두 잃었고, 먹을 것이 없어 쐐기풀까지 끓여 먹으며 버티고 있었다.

4월 27일 마침내 소비에트 '붉은 군대'가 베를린에 입성한다. '해방군'이라는 소비에트 군인들은 무엇도 해방시키지 않은 채 약탈을 시작한다. 술과 여자들을 찾아냈고 거침없이 취했다.
 

'함락된 도시의 여자: 1945년 봄의 기록' 익명의 여인(지은이) ⓒ 마티

 
이 시기를 겪은 베를린의 한 여성은 식민지나 다름없는 패전국의 여성들이 무엇을 어떻게 겪어야 했는지를 적기 시작한다. 1945년 4월 20일부터 6월 22일까지, 붉은 군대 치하에 있었던 여성들의 '전시 성폭력' 피해 증언이 <함락된 도시의 여자>에 남겨 있다. 그녀는 차마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 없었다.


붉은 군인들의 성폭행 대상은, 그저 여자이기만 하면 되어서, 노인 여성을 노리면서, "당신 늙었어. 당신 건강해" 하며 강간한다. 저자인 여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차례 강간당한 이후,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작전을 바꾸기로 한다. "다른 온갖 늑대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마리 늑대를 불러들여야 해."(p84) 그녀는 몸을 생명과 먹을 것으로 바꾸는 치욕을 견디면서도 살아남고 싶었다. '함락된 도시'의 여자들은 점령군에게 복종하지 않고 달리 생존할 방도가 없었다.

당시 점령군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에 대한 통계는 베를린에서만 11만 명 이상을 추산하고 있다. 그나마 성폭력을 인정하고 병원이라도 열어 피해 여성들을 진료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일제 패망 후부터 '해방군'인 미군을 맞이했던 한국은 어땠을까? 우방이었기에 피해가 없었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한국은 그 어떤 성폭력의 공식 피해 통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조사해본 일이 없으니 통계가 존재할 리 없지 않은가?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철원에서 겨우 피난을 나온 내 엄마는 피난처였던 곳곳에서 성폭력 피해 현장을 목도한 바 있다. 피난민이 겨우 비나 피할 수 있는 차일을 나무 사이에 쳐놓고 지내던 시절, 밤만 되면 야음을 틈타 미군이 숨어들어와 눈여겨봐 두었던 젊은 여성을 납치해서 강간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면, 피난처 근처 저수지에 젊은 여성의 시체가 떠오르곤 했다고 한다. 하루는 땔나무를 주워 산에서 내려오는데 폐가로 보이는 곳에 미군들이 쭉 서 있는 게 보였단다. 그런데 그 집 안에서 젊은 여성의 비명이 흘러나오는 바람에 얼마나 놀랐던지, 혼비백산해 도망치는데 미군이 쫓아와 잡아갈까 봐, 다리가 후들거려 뛰어지지가 않더라고 회고했다.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80이 넘어서야 그 경악스러운 기억을 겨우 끄집어내던 엄마는, 성폭력을 직접 당한 것이 아니면서도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직접 피해자는 아니지만, 근 60년이 지나서야 겨우 그 증언을 할 수 있는 이 상처는 무엇이며, 당시 직접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고통은 어땠을까?

성폭력의 피해, 회복은 누구의 몫인가?
 

저자는 붉은 군대가 빠져나간 그날, 연인이 그녀를 떠나가던 그날로 일기를 멈춘다. 그녀는 할 말을 다 한 것이다. ⓒ Pixabay

 
베를린에 남아 있던 남성들은 성폭행을 하려고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여자를 내주며 이렇게 말했다. "재빨리 따라가요. 당신이 우리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잖아요."(p97) 독일의 부끄러운 남성들이나, 젊은 여성을 잡아가는 걸 뻔히 알고도 아무도 나서 막지 못한 한국의 남성들이나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인 '함락된 도시'의 여성들은 피해에 다르게 대응했다. 이들은 피해를 쉬쉬하지 않으며 개인의 피해를 공동의 피해로 가져갔다. 이들은 서로 눈을 맞추며, "당신은 몇 번이나?"를 묻고 답하며, 자신들이 입은 상처를 드러냈다. 서로의 피해를 회복하지 못할 어떤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경험으로 치유하고자 했다.

"여자들은 강간 경험과 괴로움을 말함으로써 다른 사람도 그것을 말할 수 있게 하고,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토로하며 서로를 지지한다"(p195). 물론 그렇다고 성폭행의 기억이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생애 동안 고통받지 않는다는 소리는 아니다"(p181).

반면 한국의 여성들이 당한 집단 성폭력 피해는 어떤가? 말 되어진 적이 있는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피해를 말할 수 없는 일로 만들 때, 피해자는 '잘못된 피해자(wrong victims)'로 만들어져 자신의 의지로 생긴 일이 아닌 데도 비난받고 혐오 당한다. '그녀의 입으로 말하게 하라'는 미투의 물결이 바로, 더 이상 '잘못된 피해자'로 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이지 않은가?

익명의 저자는 단지 피해자의 위치에만 머물지 않는 성찰을 보여 준다. 자신이 당하는 이 피해를 독일군이 점령한 지역의 여성들에게도 일어났을 것을 상상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그(히틀러)의 체제에 찬성했던가, 아니면 반대했던가? 어쨌든 나 또한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비록 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를 둘러싸고 물들였던 공기를 들이마셨다."(p206)

그녀의 이 고백은 현재 한국인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을까? 베트남에 파병되었던 한국 군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 및 전시 성폭력의 피해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

'함락된 도시'에서, 극도의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에 놓인 인간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았을까? 살아남은 자들은 폭격의 피해에도 "세 명밖에 죽지 않았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이런 남루함 속에서도 살고 싶었고, 저자 또한 그랬다.

삶에 대한 애착은 고통을 무시하기 위해 무감각을 장착하게 했고, 모두 "자기 것을 움켜쥐고, 숨겨 두고, 나누어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p41). 아우슈비츠의 수용자들이 그 모진 삶 속에도 오직 하루를 더 살기 위해 '사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극단의 상황에서 인간은 고귀함이란 것이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는 모래성 같은 것인지를 목도하게 한다. 느끼지 않아야만, 인간이 아니어야만, 살아남는 '인간'이 되는 아이러니.

다시 살아가기 위해

붉은 군대가 철수하고 참전해 죽은 줄 알았던 연인이 홀연히 나타나자, 저자는 혼란스럽다. 생환한 연인이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하지만 성폭행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녀의 몸은 "남자를 받아들일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p321).

그녀는 함락된 도시에서 살아남으며 기록한 자신의 일기를 연인에게 건네지만, 연인의 반응은 놀랍도록 냉정하다. "너희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암캐로 변해버렸어"(p321). 연인인 남성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순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길 바랐던 걸까? 저자는 전쟁에서 패배의 기운이 짙어지면서 지배적이고 폭력적인 나치의 남성성이 급격히 거세되는 것을 느낀다.
 
"남자들이 안됐고, 너무나 비참하고 무기력해 보인다. 나약한 성(性)이 된 남자들... 이 전쟁이 끝나면 수많은 패배와 더불어 '남자들'의 패배도 찾아 올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예측은, 최소한 독일을 벗어나서는, 빗나간 듯하다. 패전 후 실추된 남성성을 되찾기 위해 남성들은 전쟁 동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었던 여성들을 집안에 가두려 하지 않았던가?

<함락된 도시의 여자들>은 놀라우리만치 담담하게 쓰여졌다. 피해자 여성들은 막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고통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생존했다. 그녀의 일기는 생존자인 그녀들과의 연대기다. "우리 여자들이 추락을 더 잘 견뎌내며,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다시 확인했다"(p252). 저자는 붉은 군대가 빠져나간 그날, 연인이 그녀를 떠나가던 그날로 일기를 멈춘다. 그녀는 할 말을 다 한 것이다.

저자 자신보다 일기에 기록된 저자 주변인을 보호하기 위해 익명으로 출판된 이 책은 이후 저자의 신분이 밝혀졌다. 그녀의 일기가 진위 여부 감정을 받고 진본임이 밝혀졌는데도, 그 익명의 저자가 누구인지가 왜 그리 궁금했을지,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해서 익명이 실명이 되었음에도, 굳이 그녀의 이름을 쓰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녀가 누구이든 피해자인 것은 분명하고, 그 피해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생존했기에, 그녀가 누구인가가 더 이상 중요한 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성인 나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녀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그녀들의 피해와 고통, 그리고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다.

5.18 광주민주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이 증언된 바 있다. 전시 성폭력은 항상 '타자화된'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1980년 광주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 게시

함락된 도시의 여자: 1945년 봄의 기록

익명의 여인 지음, 염정용 옮김,
마티, 2018


#함락된 도시의 여자 #전시성폭력 #젠더폭력 #광주민주화운동성폭력 #잘못된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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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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